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7일 수요집회 불참을 선언하며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비판한 이후 일본 언론들이 해당 사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한일 위안부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는 일본 우익 매체들이 기존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교수는 11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문제가 제기되자마자 8, 9일 도쿄신문-아사히신문-산케이신문-NHK에서 해당 소식을 보도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일본 내에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의 논조를 그대로 옮겨와 야후 등 인터넷 뉴스에 활용하고 있다”며 “우선은 신중하게 바라보며 조선·중앙의 논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행태로 보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조선·중앙일보는 시민단체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비판하며 정권 초기부터 위안부 합의 백지화를 주장한 문재인 정권의 정통성 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설 논조가 야후 등 포털사이트에 그대로 게시되면 한국의 내분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 8일자 단독보도

이 교수는 “위안부 운동의 중심이었던 이용수 할머니와 윤미향 전 대표가 갈등 관계에 놓인 부분을 주의 깊게 보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까지 일본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아주 큰 양보로 합의했다는 식으로 주장해왔고 한국은 ‘한일 간 밀실 합의’라며 부정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에서 ‘합의 전에 윤미향 전 대표가 이 사실을 알았다’는 보도를 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 문제가 전개될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 두 달 전까지 외교부 1차관으로 재직한 조태용 미래한국당 대변인의 주장을 지난 8일 <조태용 “‘윤미향에 위안부 합의 사전 설명’ 보고받았다”>단독 보도했다. 윤미향 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가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 전에 내용을 충분히 전달받았다는 주장이다. 일본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 보도하고 있다.

이영채 교수는 “일본의 중앙 텔레비전에서는 코로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 다루지 않지만 신문, 특히 인터넷 우익 미디어들은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한국과 일본 정부가 합의 초기에는 한일 위안부 관련 단체들의 상담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최종 단계에서 전혀 합의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내 우익 미디어들은 (조 대변인의 주장을)활용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는 위안부 운동에 대한 인식을 ‘위안부 할머니 당사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정대협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한일관계를 반일로 지속하기 위해 할머니들의 합의를 반대하고 있다’로 계속 몰아왔다”며 “시민단체들이 할머니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식으로 만들면서 문제의 본질은 일본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 책임으로 돌려왔는데, 이번에 위안부 운동의 당사자가 시민단체와 갈등을 보이는 모습을 보여 일본 정부 및 우익 단체들도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했다.

일단 일본 언론은 이용수 할머니의 수요집회 불참 선언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양새다. 잘못 보도하면 ‘일본 조종설’ 등 일본에게 불똥이 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익 세력은 인터넷 상에서 기존의 논리를 강화하는 데 이 문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는데 한국에서 이 문제를 지속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이용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이를 활용하고 있다’는 등의 논조들은 우익들에게 아주 좋은 매개”라며 “자신들이 주장해왔던 것처럼 한국 내에서 스스로 자중지란 형태를 보이는 식으로 관람하는 모습을 즐기고 있다고 봐야한다”고 전했다.

일본경제신문은 지난 4월 16일 ‘위안부 지원 단체의 전 대표 한국 총선 당선’ 기사를 작성했다.

일본 언론은 윤미향 전 대표가 비례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부터 이를 보도하며 관심을 보여왔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는 이번 총선을 여당과 문재인 정권이 반일감정을 활용해 이기려한다는 식으로 보도했고, 하나의 상징으로 정의기억연대 전 대표인 윤미향 씨가 반일운동의 상징으로 비례대표가 된 것에 대해 보도하면서 논리적으로 이를 활용해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 대표가 당선됐고 여당이 압승하자 일본 언론들은 ‘한국이 반일감정으로 총선에서 이겼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이 교수는 “일본 내에서는 한국이 강해진 여당을 통해 일본 강제 배상 문제라든가 위안부 문제 강경정책을 쓰지 않을까라는 논리로 경계하는 형태로 이 문제를 보고 있었다”며 “윤미향 전 대표가 상징적 인물이 된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일본 정부가 이러한 갈등 상황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봤다. 아베 정권은 코로나 사태 대응 문제로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으며 최근 자신의 측근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기 위해 법안을 만들어 국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이 교수는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2015년 합의를 두고 일본 정부 책임보다는 시민단체들의 강경노선이 문제라고 해왔기에 마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를 것”이라며 “지금은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지만 잘못하면 혐한으로 갈 수 있는 계기도 될 것 같다”며 우려했다.

국내 보도 외에 위안부 관련 저서 출판에도 일본은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정당화해온 이용훈 전 서울대 교수의 저서 <반일종족주의>는 지난 1월 일본어판으로 출간돼 4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이영채 교수는 “일본 정부나 우익 입장에서는 한국 전문가 집단이 스스로 ‘한국에 강제징용이 없었다’는 등 식민지 강제성을 부정하는 것이 면죄부가 된다”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반일종족주의>가 미치는 폐해가 엄청나서 올해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와 <반일종족주의 허구를 찌르다>는 책을 냈다. 위안부의 이번 사태가 자칫 일본 정부를 정당화시켜주고 아베 정권을 지지해주는 방향으로 가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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