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SM의 아이돌들이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자 '유럽, 신한류 열풍에 빠지다!', 한류가 유럽을 정복했다!'는 식의 보도들이 잇따랐고, 유럽까지 휩쓸었다는 우리 아이돌들은 새삼 경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자 비판적인 성격이 강한 매체들이 연이어 한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들을 보도했다.

때마침 유럽의 르몽드나 BBC 같은 매체들이 한국 아이돌 문화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런 비판엔 더욱 불이 붙었다. 대체로 아이돌뿐인 한류를 평가절하하거나, 노동착취에 기반한 맹목적인 애국-수출 지상주의를 개탄하거나, 혹은 상업적으로 기획된 한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내용들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네티즌들이 아이돌의 실력과 한류를 폄훼하지 말라며 반발했다. 평소에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한 진보매체 사이트에도 이례적으로 관련 글에 반박 댓글이 줄줄줄 달리는 현상이 생겼었다. 비판적인 매체들은 흔히 보수언론의 한류 찬양과 자신들을 대비시키기 때문에, 한류 담론에 졸지에 보혁구도가 전개된 모양새다.

한류 열풍에 대한 우리 내부의 반응을 한쪽에선 '애국주의에 찌든 대중의 맹목적 열광'쯤으로 치부하고, 반대쪽에선 그것에 반발만 하고 있으면 감정의 앙금 이외엔 우리에게 남는 것이 없다. 날선 비난으로 인터넷 댓글난만 풍성해질 것이다.

아이돌 한류에서 그것의 문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긍정하면서 그것을 더욱 풍성한 한류로 확장하자는 더하기식의 생각이 필요하다. 또 대중의 입장에서도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불쾌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런 비판을 아이돌 문화 선진화를 위한 자양분으로 수용할 줄 아는 더하기식의 생각이 필요하다. 이런 것이 건설적인 논의의 구도다.

▲ 파리 제니트 공연장에서 열린 SM 타운 라이브 공연을 보며 한류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아이돌은 분명히 세계 최고

일본 망가의 영향으로 일부 마니아들이 '이상하게도' 한국 아이돌에게 꽂혔다든가, '이 모든 것이 다 유튜브 등 인터넷의 공이다'라는 식의 분석들도 일부 나왔는데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그런 것들도 당연히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렇다고 전지구적 한류의 핵심적인 이유라고는 할 수 없다. 인터넷에서 한국의 콘텐츠만 유통되는 것이 아닌데 왜 유독 한국 것만 떴는지, 혹은 일본 망가의 팬들이 왜 일본의 아이돌을 제쳐놓고 한국 아이돌에 열광하는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류의 핵심적인 원인은 컨텐츠의 힘에 있다. 이것만이 '왜 지금 세계가 한류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다. 한국 아이돌은 지금 현재, 분명히 세계 최고다.

한국 아이돌이 '음악의 끝판왕'이라는 말이 아니다. 10~20대를 대상으로 한 댄스퍼포먼스 가수팀으로는 세계에 따라올 나라가 없다는 얘기다. 한국 대중음악산업은 확실히 엄청난 아이들을 길러냈다. 동양인이라는 한계만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뜨거운 인기를 누렸을 것이다.

외국 작곡가나 안무가 등 외국인들의 참여가 주효했다는 분석들이 있는데 이것도 본질에서 벗어난 지적이다. 외국인들이 참여하지 않았어도 한류의 대세에 큰 지장은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건 한국 대중음악산업이 아주 적극적으로 미국의 흑인음악과 유럽의 팝을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한국 사람이 만들어도 국제적인 음악이 나온다.

한국 대중음악산업은 말하자면, 10~20대를 대상으로 한 댄스퍼포먼스 시장에 새로운 음악적 글로벌 스탠더드를 창출한 셈이다. 한국의 동양적인 것에 미국과 유럽의 느낌이 완전히 융합됐다. 마침 미국식 팝스타들에게는 없는 '해맑음', '귀여움'이라는 차별성도 있었다. 이것이 브라질에서 프랑스까지 세계의 젊은이들이 이름조차 생소한 한국의 가수들에게 열광하게 된 이유다.

동양인이라는 한계 때문에 세계적 슈퍼스타급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인 건 확실하다. 한국 아이돌 문화의 문제가 너무 커서, 아이돌 한류로는 국가 이미지 개선 효과가 별로 없을 거라는 냉소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각국의 점잖은 문화엘리트들이 아무리 개탄해도 10~20대는 독자적으로 움직일 것이고 그들의 열광은 한국의 국가브랜드 효과로 이어질 것이다. 서양 여성이 동양 남성에게 환호한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굳이 이것을 축소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이돌을 육성한 것은 엘리트 체육을 육성해서 금메달을 따오는 것과 같다. 이것에 대해 비판을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의 금메달 무의미하다, 국제대회를 포기하자'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대표선수들은 그들대로 육성하되, 스포츠의 기반을 보다 폭넓게 확충하자는 더하기식의 생각이 의미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엘리트 체육계 내부의 폭력이나 인권침해, 파벌구조 같은 불합리성 문제도 고쳐나간다. 아이돌 한류도 이런 정도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될 것이다.

▲ 한류열풍 파리점령 ⓒ연합뉴스
세계 최고 패스트푸드의 힘

한국아이돌의 음악이 새로운 음악적 글로벌 스탠더드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좋은 음악이라고 할 수는 분명히 없다. 어머니가 아무리 유기농 채소를 활용해 정성껏 웰빙음식을 차려줘도 아이들은 설탕과 지방으로 점철된 자극적인 패스트푸드를 찾는다. 기껏 수정과 만들어줬더니 콜라 사달라고 우는 아이. 한국 아이돌 음악에 대한 서양 젊은이들의 열광은 이런 구도와 같다.

한국이 영혼과 진정성이 거세된 자극적인 음악상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음식시장에서 미국식 패스트푸드가 세계를 침공한 것처럼, 음악시장에서 한국식 패스트푸드가 세계로 진출하는 형국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문화엘리트들의 비명과 개탄이 터져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 내부의 개탄도 당연하다.

배철수는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한국 젊은이들이 팝송을 너무 안 듣는 것이 고민이다'라고 했다. 팝에는 우리보다 월등한 음악적 다양성과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아이돌 댄스음악뿐만 아니라 정책적으로 보다 다양한 뮤지션들을 지원해서 이런 다양성과 진정성이 길러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외국의 문화엘리트들이 '우리 젊은이들이 한국의 다양한 음악을 너무 안 듣는 것이 고민'이라고 할 정도가 됐을 때 한국은 진정으로 존경받는 국가가 될 것이다.

또, 미국의 패스트푸드가 트랜스지방 문제 같은 것들이 터졌을 때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처럼, 한국 음악산업도 한국 아이돌에 대한 치명적인 지적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바로 어린 가수들의 인권 문제다. 이 부분이 해결됐을 때 한국식 음악 패스트푸드의 이미지가 더 좋아질 것이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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