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남규 칼럼] 오늘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이다. 보통 30년을 한 세대라고 한다면, 한 세대가 바뀌고도 10년이 더 흐른 시간이다. 그렇게 기나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밝혀지고 있는 진실들이 있고, 또한 밝혀내야 할 진실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5‧18과 같이 진실을 밝혀내야 할 과거사가 산적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다.

38주년이었던 지난 2018년에는 전남도청에서 항쟁하다가 연행된 김선옥 씨가 당시 광주 상무대 영창에서 군인들에게 당했던 고문과 성폭행을 고발했다(한겨레신문, ““고문 뒤 석방 전날 성폭행” … 5월항쟁 38년만의 미투”, 2018년 5월 8일). 김선옥 씨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해 1월 서지현 검사의 ‘미투’로 용기를 냈다고 했다. 누군가의 용기가 또 다른 누군가의 용기가 되어 진실을 끌어올린 것이다.

39주년이었던 지난 2019년에도 새로운 진실들이 세상에 떠올랐다. 5‧18 당시 헬기에 탄약을 보급하던 군인이었던 최종호 씨가 광주에서 헬기 사격이 이뤄졌다고 증언한 것이다(KBS, ““광주 투입 헬기, 탄약 5백발 사용”…5·18 군인의 증언”, 2019년 5월 16일). 헬기 사격 지시는 발포 명령과 함께 전두환 씨가 주요하게 부정해 온 의혹이다. 또 당시 보안부대 수사관이었던 허장환 씨는 시신이 너무 많아 일부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두 증언 모두 5‧18 당시 가해자에 속하는 군인들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과거사 문제의 해결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소복 차림의 추모객이 헌화하고 있다.(연합뉴스)

40주년이 된 올해도 새로운 진실은 여지없이 나왔다. <경향신문>은 40주년 기념 기획(“5·18 40주년 조작된 영웅”)으로 당시 계엄군의 ‘사망확인조서’ 문건과 ‘상이기장(부상당한 참전군인에게 수여하는 표창) 수여 발령 문건’ 등을 분석해 군 당국이 계엄군 내 오인사격으로 사망한 군인의 사인을 ‘시민에 의한 죽음’으로 꾸몄으며, 부상당한 계엄군에게는 참전 군인에게 주는 ‘상이기장’을 수여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그런가 하면 40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앞으로 밝혀내야 할 진실들이 많다. 가장 중요한 진실은 역시 발포 책임자를 밝혀내는 일이다. 수많은 정황이 최종 발포 책임자가 전두환 씨라고 가리키고 있지만, 당사자의 부인과 핵심 물증의 부재로 아직 진실을 밝혀내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12일 출범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진상조사에 돌입한 만큼, 이제는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국가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한다면, 민간 영역에서도 진실을 찾기 위한 자발적인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일 미국 정부가 5‧18과 관련한 미국 측 비밀문서 43건을 공개했다. 뜻있는 시민들이 이 문서들을 번역해 온라인에 공개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링크=5·18 광주민주화운동 미군측 기록물).

이처럼 5‧18은 40년이 흐른 지금도 진실을 향해 가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5‧18이 한국 현대사를 뒤흔들었다고 평가할 만큼 중요하고 유명한 사건이기 때문에 멈춤 없이 진실을 찾는 작업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광주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숱한 학살‧간첩조작‧의문사 등 과거사들의 파묻힌 진실을 우리는 어떻게 지상 위로 끌어 올려 정의를 이뤄낼 수 있을까.

시민들이 이루긴 어려운 일이지만, 국가는 해낼 수 있다. 이제 약 열흘 정도의 임기를 앞둔 20대 국회에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이라는 중요한 숙제가 남아 있다. 광복 이후 권위주의 통치기까지 있었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국가폭력 사건‧의문사 사건 등에 대한 진실규명 및 재심을 목적으로 하는 법안으로, 이번 개정안은 이 법안에 따른 조사위원회의 활동기간 연장을 핵심으로 한다.

개정안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으며,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는 오늘 20일에 개최될 예정이다. 많은 언론들이 20대 국회의 마지막 쟁점으로 과거사법을 들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이미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했지만, 불과 며칠 지나지도 않아 피해자‧유가족에 대한 배상 문제에 딴지를 걸며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5‧18의 진실규명 역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995년 12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다. 김영삼 정부 이후 5‧18 진실규명을 요구해 온 광주 단체들은 문제해결의 5대 원칙이 특별법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5대 원칙이란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 회복’, ‘피해 보상’, ‘기념사업’을 뜻한다.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여, 책임져야 할 자에게 책임을 지도록 하고, 억울하게 피해 받은 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며, 그가 오랜 시간 받아온 피해에 대해 마땅하게 배상하고, 두 번 다시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념사업을 통해 기억을 전승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1995년 제정된 특별법에는 이상의 5대 원칙이 모두 포함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5‧18이 그러하다면, 또 다른 과거사 사건들도 당연히 그러해야 마땅한 법이다. “5.18 민주화운동의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에 소홀함이 없도록 부단히 노력해 왔고 그런 각오는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이라면, 그와 다를 바 없는 수많은 과거사 사건들에 대해서도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오늘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이자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출범 후 일주일째다. 지난 2013년 발의된 뒤 7년간 국회를 표류해온 과거사법이 법사위에 계류된 지 7개월째이자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이틀 앞둔 날이기도 하다. 20대 국회의원들이 제 손으로 정의를 이룰 수 있는 날이 이틀 남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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