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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케이팝 산업의 운명[culture critic] 미국, 일본 시장의 단절과 중국 시장의 부상, 국내 시장의 의미
윤광은 | 승인 2020.05.01 11:13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지구의 시간을 멈춘 역병의 마수는 케이팝도 피해 갈 수 없다.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하며 국가 간 교류와 경제활동이 정전됐다. 사람들이 모이는 야외 활동과 공연, 집회 역시 세계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케이팝 가수들의 해외 활동은 전면 취소됐다. 국내에서는 확진자가 줄어들며 아이돌 그룹들이 컴백을 앞두고 있다. 유료로 감상할 수 있는 온라인 공연 콘텐츠를 새로운 수익 모델로 준비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온라인 감상은 실제 공연을 관람하는 현장감과 가수의 얼굴을 직접 목격하는 감격을 대신할 수 없다. 케이팝의 메인 수익 모델은 예나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오프라인 공연 투어, 그리고 그걸 넘어 공연장에서 파는 굿즈다. 저런 방식의 수익 모델은 잠정적이거나 부수적인 수단으로 유효할 뿐이다.

바이러스는 기성 세계 질서의 지도를 뭉개 버렸고 인류에게 그것을 다시 그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케이팝의 역사는 곧 해외 진출을 통한 산업 확장, 세계화의 역사다. 케이팝의 세계화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권력을 가진 미국 대중문화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사이즈가 작은 나라다. 미국이 세계 시장을 자국 문화의 부속 영토로 만들었다면, 한국엔 타국 문화를 흡수할 수 있는 크기의 내셔널 시장이 없다. 그렇기에 세계화는 '정복'이 아닌 이산으로 진행되었고 내셔널 시장의 규모를 보완해 줄 해외 시장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팬데믹은 케이팝을 좀 더 근본적인 층위에서 흔들고 있는지 모른다. 케이팝의 메인 글로벌 시장, 그리고 최근 케이팝에게 헤게모니를 선사한 대륙으로의 항로는 단절됐다.

지난해 5월 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로즈볼 스타디움에서 열린 그룹 방탄소년단 러브 유어 셀프-스피크 유어 셀프 투어에 6만여 팬들이 찾아와 3시간 가까운 공연을 즐기고 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케이팝이 글로벌 뮤직으로서 입지를 재차 확고히 하고 나라를 대표하는 산업으로서 세계적 위상을 누린 건 북미에서의 방탄소년단의 성공이 컸다. 미국은 세계 대중문화의 표준이자 중심지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방탄소년단이 초유의 동양인 아이돌 스타로 각광 받으며 케이팝의 브랜드 가치도 재고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코로나19의 피해가 가장 큰 나라다. 매일 같이 수만 명의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고 사회적 활동이 통제되고 있다. 언제쯤 사태가 정상화될지 짐작하기 힘들다. 북미에서 투어나 공연을 한다든가 최근 북미에서 성과를 거둔 케이콘처럼 케이팝이란 브랜드를 알리는 활동을 하는 것도 상당 기간 불가능할 것이다.

한편, 케이팝의 해외 수익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장은 일본이다. 동아시아는 유럽과 북미에 비해 피해가 적은 지역이지만, 일본은 개중 피해가 큰 국가이고 아베 정부의 방역은 불투명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더구나 한국 정부는 ‘상호주의’라는 명분으로 일본에 대해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하는 등 문재인 정부 취임 이래 악화되던 양국 관계가 또다시 어그러졌다. 일본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 세계 2위의 음악 시장으로 케이팝 그룹이 일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장이었지만, 언제쯤 현지 활동이 재개될 수 있을지 가물거린다. 각 기획사는 현지에서 활동을 재개하는 데 부담감 역시 안게 되었다.

