[미디어스=정인숙 교수] 코로나 이후의 사회변화에 대한 다양한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확실한 것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과 규범이 전개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언택트산업의 활성화를 비롯한 한국판 뉴딜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경제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인 개혁을 위한 시스템을 논의해야 할 때이다.

공영방송 시스템에 대한 논의도 그 중의 하나이다. 공영방송도 공공의료만큼 중요한 영역이다. 건강한 민주사회를 지켜가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이 존재해야 한다. K방역만큼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공적 미디어 시스템이 있어야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대선 때부터 그것을 약속했고, 국회는 이제 여당이 맘만 먹으면 그동안 주장해왔던 공영방송 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했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 상황 역시 공공영역의 존재가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공영방송 개혁 논의에 제대로 불을 지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KBS·MBC·EBS 등 공영방송 3사 사옥

그동안 공영방송 논의는 분열적 원심력이 작동해왔다. 논의는 무성하나 제도적 해결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공전하였다. 공영방송 거버넌스와 같은 중요한 이슈들은 언제나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되었으며, 무수한 입법 발의는 무위로 끝났다. 야당이 되면 공영방송 개혁을 주장하고 여당이 되면 입장이 바뀌면서 공영방송 개혁은 불발로 끝났다.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소망해본다.

유럽의 공영방송 연합인 EBU에서 정의하는 공영방송의 본래적 의미는 공중에 의해 재원이 조달되고, 공중이 만드는 방송이고, 공중에 의해 통제되는 방송이다. 재원의 주체도 공중이요, 제작의 주체, 경영의 주체도 공중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방송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공영방송 이사에 대한 정당 추천 관행이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한 우리의 공영방송은 여야갈등의 정치판이 되어 또다시 소모적 논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공영방송 재원 역시 공중이 논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방송법상 공영방송의 범주조차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올해 초 방통위가 중장기 방송제도 개선안의 하나로 공공서비스방송(PSB: Public Service Broadcasting)을 제안하였다. 유럽 국가들이 PSB에서 보다 포괄적인 공적책무를 담당하는 서비스인 PSM(Public Service Media)으로 이행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준공영방송으로 제시한 한국식 PSB는 개념의 모호성뿐만 아니라 실효성도 의문스러웠다. 다행히 여론수렴과정을 거치면서 PSB 개념은 삭제되었지만 이번에는 MBC 사장이 MBC도 공영방송이라며 KBS와 EBS처럼 수신료 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경계영역에서 정권에 따라 요동쳤던 MBC가 모처럼 공영방송으로의 정명(正名)을 표방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으나 하필 심각한 적자를 보이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그와 같은 요구를 하는 것은 공적 책무성의 실현의지보다는 공적 재원확보의 의도가 더 크게 읽힌다. 수십 년간 동결되어온 수신료 현실화 논의가 있기도 전에, 공적 책무에 대한 범사회적 논의가 있기도 전에 수신료 배분을 요구하는 주장은 그래서 시의적절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방송사가 재원을 요구하기 이전에 민주적 시민의식을 가진 국민이 주체가 되어 우리에게 공영방송의 존재가치는 무엇이고 어떤 시스템으로 개혁할 것이며, 그에 합당한 재원구조에 대해 범사회적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미 시민사회단체들이 연합하여 공영방송을 포함한 미디어개혁의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의에 좀 더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현행 방송법상 국민은 수신료의 의무만 있고 그에 따른 정당한 권리는 부여받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공영방송의 거버넌스와 재원구조 논의에 시민이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을 법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 정인숙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860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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