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사전투표 참여 인원이 1174만 명이라고 한다. 투표는 이미 시작됐다. 투표율은 격전지일수록 높다고 한다. 이미 마음의 결정을 끝낸 각 세력의 핵심 지지층이 투표장에 나왔다는 얘기다. 투표일 당일에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중도층일지, 아니면 단지 일정상 사전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인지에 따라 유불리는 갈릴 것 같다.

아직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거나, 정했더라도 실제 투표장에 갈 것인지를 망설이는 유권자들이 있다면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슈는 무엇일까? 보수야당의 경우는 ‘막말 프레임’이다. 지난주 미래통합당 후보들이 내놓은 화려한(?) 막말들은 아직 보수야당이 대안이 될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지지를 철회할 이유를 주기에 충분했다. 황교안 대표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앞다투어 고개를 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상식을 벗어난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차명진 씨는 제명이 아닌 탈당권유 처분을 받았다. 이는 미래통합당이 사태를 바로잡을 의지가 전혀 없다는 걸 보여준다.

미래통합당 차명진 후보가 10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일대에서 유세차량을 타고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 이럴까?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층은 망언의 대상이 된 세월호 참사가 탄핵에 이르는 정서적 근거가 됐다고 본다. 선거 승리는 어차피 어렵고 지지층 결집을 통해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는 후보라면 세월호 참사를 깎아내리는 것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차명진 씨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막말은 대중의 반정치주의를 겨냥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겉으로는 온갖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뒤로는 사익 추구에 골몰할 뿐이므로 정치에서 대의를 논하는 것은 무가치하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보수세력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 대해 끊임없이 뒤집어 씌우려 한 프레임도 바로 이것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배보상금 등의 혜택이나 정계 진출을 위해 극한의 투쟁을 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이 그랬다. 보수언론이 문재인 대통령이 방명록에 ‘고맙다’고 썼다는 걸 근거로 정권이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공격한 것도 이에 해당한다. 따지고 보면 다 같은 형식이다. 대의명분은 거짓이고 진실은 오직 사익추구에만 있다는 세계관이다.

보수세력의 고질적 컴플렉스는 그들 자신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의명분을 내세울 주제가 되지 못한다. 자신이 ‘나쁜 놈’인 걸 부정할 수 없다면 남는 방법은 ‘모두가 나쁜 놈’이라는 걸 증명하는 길 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은 끝없이 자기들처럼 남들도 부패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노력의 화룡점정은 “솔직한 나쁜놈보다 거짓말쟁이 위선자가 더 나쁘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차명진 씨가 온갖 비난을 받고도 자기 주장을 포기하지 않으며 후원금과 천안함을 운운하는 이유 역시 이것이다.

미래통합당이란 이름을 끝내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이런 미궁 속에서 헤매고 있는 동안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순식간에 여당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본인의 자랑인 유투브 방송을 통해 ‘180석’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문재인 독재”를 말하며 “폭주냐 견제냐”란 슬로건을 내밀고 있다. 조선일보는 200석, 180석, 150석을 기준으로 각각의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보수진영의 위기감을 고조시키 데 골몰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여당 180석을 막자”는 주장은 틀렸다. 유시민 이사장의 계산은 더불어민주당, 더불어시민당, 열린민주당, 정의당, 민생당 등등이 얻는 의석을 모두 셈한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봐도 지금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로서는 180석을 장담하긴 어려운데, 유시민 이사장이 굳이 이런 언급을 한 이유는 국회선진화법에도 불구하고 국회 운영을 다수파 중심으로 할 수 있을 거란 전망을 말하기 위해서다. 조선일보가 “범여권이 이번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하면 개헌을 제외한 모든 법안 예산 정책을 정부 여당 마음대로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한 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실제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다. ‘4+1’은 이제 추억이 되었기 때문이다. 법안처리나 정책의 영역에서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열린민주당에 그칠 것이다. 그런데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강해질 대통령 임기 후반부의 특성상 여기서도 군식구는 하나라도 줄이는 게 낫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유시민 이사장 발언에 대해 “최근 당 밖에서 우리가 다 이긴 것처럼 의석수를 예상하며 호언하는 사람들은 저의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고, 열린민주당의 손혜원 의원이 “많이 컸다 양정철”이라고 쓴 것은 이런 구도의 영향이다.

2019년 5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오른쪽)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토크 콘서트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선거가 끝나면 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도 비례정당 전략을 둘러싸고 결산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시민당의 후순위 7명이 당선되지 않으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도 책임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될 수 있다. ‘비례연합정당’이라는 전략을 부정해온 열린민주당 입장에선 할 말이 생기는 거다. 이 경우 더불어민주당, 더불어시민당, 열린민주당의 밀고 당기기가 어지럽게 펼쳐지겠으나 이 상황의 본질이 당권투쟁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180석’ 발언은 선거판에선 ‘오만프레임’에 동원되겠으나 결국은 집안싸움으로 가는 징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정권 10년의 붕괴를 촉발한 친박-비박 갈등을 타산지석 삼아야 하지 않을까?

이제 다시 망설이는 중도층 유권자의 시각으로 돌아와보자. 거대양당은 뻔한 선택지이다. ‘그래도 방역은 잘했다’거나 ‘뭐가 어떻든 이 정권 사람들이 더 이상 활개치는 꼴은 못보겠다’는 등의 논리로 스스로를 납득시키든지, 아니면 제3의 선택지를 골라야 한다. 여기서 제3의 선택지는 선거운동기간 동안에도 장거리 달리기에 열중하며 오로지 스스로의 정치역정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거나, 사과를 했다가 말았다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 모를 자칭 ‘20년 진보정당’ 뿐이다. 이러고도 최종투표율이 높다면, 그건 무슨 의미겠는가? 유권자들은 지금 무엇에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 정치세력들이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나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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