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승우 칼럼]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발생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진행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청원인은 정부가 ‘천안함 폭침’으로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엔 등이 가해자에 침묵하는 등 국제적으로 가해자가 공인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젊은 수병 수십 명이 사망한 비극이 국제적으로 영구미제사건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면서 그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천안함 사건’ 또는 ‘북한에 의한 폭침’으로 불리는 이 비극은 10년 전인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에서 발생, 천안함이 반파·침몰하면서 46명의 해군 승조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1번 어뢰’가 천안함 아래 수중에서 폭발해 버블제트의 위력으로 배가 두 동강 났다고 공식발표하고 ‘5.24조치’를 취해 남북관계를 사실상 차단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 가동중단 조치까지 취해 이 사건은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한 핵심 요인의 하나가 되어있다.

지난달 26일 광화문 광장 인근. 전군구국동지연합회와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 등 애국시민단체가 주최한 '천안함 피격 10주기' 기자회견장에 국화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천안함 사건 발생 원인에 대한 공식발표 뒤 나온 국제기구에 성명 등에서 그 가해자가 언급되지 않았고, 그 상태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즉 2010년 7월 발표된 유엔 안보리 의장의 천안함 관련 성명에서는 이 사건의 행위자를 명시하지 않았고,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성명과 아세안+3(한.중.일) 의장 성명도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내용을 지지한다고 밝혔을 뿐 북한을 지목해 비난하거나 북한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연합뉴스 2010년 7월 22일>.

중국과 러시아도 한국 정부의 조사 결과 발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외신에 보도되기도 했다. 북한은 이 사건과 북한은 전혀 관계가 없다면서 남측의 날조라고 주장하고 있어, 이 비극은 피해자는 있는데 아직 그 가해자는 국제적으로 공인되지 않은 상태다. 모든 비극적 사건 사고는 가해자와 피해자 등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는 게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천안함 사건의 경우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사건 발생 당시 그 현장인 서해북방한계선(NLL) 지역의 상황을 살피면 사건 원인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즉 NLL 지역은 국제법적 근거가 미흡한 데다 남북한 충돌이 잦은 지역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군사정보 탐지 체제가 항상 물 샐 틈 없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사건 발생 당시 그 부근에서 한미합동해상군사훈련이 전개 중이어서 최첨단 군함 수십 척이 포진해 있었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할 때 한미연합해상군사훈련인 키리졸브 독수리 훈련이 전개 중이었고 천안함도 거기에 참여했었다. 이 훈련은 북한의 남침을 가상해 벌이는 것으로 실전과 다름없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실전처럼 치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북한 잠수정이 침투해 천안함을 공격했다면 미국은 그것을 미군을 포함한 연합군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대응했을 가능성이 크다. 즉 미국이 가동 중인 NLL 부근 첩보위성 등을 가동했을 때 북한 잠수정이 천안함 공격 후 도주 또는 북한 해군기지로 귀환하는 과정 등을 포착했을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AP통신>이 사건 발생 두 달여 만인 2010년 6월 5일(현지시간) 천안함 침몰 당시 한국과 미국 양국군이 사건 발생장소에서 75마일(120㎞) 떨어진 곳에서 합동으로 한국잠수함을 표적으로 대잠수함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이어, 주한미군 대변인인 제인 크라이튼 대령이 "한미 양국군의 대잠수함 훈련이 3월 25일 저녁 10시에 시작돼 천안함이 침몰한 다음 날(26일) 저녁 9시에 끝났다"고 말했다면서 이 훈련은 천안함 폭발 때문에 종료됐다고 덧붙였다(뷰스앤 뉴스 6월 7일).

이 <AP통신> 기사를 볼 때, 천안함 사고의 진상은 미국이 입을 열어야 제대고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사고 당시 키리졸브 독수리 훈련 참가 차 이지스함 등 첨단 함선 다수가 참가한 것은 물론 첩보 위성과 정찰기 등을 통해 사고 해역을 손바닥 보듯 파악하고 있었을 터이지만, 지금껏 이 사건과 관련한 당시의 정황이나 기록 등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국제 사회에서 천안함과 관련해 갖가지 루머가 떠돌게 만든 결정적 이유의 하나가 되었다.

청원인은 구체적인 의문점으로 △미국과 한국의 최첨단 이지스함 등 다수의 군함이 포진해 있는 합동군사훈련 상황에서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 잠수정이 무사히 도주했다는 추리는 일반적인 군 상식에 어긋난다는 점 △사고 해역은 잠수함 운항이 자살행위라 할 만큼 악조건이라는 점 △배가 순식간에 두 동강 나는 상황에서 배에 승선하고 있던 선원 가운데 폭음에 의한 고막 파열이나 물기둥에 의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점 △천안함 파괴 상태가 어뢰 폭발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기 어렵다는 점 △어뢰에 붙어 있던 조개껍질이 천안함 사고 발생 이전에 부착된 것처럼 보인다는 점 등을 꼽았다.

청원인은 “천안함 비극 10주년이 되는 시점에서 남북 관계는 완전 중단 상태이고 비핵화를 위한 대북 제재가 강행되고 있다”며 “천안함 사건 재조사를 위한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진상을 규명해서 만약 북한의 책임이면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결론이 날 경우 남북 평화공존과 통일의 방안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분향하던 중 유가족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천안함 사건은 아직도 유가족이 공식석상에서 대통령에게 그 원인에 대해 물어보는 일이 벌어진 안타까운 사건이다.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5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현충탑 헌화·분향 도중 '천안함 46용사' 중 한 명인 고(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 여사가 갑자기 곁으로 다가와 '이게(천안함 폭침) 북한 소행인가,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라고 묻자 "정부의 공식 입장에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2015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시절 강화도 해병대 부대를 방문해 "천안함 폭침 때 북한 잠수정이 감쪽같이 몰래 침투해 천안함을 타격한 후 북한으로 도주했다"고 말했었다. 국방부도 지난해 3월 대변인 정례브리핑에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해서는 명백한 북한의 도발로 보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청원인은 ‘정부는 국제적으로 가해자가 인정되지 않은 ‘천안함 폭침’을 '영구미제사건'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면서 “이 사건이 발생한 후 정권이 두 번 더 바뀌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 진상규명을 놓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정부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공명정대한 재조사를 통해 희생된 46인의 장병이 미제사건의 희생자라는 불명예를 씻어줘야 할 책무가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20만 명 이상이 동의할 경우 정부가 공식 답변을 하는 온라인 청원 시스템이다. 지난 2일 시작된 ‘천안함 사건 진상규명’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5월 2일까지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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