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한국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80일 지났다. 정부와 지자체는 매일 코로나19 확산 현황을 브리핑하고 언론도 이에 발맞춰 보도하고 있지만 이 중 일부 보도행태는 오히려 시민들의 공포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코로나’가 언급된 기사 건수를 분석한 결과,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지난 1월 20일부터 3월 29일까지 총 6만665개의 기사가 보도됐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코로나19 보도가 인포데믹스(information 정보 + epidemics 전염병 합성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준희 교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소셜미디어보다 뉴스에서 부정적인 키워드가 더 많이 나타났다.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정 교수는 9일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미국 동서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바이럴 뉴스 : 미디어와 코로나 판데믹-한미언론 화상 토론회’에서 “현재 미디어 소비 양상에서 발견되는 것은 불안, 공포, 분노, 혐오라는 감정들”이라며 “미디어를 통해 들어오는 공포는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이 크다”고 강조했다.

미디어가 주는 공포 자극은 주변에 위협이 무엇인지 살피고 문제해결자들에게 해결방안을 촉구하는 순기능을 낳기도 하지만 보다 자극적인 정보를 찾게 되고 이기적인 선택을 조장하는 역기능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들은 코로나19 관련 지역감염 소식을 전할 때 ‘뚫렸다’, ‘창궐’, ‘대혼란’과 같이 자극강도를 높이는 용어를 사용해 보도했다. 정 교수는 “코로나19 사태에 언론이 특정 정보를 더 찾게 만드는 보도를 했는지 공포에 멈춰서 불안에 떨게 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감염병이 퍼지는 시기에 가장 유해한 정보로 ‘교란정보’를 꼽았다. 교란정보는 의도적으로 정보 질서를 흐트러트리기 위해 나온 정보다. 정 교수는 교란정보는 가짜뉴스처럼 규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확한 교란 지점을 짚어 교정해주는 대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대표적인 교란 정보로 중앙일보 보도를 꼽았다. <단독/“‘전세기 철수’ 우한 교민, 2주간 천안 2곳에 격리한다”>(1/28), <“인구 65만 도심에 우한교민 수용? 무슨 죄냐” 불안한 천안>(1/28) <“살찌는 식단, 특히 찬밥 맘 안들어” 격리 우한교민 글 논란>(2/12) 등이다.

정 교수는 “정부의 우한 교민 철수 결정이 비난받을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독으로 보도하고 아산·진천의 불만을 그대로 내보내는 식으로 갈등 조장의 의도를 가진 보도”라고 지적했다. 또한 헤럴드 경제의 <르포/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가래침 뱉고, 마스크 미착용 ‘위생불량 심각>보도를 두고는 “차이나타운이 마치 감염병의 온상인양 낙인찍는 보도로 원인을 과잉화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보도를 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정보가 교정될 수 있었던 이유로 정 교수는 외신 보도를 꼽았다. 외신 보도는 객관적이라는 인식을 시민들이 갖고 있기에 외신에서 한국의 대응을 칭찬하자 악의적인 보도들이 수그러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의 투명한 정보 공개 노력이 교란 정보를 교정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언론이 소셜미디어(트위터, 블로그, 인스타그램)보다 부정감정이 더 높게 나타난 점도 자성해봐야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관련된 뉴스의 부정감정(67%)이 소셜미디어의 부정감정(61%)보다 높게 나타났고 뉴스의 부정감정은 ‘공격적’인 반면 소셜미디어의 부정감정은 ‘방어적’으로 나왔다. ‘위기’ 감성 연관어를 분석해보면 언론은 ‘심각’, ‘피해’, ‘고통’ 등 부정비율이 소셜미디어보다 높게 나왔다.

정 교수는 “통상적으로 감염병 사태에서 언론이 정확하게 분위기를 읽고 주도하고 있다고 보지만 의외로 합리적이고 긍정적으로 대응하는 건 소셜미디어 쪽이었다”며 “언론이 이같은 부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구정은 경향신문 기자, 김빛이라 KBS기자, 박유미 JTBC기자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이날 토론에 참석한 기자들은 현장취재가 어려워 상대적으로 수치에 집중된 보도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는 취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구정은 경향신문 국제부 선임기자는 “코로나19 보도에서 현장접근이 어렵다는 특수성이 있어, 보도 경향이 크게 수치와 정부 발표에 맞춰진 보도가 많았다”면서 “언론이 확산 현황을 보도하며 통계적으로 분석이나 질이 높은 보도를 하지 못했다. ‘돌파했다’는 식의 스포츠 중계식 보도, 어느 나라의 사망자가 몇 위로 가장 높다는 보도 등이 등장했다”고 밝혔다.

구 기자는 “언론이 부정적인 감정을 부추긴다는 데 동의한다”며 “정치적인 의도 뿐 아니라 관습적인 보도 행태, 즉 ‘언론은 무조건 비판을 해야한다’는 태도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된 정보를 교정하는 역할까지도 소셜미디어가 한 것 같고, 뉴스 소비자들의 필요와 감성을 기성 언론들이 못 따라갔다는 지적에는 동감하고 반성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빛이라 KBS기자는 “메르스 사태처럼 감염병이 일어날 때마다 보여온 패턴을 언론은 이번에도 보여줬다”며 “언론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려주는 ‘문제 해결형’ 보도 보다는 ‘중계식’보도를 택했고 코로나19 국면에서 얻을 수 있었던 신뢰를 깍아먹었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이번 코로나19 국면에서 SNS를 통한 전문가들의 활동이 돋보였다며 “언론에서 실시간으로 팩트체크하기보다는 (확산)결과를 재유포하다보니 시민들이 전문가 트윗을 보고 스스로 판단하거나 외신 기자들의 취재를 번역해 보는 방향을 택했다. 한국언론이 문제제기형 보도보다는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박유미 JTBC 정책팀 기자는 코로나19사태를 보도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기자들이 감염병 보도준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기자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갈등하게 되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직접 현장 취재가 어려워 대부분 언론이 비슷한 정보 취득수준을 가진 상태에서 타언론사와 차별을 두기 위한 방법 중 속도 경쟁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복지부 출입 언론사가 88개, 등록 기자 140명, 복지부 기자단톡방에는 180명이 넘게 들어와 있어 속보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박 기자는 정 교수가 앞서 지적한 중앙일보 보도에 대해 “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우한 교민이 천안에 격리되는 전례 없는 상황이었고 어떻게 검역받는지 모두가 주목했던 부분이기에 의미 있는 단독 기사였다. 그러한 보도가 없었다면 정부가 사전 협의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 갈등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희 교수는 “현장취재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뉴스량은 굉장히 많았다. 이게 정보 욕구를 충족시키는 정보였냐? 나쁜 보도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사나 기자 개인의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에서 나온 보도일 수 있지만 감염병과 같은 특수한 국면에서도 이 부분이 합리적 선택인지 스스로 따져봐야 한다. 사회적 유익을 가져다주는 정보인지 기자들이 분명히 사고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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