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남규 칼럼] 제21대 총선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180석 공룡 여당’의 탄생과 미래통합당의 패배, 그리고 군소정당의 몰락으로 요약될 수 있는 선거 결과로 제21대 국회는 크게 두 가지 지점에서 제20대 국회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제1당이 우세한 양당제(1.5당제)로 되돌아갔고, 영남 지역주의가 영향력을 다시 발휘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들은 모두 소선거구제가 만든 일종의 착시현상이 작용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2016년 제20대 총선은 한국 정치사에서 드물게 다당제 국면을 만들었다. 어느 당도 단독으로 과반을 갖지 못하는 묘한 의석수 배분으로 ‘협치’가 강제됐다. 오랫동안 거대 양당으로 군림해 온 123석의 더불어민주당과 122석의 새누리당이 군소정당인 국민의당(38석)‧정의당(6석)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군소정당과의 연대로 과반은 이룰 수 있어도, 양당 간 협의가 없는 한 국회선진화법이 만든 새로운 기준인 180석에는 미칠 수 없는 균형이 제20대 국회에는 있었다.

[그래픽] 21대 총선 정당별 의석수 현황 (서울=연합뉴스)

제21대 총선에서 이 균형은 무너졌다.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180석을 점했다. 국회선진화법 이전에는 180석이 아닌 과반이 독점의 기준이었음을 고려하면, 새누리당이 152석으로 단독 과반을 차지했던 제19대 총선과 같은 모양새인 셈이다. 나머지 정당들이 어떻게 합종연횡을 해도 여당의 독점적 위치를 무너뜨릴 수가 없다. 양당이 경쟁하는 양당제를 넘어 1.5당제에 가깝게 된 것이다. 의회 민주주의의 장점이 정당간의 견제와 그에 따른 협상에 있다고 본다면, 이는 시대적 후퇴다.

제20대 총선은 뿌리 깊은 영남 지역주의에 마침내 균열을 낸 선거이기도 했다. 소위 ‘범진보’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정의당‧민중당 그리고 무소속이지만 범진보 정당 출신인 후보들이 경남(4명)‧부산(5명)‧울산(2명)‧대구(2명)에서 무려 13명이나 당선됐다. 이는 제19대 총선에서 해당 지역 당선자가 3명(경남 1‧부산 2)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약진이었다. 이러한 균열은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도 경남‧부산‧울산의 광역자치단체장을 더불어민주당이 가져오는 등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

제21대 총선 결과는 이 균열이 어쩌면 잔 흠집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경남(3명)‧부산(3명)‧울산(1명)‧대구를 통틀어 범진보 계열 당선자는 7명에 그쳤다. 특히 제20대 총선에서 당선된 현역 의원들이 대부분 낙선하고, 울산‧창원 등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범진보 계열이 패배한 것은 깊은 실망을 안긴다.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영남 지역주의가 다시 힘을 발휘했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역시 분명한 시대적 후퇴다.

이처럼 제21대 총선은 제20대 총선이 만들어낸 역사적 균열을 뿌리치고 한국 정치의 오래된 양상을 되살렸다. 당‧낙선이라는 결과를 놓고 보면 틀림없이 그렇다. 하지만 꼼꼼하게 표를 뜯어보면 조금 다른 결과가 보인다.

지역구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63석으로 전체 지역구 의석의 약 64%를 차지했지만, 실제 득표수를 따지면 전체 유효표(무효‧기권 제외)의 50%에 그친다. 반면 전체 유효표의 40%를 받은 미래통합당의 전체 지역구 의석수의 33%인 84석을 얻었다. 더불어민주당은 10%를 더 받았을 뿐이지만 거의 2배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한 셈이다. 이는 물론 단 한 표 차이로도 당락이 나뉘는 소선거구제가 만들어낸 결과다.

영남 투표 결과도 마찬가지다. 범진보 정치인이 획득한 의석수는 거의 반토막이 났지만, 실제로 획득한 표를 세면 오히려 제20대 총선에 비해 더 많다. <한겨레>의 분석(한겨레, “지역주의 회귀? 영남 민주당 득표율은 올랐다”)에 따르면 제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영남 지역에서 받은 표는 부산 37.8%‧울산 16.2%‧경남 29.8%‧대구 24.4%였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부산 43.5%‧울산 38.6%‧경남 37.1%‧대구 28.5%로 각각의 지역에서 유의미한 성장을 보였다. 그럼에도 의석수가 반토막난 것은 역시 소선거구제의 결과일 것이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은 접전이 다수 펼쳐진 수도권에서, 미래통합당은 그들의 위태로운 거점인 영남에서 소선거구제의 덕으로 큰 이익을 취한 셈이다. 바로 이러한 소선거구제 특유의 착시현상, ‘표의 불비례성’이 지난 선거법 개정 국면에서 두 당이 높은 수준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대했던 이유다.

착시현상이 일어난 곳이 또 하나 있다. 정의당이다. 정의당은 이번 선거에서 지역구‧비례대표를 포함하여 총 6석을 획득했다. 지난 제20대 총선에서 획득한 의석수와 같다. 정의당이 간절히 바라왔고 환영했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이후 첫 선거였음에도 지난 선거와 동일한 의석을 얻은 것은 아무래도 아쉬운 결과다.

하지만 표를 뜯어보면 다른 평가가 가능하다. 정의당이 제20대 총선에서 받은 정당 득표수(170만 표)에 비해 이번 총선의 득표수(270만 표)는 거의 100만 표 가까이 늘었다. 득표율로 봐도 7.23%에서 9.67%로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위성정당’이 없었다고 가정하면 의석 수도 달라진다. <한겨레>의 계산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 없이 비례대표를 내고 동일한 정당득표를 받았을 경우 정의당은 총 12석을 얻을 수 있었다(한겨레, “‘위성정당 없었다면’ 계산해보니…정의당 7석 더 얻었다”). 이번 선거에서 획득한 5석보다 7석이 많은 수다.

이 세 가지 ‘착시현상’이 가리키는 바는 명확해 보인다. 거대 양당이 반사이익을 취하는 소선거구제를 조금 더 비례적으로 바꾸고, 원칙 없는 위성정당의 창당이 불가능하도록 선거법을 고치는 것이다. 나아가 지역주의와 양당제를 넘어서기 위해 지역에서 분투하는 정치인들이 더욱 많아질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선거법 개정 당시 논의되다가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도입되지 못한 석패율제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제21대 총선에서 실험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정치세력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원칙 없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 선거법 개정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법을 통과시킨 뒤 브리핑한 것처럼, “국민의 지지와 정당의 의석 확보가 일치하지 않았던 비례성의 문제가 개선”(홍익표 당시 수석대변인)되는 것이 여전히 정치개혁의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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