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씨가 신설될 방송통신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이다. 반대 의견을 먼저 표한다. 왜? '여론' 즉 선전에 너무 가깝고, 언론 즉 민주와 한참 멀기 때문이다. 인·민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고, 대통령으로부터 너무 사랑받기 때문이다.

사랑은 곧 권력 아닌가? '여론조사'를 다중의 의견이라고 순진하게 받아들일 이 얼마나 되겠는가? <조선일보>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의 멘토(정신적 후견인).'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 고문 중 고문’으로 불린다."

▲ 조선일보 2월 27일자 8면
더 이상 정확할 수가 없다. 그는 오랫동안 이명박 대통령의 뒤편에, 옆에, 혹은 앞에 있었다. 2002년 현 대통령이 서울시장 도전을 선언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봤다. 작년 10월 대구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서울시장 당선 후 '대권'을 얘기하기 시작했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당시 이미 상대 후보로 정동영을 꼽았다고 한다. 이렇게 일찌감치 큰 그림을 그린 그는 2003년 10월 당시 작심한 듯, '노 정권은 권력 자체를 만들지 못해 누수 될 권력도 없다'고 했다.

2007년 7월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 후보 캠프의 상임고문으로 전면에 나서며, 이에 대해 여론조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신뢰성 훼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열린우리당만이 아니었다. 박근혜 후보 측에서도 "국민들이 왜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며 사퇴를 축구하고 나섰다.

맞다. 그는 한국갤럽 회장 출신이다. <동아일보> 때 어떤 칼럼과 사설을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2007년 3월부터는 공공연히 자신이 속한 회사의 보고서에 기초해, '대통령의 제1조건은 경제'라는 '천심' 즉 여론 정치의 강연을 하고 다녔다. 5월 박 전 대표 측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자, 한국갤럽 보유지분을 매각하고 사직한다. 그러고나서 이 전 시장 측 고문직에 당당히 위촉된다. 물론 '여론' 조사와 자문의 서비스는 계속된다.

그때부터 최시중씨에게는 온갖 이름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캠프의 숨은 실세', '이 후보가 진정으로 속을 터놓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그림자 참모', '캠프 대주주' 등의 수식어였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확정되었다. '공신 중 공신'으로서, "이 후보가 딛고 일어선 바탕은 국민 여론"이라며 자신의 역할을 숨기지 않는다. 정통 '조선맨'인 안병훈 전 박근혜 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다음과 같이 불만을 드러낸다.

"제일 문제가 된 것이 여론조사다. 여론조사를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자주 하고, 일주일에 수없이 나오는 여론조사가 (이병박 지지) 밴드 웨건 효과를 줬다."

"특정 캠프의 좌장과 관련 있는 여론조사 기관과 손잡고 한 것은 조선이 잘못한 것"이라고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에게 항의한 사실까지도 밝혔다. 같은 이유로 '박사모'가 <조선일보> 절독 선언을 하고 나선다. 그렇지만 늦었다. 여론정치의 게임은 벌써 끝난 상태였다.

최시중씨는 다시 '8인회' 혹은 '6인회의'의 멤버로서 철저한 보안 속에서 대선 전략을 기획한다. 이명박 선대위 고문단에 공식 합류한다. 전략기획, 홍보가 여전히 최씨의 주력 분야다. 박근혜 측을 끌어안기 위해 소위 '6인방'은 해체되었다지만, 여전히 '실세 중의 실세', '이명박의 그림자', '형 같은 친구'로서 그랬다.

