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김종인 비대위’를 두고 미래통합당은 아직도 갈팡질팡이다. 28일 상임전국위 및 전국위 결정을 앞두고 3선 당선인들이 27일 모여 논의를 하는 상황이다. 이건 김종인 비대위를 둘러싼 구도가 그만큼 복잡다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무소속으로 생환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강한 반발이다. 홍준표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다수의 글을 연이어 올리며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에 대한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의 논리는 부패인사는 비대위원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1993년 동화은행장이던 안영모 씨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고 풀려났다. 이때 해외로 도피했던 ‘5, 6공의 돈줄’ 이원조 전 의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관련 수사로 1995년 기소될 때 김종인 전 위원장 역시 다시 한 번 기소됐다.

홍준표 전 대표는 이 시기에 자신이 검사로서 김종인 전 위원장 심문에 관여했다고 주장한다.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가 이런 짓을 하고도 부끄럽지 않느냐”, “더 버티면 뇌물 액수가 늘어날 수 있으니 지금까지 추적한 걸로 끝내자”는 단 두 마디로 김종인 전 위원장의 자백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24일 오후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21대 국회,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토론회'에 참석한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물론 세상살이의 순리로 볼 때 저 두 마디가 결정적이었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홍준표 전 대표가 이런 주장을 하는 건 기싸움과 흠집내기의 성격이 짙다. 애초에 김종인 비대위 찬성 입장을 밝혔던 홍준표 전 대표가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유는 김종인 전 위원장이 대권 문제를 거론했기 때문인 걸로 보인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지난 대선에 출마한 사람들은 이미 (부정적인 의미에서) 검증이 된 거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 대선 재출마를 목표로 하고 있는 홍준표 전 대표로서는 이런 발언들을 통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선 복당조차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유승민 의원 역시 김종인 비대위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이쪽은 논리가 좀 다르다. 언제까지나 외부 인사에 맡겨서는 제대로 된 혁신은 어렵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혁신-자강론인 셈인데, 유승민 의원의 개념에 따르면 ‘김종인 비대위’는 혁신의 걸림돌이 되는 셈이다.

이 두 사람의 태도는 당권과 대권에 관심있는 인사들이 자신들의 진로에 따라 제각기 다른 판단을 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애초에 김종인 전 위원장이 비대위 활동 기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려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기한을 말하면 자연스럽게 전당대회 일정을 말해야 하고, 그러면 논의의 방점은 비대위 이후 당권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찍히게 된다는 것이다.

차기 대선 관련해 김종인 전 위원장이 내세우는 논리 중 하나는 세대교체론이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70년대생 경제전문가’가 대선에 나섰으면 한다는 취지의 언급도 했다.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미래통합당 내에 이 조건에 맞는 인물은 몇 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언론은 김세연 의원이 김종인 체제의 최대 수혜자가 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는 취지의 보도 역시 하고 있다. 일부 보수언론은 김세연 의원이 당 해체 발언의 당사자이고 공천관리위원으로서 선거 패배에 책임이 있다는 논리 등을 들어 벌써부터 견제에 들어간 모양새다.

어쨌든 김종인 비대위를 둘러싼 찬반 구도는 이런 점에서 보면 자강-혁신론 대 세대교체론의 대결이라는 맥락도 있는 듯 하다. 앞서 김세연 의원은 ‘830세대’를 언급한 바 있다. 과거 바른정당, 새로운 보수당 등에서 유승민 의원과 행보를 함께했던 일부 인사들은 세대교체론에 동의한다는 취지에서 김종인 비대위에 찬성하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의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언급도 ‘부패인사’라는 수사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지만, ‘구시대적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효과도 있다.

과거 사례를 돌이켜 볼 때 김종인 비대위가 등장하더라도 미래통합당이 실제 세대교체에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갖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세대교체 여부 자체보다는 그런 주장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를 따지는 게 더 중요할 것 같다. 김종인 전 위원장과 유승민 의원 모두 정책적 중도화 및 이를 통한 수도권 중도층 공략의 필요성이라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그런 것인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한다.

여기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한 입장이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자체에 대해선 반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발동해서라도 집행하면 될 일인데 불필요하게 야당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정도의 입장일 뿐이다.

반면 유승민 의원은 선거 기간 동안 정치권의 긴급재난지원금 논의를 ‘악성 포퓰리즘’으로 규정한 바 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차이는 김종인 전 위원장은 말 그대로 정책적 좌클릭의 필요성을, 유승민 의원은 ‘태극기 부대’와의 결별을 통한 세련된 시장주의적 보수로의 변화를, 마치 그런 적이 없었다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정치 담론의 특성상 두 주장은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면 명확히 구별되지 않거나 경영인 혹은 경제전문가라는 인물상으로 귀결되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김종인 비대위를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보수정치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담론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선거에서는 말 그대로 죽을 쑤고 있지만 담론의 차원에서는 보수정치가 나름의 포석을 갖춰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건 문재인 정권 들어 우리가 반복 확인하고 있는 대중의 공정성에 대한 갈망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런 점에서 어쩔 수 없이 상당 기간 보수정치의 몰락은 계속되겠지만,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이 그걸 즐기고만 있을 수는 없다. 어렵겠지만, 그대로 대안을 말하는 정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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