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박정환] 최근 ‘사냥의 시간’과 ‘인간수업’이 다소 실망을 안겼기에 넷플릭스 해외 콘텐츠로 눈길을 돌렸다. 독일의 웰메이드 드라마 ‘다크’, 2018년 에미상 수상작 ‘그 땅에는 신이 없다’ 및 코엔 형제가 만든 ‘카우보이의 노래’ 등의 수작과 함께 프랑스 공포물 한 편이 눈에 띄었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2019년 스티븐 킹을 인용해 할로윈에 볼 만한 공포 콘텐츠를 추천했다. 드라마 부문에서 스티븐 킹이 추천한 공포 콘텐츠는 자국 드라마가 아닌 프랑스 드라마 ‘마리안(Marianne)’. ‘마리안’을 추천한 스티븐 킹은 “아주 아주 무섭다”면서 “아주”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넣어가며 강조했다.

‘마리안’은 일본 공포 ‘링’과 같은 성격을 갖는 공포 드라마다. 과거 ‘링’이 비디오테이프라는 매개체를 통해 공포를 감염시켰다면 ‘마리안’은 ‘글’이란 매개체를 통해 소설이라는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설정이 현실에서 공포로 이뤄진다. 매개물을 통해 현실에 영향력을 끼친다는 설정이 ‘링’과 접점을 갖는 것.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리안>(Marianne)

‘애나벨’ 등의 공포물은 많은 경우 그 기원이 공포가 발원하는 시기로부터 100여 년 안팎이라는 가까운 시간적 간격을 갖는다. 하나 ‘마리안’은 그 공포의 기원이 근 시점이 아닌 17세기 과거로부터 기원한다. ‘오멘’처럼 상당한 기간 공포의 기원이 형성된다는 점에 있어 타 공포와 다른 점이 있다.

‘마리안’은 과거 17세기 공포에 겁박된 사제 하나가 불태워야 할 것을 불태우지 못했을 때 400년이 지난 현대에 와서 후세가 공포에 질식당한다는 설정을 갖춘다. 악의 힘을 두려워한 한 수사가 400년 전에 저지른 ‘직무 유기’가 현대에 와서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리안’에서 악과 대항하는 주체는 신부와 같은 ‘영적 권위자’가 아닌 소설가와 그의 친구들이다. ‘마리안’은 악의 실체에 맞서 영적인 전문가가 대항하는 ‘검은 사제들’이나 ‘엑소시스트’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사제 같은 영적 권위자가 중세시대 악과 주체적으로 대항할 법하지만, 영적 권위와는 거리가 먼 소설가 등의 일반적인 캐릭터가 악의 기원을 추적하고 악과 맞선다는 점에서 기존 공포영화와 차별화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리안>(Marianne)

바로 이 두 차이점, 400년 전 한 수사의 직무 유기가 21세기 프랑스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문제와 함께, 신부 같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초자연적인 악과 맞서 싸운다는 ‘마리안’의 설정은 프랑스의 종교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예로부터 프랑스는 스페인과 함께 ‘구교의 나라’, 가톨릭이 종교적 우위를 갖는 국가다.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여왕 마고’ 속 시대적 배경인, 구교도가 신교도를 무참히 학살했던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만 보아도 프랑스는 개신교보다는 가톨릭에 우호적인 종교적 스탠스를 갖는 국가다.

그런 프랑스에서 나온 드라마가 영적인 권위를 갖는 수사에게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설정도 모자라, 400년 전 한 수사가 저지른 직무 유기로 말미암아 현대까지 공포가 엄습한다는 설정은 프랑스가 전통적으로 갖는 가톨릭에 대한 권위를 상당 부분 내려놓았기에 이례적인 드라마라고 평가할 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리안>(Marianne)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제외하고, 사제와 같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영적인 악과 대결한단 설정과 함께 ‘마리안’에서 특이한 점은 ‘우정’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마리안’에선 15년 전 고향을 등진 주인공 엠마를 위해 친구들이 다 같이 힘을 합치고 악에 대항한다. 엠마 역시 15년 전 고향을 멀리했는데 이런 엠마의 행동 또한 친구들을 위한 우정에서 발원한 행동이다.

통상적인 공포물에서는 ‘가족주의’가 빛이 난다. 반면 ‘마리안’에선 이와 같은 우정, 특히 엠마와 그다지 접점이 많지 않던 형사조차 엠마와 그의 친구들을 위한 아군이 된다는 설정은 ‘마리안’이 ‘이타주의적 성향’을 갖춘 공포물이라는 차별점을 갖게 만든다.

‘마리안’에선 기존 다양한 공포물, 이를테면 ‘분신사바’와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 코난 도일의 소설 ‘바스커벌 가의 개’ 등에서 나타나는 온갖 설정을 볼 수 있다. 각 장르 속에 내포한 공포 코드가 드라마의 어느 장면에서 드러나는가를 찾는 것도 ‘마리안’의 관람 코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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