케이팝은 글로벌한 장르로서 상징 자산을 쌓은 대륙과 해외 시장의 물적 기반을 이루는 지역을 잠정적으로 잃어버린 상태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해외 수출 실적’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지역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최근 케이팝 산업의 명징한 추세는 팬덤 규모의 지표로 통하는 앨범 초동 판매량 상승세다. 이건 보이그룹과 걸그룹을 막론하는 현상인데, 핵심 요인은 해외 앨범 공구의 증가다. 거기서 중국이 차지하는 지분이 절대적이다. 현지 인기에 따라 공구 물량에 차이가 크긴 하지만, 아이돌 그룹의 컴백이 거듭되면서 중국 공구 물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수혜는 중국인 멤버가 있는 그룹, 중국에서 인기를 끈 음악 서바이벌 방송에 출연한 그룹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이달 초 컴백한 걸그룹 (여자) 아이들은 초동 판매량 11만 2000장으로 지난 앨범의 2만 3백 장을 무려 여섯 배 가까이 갱신했다. 중국 발 자료에 의하면 여기서 차지하는 중국 공구 물량이 8만 2천 장이다. 이달 솔로 앨범을 발표한 마마무의 솔라 역시 초동 앨범 판매량 7만 3천 장을 기록하며, 솔로 활동으로 마마무 자체의 초동 기록 7만 장을 경신했는데, 중국 공구 판매량이 상당한 비중일 것으로 추정된다. 두 그룹의 공통점은 엠넷 ‘퀸덤’ 출연인데, ‘퀸덤’은 한국에선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중국에선 시청자 층이 있었다고 한다. 29일 어제 컴백한 보이그룹 NCT DREAM 역시 초동주 첫날 판매량만 37만 장으로 기존 판매량을 큰 폭으로 갈아치웠다. 이 중 중국 공구가 27만 장가량으로 추정된다.

Mnet 예능프로그램 <퀸덤>

케이팝은 온전한 팬덤 산업으로 재편되었는데, 그 토대를 이루는 음반 판매량을 다른 차원으로 도약시켜 주고 있는 발판이 중국 시장이 된 모양새다. 한한령으로 현지 활동이 단절되며 한동안 중국 시장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방탄소년단을 제외하면 다른 그룹의 인기와 현지 활동 수익이 극히 제한적인 미국 시장보다 중국 시장이 케이팝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중국은 코로나19가 시작된 국가이지만, 현재 감염자 확산 추세가 어느 정도 통제된 상태로 추정되며, 일본과 달리 한국 정부와의 외교 관계가 우호적이다. 향후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정리되느냐, 한한령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해제되느냐에 따라 현지 활동을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일본을 기반으로 북미를 향해 나아가던 케이팝 해외 시장 항로가 중국으로 선회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팬데믹 이후 케이팝의 뉴 노멀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맹점을 간과할 수 없다. 중국은 내수시장이 큰 만큼 음악 시장의 잠재력도 거대한 나라지만 아직까지 국가 규모에 비해 음악 시장이 크지 않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보다 음악 시장의 규모가 작다(한국 세계 6위, 중국 7위). 일본 수준의 음악 시장 규모에 이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또한 말했듯이, 아이돌 그룹의 핵심 수익 모델은 앨범 판매가 아니라 투어 공연이고, 투어 공연 자체를 넘어 공연장에서 판매하는 굿즈 수익이다. 중국 현지 공연 시장이 케이팝 그룹이 투어 공연을 할 수 있는 규모로 열려있는지는 불분명하다. 한한령 이전에도 중국 당국의 통제로 공연 규모는 1만 명을 넘지 못했고, 정산 구조가 불투명해 수익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공연 관람 문화가 생활화되어 있어 투어 공연을 진행하기 용이한 일본 시장과 차이가 있다. 또한 케이팝 산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흡수를 해서 자국 문화산업을 육성하려 하는 중국 정부의 ‘보호무역’ 기조 역시 현지 활동의 한계를 직감하게 한다. 아무리 많게는 수십만 장에 이른다고 해도 바다 건너에서 사가는 앨범 자체가 대안이 될 수는 없기에, 중국이 케이팝 산업의 어떤 미래라고 말하기엔 여러모로 섣부르다.

팬데믹은 언제쯤 종식될지 알 수 없고, 이 사태는 수십 년 간 지구에 몰아닥친 세계화의 물살을 정지시켰다. 국가 간 이동과 수교가 제한된 점, 큰 정부의 복권과 자국 내 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등 세계화 이전의 흐름으로 역행하는 조짐이 보인다. 같은 행간에서 팬데믹 시대를 버텨낼 기반을 가진 아이돌 그룹도 한국 내에 단단한 팬덤이 있는 그룹이다. 현재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확진자가 적은 국가 중 하나이고 다른 국가들에 비해 공연 활동 등 사회적 활동이 이르게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국내에서 케이팝 산업은 이미 서브컬처로 분립되었고 팬덤 시장은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다. 국내 팬덤 파이는 양극화된 상태이며 후발 주자가 새롭게 파고들 여지가 부족하다. 케이팝 산업이 코로나19를 돌파할 비상구의 불빛은 멀리서 깜박거리고 있다. 

윤광은  https://brunch.co.kr/@mcwann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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