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의 백면서생인 허 생이 십년 글공부에 지친 아내의 불평에 공부를 접고 부자에게 돈을 빌린 후 처음 한 일은 안성으로 내려가 과일을 매점매석한 일이었다. 값이 오르기를 기다려 10배의 이문을 남긴 후 농기구나 의복을 사 제주도로 가 또 큰 이익을 남기고, 또 그 돈으로 망건을 만드는 데 쓰이는 말총을 매점매석해 또 10배의 이익을 남겼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로만 보면 요즘 말로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이나 공정거래법에 의해 물가 사범이나 불공정 거래 사범으로 처벌해야 할 악덕업자 쯤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후 허생은 도적떼들을 무인도로 데려가 열심히 농사를 짓게 하여 양곡을 대량 생산하고 또 이를 흉년이 든 일본에 팔아 거금을 마련하기도 하고 또 빈민 구제에 사용하는 등 허위의식에 가득한 현실의 양반사회에 대한 비판과 이상사회에 대한 지향성을 보여준다.

▲ 조선일보 2월29일자 B1면.
최근 전분당협회는 5월부터 GMO옥수수의 수입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국제 옥수수 가격의 폭등이 직접 원인인데, 30%에 이르는 일반 옥수수와의 가격 격차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들린다. 흔히 유전자 조작 식품이라 부르는 GMO 식품이 안전한 지, 혹은 그 위험성은 어느 정도인지, 위험의 개연성이 어떻게 드러날지, 혹은 우리나라의 GMO표시 기준은 얼마나 타당한 지 등을 거론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숙고하고 합리적으로 선택한 결과로서가 아니라, 아무런 선택권없는 국제 곡물 시장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빵, 과자, 물엿 등 어린이로부터 전 국민이 먹게 될 식품이 GMO화 되게 된 점을 말하는 것이다.

국제 유가 100$ 시대, 지난 1년 사이에 2배로 오른 기름값이 시민들의 삶의 여유를 압박해 들어오고 있다. 그나마 지난 1년 새 200-300% 오른 국제 곡물가, 엊그제 하룻밤 새 25%가 올랐다는 국제 밀 가격 등에 비하면 기름값은 양반이다. 식량의 전체 자급률이 25% 안팎에 머물고 있는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폭등하는 국제 곡물가격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80년대 초 우리나라의 쌀이 20-30% 부족한 것을 알게 된 국제 곡물 메이저(다국적 기업)들이 순식간에 국제 쌀값을 2-3배로 올렸고 울며 겨자 먹기로 사 올 수밖에 없었던 일은 그리 먼 기억이 아니다. 국제유가와 국제곡물가의 폭등은 여타 제반 생활 물가의 상승으로 이어져 이미 서민들의 가계부에 구멍을 내고 얇은 지갑에 찬바람이 들게 하고 있다.

이러다간 GMO농산물의 위험 운운하는 것이 배부른 소리라고 아우성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미 시골에 버려진 농지, 휴경하는 농지가 넘쳐나고 있어도 시장 경쟁력이 없는 우리가 다시 옥수수 농사, 밀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현실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앞으로 국제 옥수수값 밀값이 5배 10배로 올라도 꼬박꼬박 맞돈 내고 사먹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의 예고편을 경험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다. 산업화 이후 수십년 만에 국민소득 2만$ 시대를 맞았고, 식량 자급율이 1/4밖에 안되어도 그저 돈이 있으면 사먹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지내온 셈인데 사실상 식량이 무기화되어가는 지금 아무런 방어력을 갖지 못한 상황으로 인해, 이제 그 유탄을 시장보러 나가서 장바구니 물가에 힘겨워하는 서민들이 맞게 된 것이다.

연일 보도되는 새 정부 장관 내정자들의 애기는 4-5채의 아파트 등 부동산 얘기, 수십억원의 예금과 자녀 등 가족의 이중국적, 교수들의 논문 표절 등에 관한 내용들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업무 영역과 관련된 정책 과제에 대한 능력 등에 대한 검증은 볼 수 없고, 물가 대책 등 시급한 정책 현안들에 관한 관심도 찾을 길 없다.

허생의 얘기처럼, 경작지를 확대하고 식량의 생산을 증대하여 식량 자급율을 높이라고 하면 그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너무 한가한 얘기 아니요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수출 증대하여 식량은 사먹으면 되지 우리 생산성으로 그게 가능한 일이요 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당장의 발등의 불인 국제 곡물가격과 유가의 앙등, 이로 인한 심각한 생활물가의 불안, 국제 옥수수 값의 앙등으로 GMO 옥수수가 재료인 과자를 먹어야 한다는 현실에 대한 대책은 있어야 하겠다. 그저 국제 곡물가, 유가 상승 탓, 국제 시장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에 대한 답을 국민들은 새정부로부터 듣고 싶어한다.

대학 때 총기독학생회장을 지냈다. 졸업 후 서울YMCA 청년회원 활동을 시작해 87년 간사를 거쳐 올해 7월 시민운동에서만 20년이 지났다. 소비자보호, 법률구조, 사법개혁, 방송개혁, 공정거래 등 시민생활의 크고 작은 일에 함께했다. 시민의 것을 빌려 쓰면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이들로 인해 피해당하는 시민 삶의 현장을 살피겠다. 강물처럼 흐르는 시민, 소비자의 마음과 생각을 드러내 알려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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