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청각장애인 목소리를 복원, 음성언어 소통을 돕는다는 취지의 KT '마음을 담다' 캠페인에 장애인 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진정을 접수했지만 이후에도 이 캠페인을 홍보하는 언론보도는 이어지고 있다. 이 캠페인이 또 하나의 언어인 '수어'에 대한 차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소수자의 목소리가 언론 일각에는 담기지 않고 있다.

지난달 23일 장애인 단체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장애벽허물기)과 청각장애인 7인은 23일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 섰다. 이들은 "KT 광고는 수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부추기고 차별을 확산시킬 수 있다"며 인권위에 차별진정을 접수했다.

장애인 단체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과 청각장애인 7인은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KT '마음을 담다' 캠페인이 청각장애인의 언어인 수어를 차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KT '마음을 담다' 캠페인은 청각장애인의 목소리를 AI 기술을 통해 구현해 제공하는 내용이다. 청각장애인 가족들의 음성을 바탕으로 목소리를 복원,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청각장애인이 음성언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KT는 선천적 청각장애인 김 모씨에게 이 같은 기술을 구현하는 과정을 광고로 제작해 방영하고, '목소리 찾기' 신청자를 모집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기술과 캠페인은 또 하나의 언어인 '수어'를 사회적 언어로 인정하지 않는 차별을 조장한다는 게 장애인 단체의 비판이다. 이들은 "저희들의 언어는 수어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지금까지 '언어'로써 수어를 인정하지 않았다"며 "그러다보니 가족 간에 수어쓰기를 꺼리고, 광고처럼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환경이 조성됐다. 수어로 자유로운 소통이 이뤄졌다면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욕구 등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인권위에 ▲해당 KT 광고의 방영을 유보할 것 ▲KT가 장애인 관련 광고 제작 시 차별금지방안 마련해 실시할 것 ▲수어에 대한 인식전환에 책임이 있는 KT가 청각장애인 가족의 목소리를 수어 등으로 변환하는 광고를 제작할 것 등을 요구했다.

장애인 단체의 문제제기에 몇몇 언론들은 관련 소식을 전했지만, 이후에도 일부 언론에서는 KT의 이 캠페인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11일 20면 기사 <"엄마, 인공지능이 내 목소리를 찾아줬어요">에서 KT의 '따뜻한 기술' 캠페인이 성과를 냈다고 총평했다. 한겨레는 "청각장애인과 가족들에게 목소리는 '한'"라며 "인공지능 기술 덕에 이들이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한겨레는 "KT는 사회공헌 차원에서 청각장애인 목소리 찾아주기 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김씨 목소리 재현 과정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또한 공모 방식으로 다음 대상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장애인단체가 인권위에 차별진정을 넣어 광고 유보 등 홍보 중단을 요구한 내용이다.

이어 한겨레는 같은 지면 기사 <"개발 단계부터 '따뜻한 활용' 고민… 장애인 스마트팜 추진>에서 "구현모 KT 대표이사(사장)가 융합기술원 개발자들에게 '따뜻한 기술'을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지난달 1일부터 총 세 차례에 걸쳐 KT '마음을 담다' 캠페인 관련 기사를 작성해왔다.

매일일보는 지난달 26일 기사 <기술로 '사람' 챙기는 통신사… AI로 목소리 찾고 노인 돌봐>에서 "통신업계가 인공지능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장애인, 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며 KT 캠페인을 소개했다. 이밖에도 몇몇 언론에서는 KT 캠페인과 취지를 간략히 소개하는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언론보도에 대해 '장애벽허물기' 김철환 활동가는 "저희도 그런 기사들이 나와 고민이다. 기사를 가지고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고민스럽다.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김 활동가는 "다양성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며 "다양하게 발생하는 기술을 선택할 수 있는 측면을 봐야하는데, 그 이전에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환경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떤 특정한 것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선택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면 다양성이 보장된 환경이라고 할 수 없다"며 "지금까지 장애인이 장애인이 아닌 것처럼, '장애인의 비장애화'가 이뤄져 왔다. 사회가 이런 환경을 만들고 장애인을 차별했기 때문에 다양성을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 활동가는 "KT의 유튜브 영상 댓글을 보면 워낙 반응이 좋은데 비장애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됐는지 이면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며 "사회가 장애인을 차별해 온 환경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본다. 저희는 나름대로 문제를 외치는데 그게 잘 안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6년 UN은 장애인권리협약을 통해 수화언어 관련법 제정을 권고했다. 이후 한국에서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청각장애인의 고유한 언어로 규정하고 있다.

장애벽허물기는 미디어스 취재 이후 성명을 내어 "한겨레는 KT '마음을 담다' 캠페인의 본질을 올바로 보라"고 비판했다. 장애벽허물기는 "한겨레는 진보언론이라고 한다"며 "정말 한겨레가 진보언론이라면 '수어'냐 '음성언어'냐를 떠나 본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수어를 통한 소통은 왜 하지 않으려 하는지, 소수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문화가 농인 가정과 사회에 드리워있지는 않은지 말이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KT는 장애인단체가 낸 차별진정과 관련해 인권위에 향후 계획서를 제출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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