앞서 언급한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TV토론 등 언론대책을 위해 강팀을 만들고, 여론조사를 통해 선거 전략을 마련하도록 조언하고 있다"고 자신의 역할을 밝혔다. 어떤 '조언'을 주었는지를 모르지만, 정몽준 의원과 강현욱 전 전북지사의 지지를 끌어내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명박 특검 수용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대선에서는 우선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뉴스메이커>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다른 사안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정확한 예측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대통령 만들기'가 끝났고, '이의 사람들', '신주류', '일등 공신들', '막후 주역' 중의 대표로서 그의 하마평이 이어졌다. <한겨레>와 <동아일보>가 공인한 당선자의 '멘토' '2인자'는 이제 또 어디서 어떤 중책을 맡게 될 것인가? "내가 생각했던 대한민국을 이 당선자가 만들 수 있도록 계속 뒤에서 도와야지"라고 겸손해 했다. 그래서 인수위원장을 사양한 것인가?

대통령 인수위 민간자문위원과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일하는 와중에도 국무총리, 국정원장, 비서실장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한나라당 비례대표 1순위 배정 이야기, 심지어 KBS 사장 후보 이야기도 나왔다. 바로 이런 와중에 최씨는 지난 1월부터 새로 구성될 초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도 언급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내정되었다. 그 많던 자리 중에서 다름 아닌 방통위원장을 찍은 것이다.

다음과 같이 정리할 때, <조선일보>는 또 한번 정확했다. '방송·통신 전문가도 아니고 행정 경험도 없는 최 내정자.' 맞다. 그는 방송과 통신과 거리 멀다. 수구신문, 정치공학, '여론' 조사는 잘 알겠지만 공영방송, 미디어 공공성, 문화 다양성에 관한 어떤 철학, 어떤 이념을 확실히 드러낸 바 없다. 대충 짐작만 갈 따름이다. 그런 그가 왜 많고 많은 자리 중에서 유독 방통위를 택한 것인가? 거꾸로 말해, 대통령은 왜 그를 굳이 방통위원회에 파견코자 하나? 이게 관건이다.

<조선일보>는 2월 1일자 기사에서 전날 포항 기자간담회에서 최씨가 한 말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당선인이 정말로 일을 하다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면 전천후 요격기처럼 긴급 투입되는 역할은 가능하지 않겠느냐." "차기 정부가 어려울 때 뒤에서 도와주는 보호막 역할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했던 최시중씨가 일선에 나온 게 다름 아닌 방송통신위원회인 것이다. 대체 무슨 부연설명이 필요하겠나?

▲ 조선일보 2월1일자 5면

'전천후 요격기'는 대통령의 콜에 따라 정한 목표점을 어떻게 조준하고 있나? 방송과 통신, 미디어의 판을 어떻게 정리할 계획이신가? 성공리에 미션을 마치고 그래서 좀 더 '명성'을 얻은 후에는, 또 다시 어디로 비행할 예정인가? 최대한 레이더를 작동해 요격기의 성능과 탐재한 무기, 전략·전술을 읽어내고, 무허가 일방 비행을 저지하며 다음 행선지까지 예측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경계경보 발령이다. 대피령이 아닌, 대치령이다.

'여론' 전문 요격기의 강습으로부터 언론의 공간과 표현의 자유를, 미디어 공공성의 가치를, 방송 노동의 권리를, 문화적 차이를, 민주주의를 막는 힘들고 긴 싸움의 개시다.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신 정권의 체계적·전략적 배치의 핵심 사안이다. 비전문 위원장의 일방 비행은 여타 위원들의 후진 결정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래서 다시 한번 엥, 사이렌이다!

지금처럼 ‘비평의 무기’를 예리하게 연마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할 때가 있을까? 벼락같은 이성의 도끼질, 결을 거스른 감수성의 대패질에 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래디컬’한 저널리스트로의 변신. 자본권력과 국가권력, 매체권력, 지식권력이 나의 상대다. 가끔 참패당하고 때로는 붙잡고 버티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왼손펀치 한방을 가진 선수로 남고 싶다. 인민은 착하고 또 무섭다. 이들과 함께하는 비평 말고 그 어떤 것이 후기근대, 후기자본의 불모지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 목청 낮춘 채 예의주시하는 보통사람들의 삶, 이들의 언어에 스며들어 비평의 유격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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