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22년 6개월.

안수찬 기자가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한 기간이다. 안 기자는 오는 7일 ‘한겨레’ 수식어를 뗀다. 1997년 11월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한 그는 사회부, 스포츠부, 정치부, 여론매체부, 국제부, 문화부 등을 거치며 필력으로 독자들에게 알려졌다. 사건팀장, 탐사보도팀장, 미래라이프에디터, 미디어랩부장, 한겨레21 편집장을 역임하며 다양한 주제로 칼럼을 썼다. 2005년부터는 한겨레문화센터에서 강의하며 기자 지망생을 가르쳐왔다.

특히 안 기자는 한겨레에서 이름이 알려진 기자 중 하나다. 2010년 탐사보도팀장을 맡으며 ‘노동OTL’ 기획으로 ‘한국기자상’, 민주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기자, 그 매력적인 이름을 갖다』, 『스트레이트를 넘어 내러티브로』, 『뉴스가 지겨운 기자』 등이 있다.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 끝에 박재영 고려대 교수, 박성호 MBC 특파원 등과 공동집필한 <저널리즘의 지형>은 한국언론학회에서 ‘언론학회 60주년 학술영예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12월 사표를 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계에서는 '갑자기 왜?'라는 질문이 나온다. 몇몇은 총선을 앞두고 정치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그중 몇몇은 2017년 “덤벼라. 문빠들” 논란 때문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지난달 31일 한 대학교에서 그를 만나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부터 그간 거쳐온 행적을 따라 궁금한 점을 물었다.

3월 31일 한 대학교에서 안수찬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미디어스)

- 23년간 몸담은 한겨레를 떠나는 기분은 어떤가?

“안식월을 사용해 지난 두 달 동안 쉬었다. 예전에 그만두는 상상을 하면 눈물 날 것 같았는데 평화롭고 좋다. 박사 논문을 준비하며 해외 학술지에 실린 저널리즘 관련 논문을 읽는데 영감도 받고 알게 된 것도 많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설레는 기분을 다시 느낀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순간에도 여러모로 고생하는 한겨레 기자 선후배 동료들을 생각하면”

-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한겨레가 아니었으면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한겨레를 떠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건 2004년이다. 당시 한겨레는 현금 유동성 위기에 처하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그때 6~7년차 정도 기자였는데 ‘고임금 받는 연차 높은 선배들이 그만두는 것이 조직과 매체를 살리는 일이다’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다. 임금뿐 아니라 한겨레가 변화에 발맞추려면 젊은 사람이 조직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선배들에게 굉장한 죄책감을 가지면서 결심했던 게 있다. 유능해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역할을 못 하는 시기가 오면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만두는 상상을 했던 첫 번째 시기다.

이후 12년여 동안 이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한계를 느꼈고 스스로 믿음이나 신념이 취약해진 걸 알게 됐다. 나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후배들을 이끄는 자리에 있다는 게 스스로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또한, 시도해보고 싶었던 탐사 보도, 내러티브 저널리즘, 디지털 혁신 등 하고 싶은 건 다 해봤다. 마침 사장 선거가 있었고, 그 시점에 맞춰 그만두는 게 자연스럽겠다 싶었다. 작년 12월 말에 사표를 꺼냈다”

- 어떤 한계를 느낀 건지 궁금하다.

“내 스스로에 대한 한계였다. '한겨레는 그만두지만, 기자를 그만두진 않았다. 죽을 때까지 기자로 불리고 싶다고 생각하니 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충전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공부, 즉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난 제일 싫어하는 글쓰기가 칼럼이었다. 의견을 쓰는 건 주장을 가진 모두가 쓸 수 있지만 기자만이 할 수 있는 건 기사를 쓰는 거다. 특히 이 중 르포와 내러티브를 쓰고 싶었고 한겨레에 남게 되면 책임지는 자리에 올라야하기에 쓰고 싶은 기사에서 멀어지게 될 것 같아 내려놨다”

- 퇴사하고 난 뒤 계획은?

“내년 초부터 둥지를 찾을 예정이다. 뉴미디어 스타트업일 수도 있고 학교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혼자 자유롭게 취재할 수도 있다. 우선 올해는 논문을 쓰면서 내가 가진 혼란스러움에 답을 내는 게 목표다. 10년차 무렵인 2013년 언론학 박사 공부를 시작했는데 디지털 시대의 저널리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혼란스러워서였다. 지금 준비하는 논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긴 힘들다. 내 아이템인데. (웃음) 다만 중심 화두는 ‘현재 한국에서 기자는 무얼 해야 하는가’에 있다. 기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규범적 기준과 잣대를 정립해보고 싶다. 이게 없으니 개인도 개별 매체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논문을 쓰며 이를 정리하려 한다”

- 한국에서 기자의 역할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현재 한국 언론은 어떤 상황인지.

“방금 그 답을 찾으려 쉬는 거라고 답했는데...(웃음) 정리된 부분까지 말하자면, 언론은 기자의 기대와 달리 정당구조나 시장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의 정치구조를 보면 무당파인 중간층이 침묵하기 시작했고 지지정당을 가진 이들이 더 많이 발언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왔다. 뉴스를 소비하는 이들은 주로 후자다.

디지털 환경에서 대중은 ‘news seeker’(뉴스탐닉자)와 ‘news avoider’(뉴스회피자)로 크게 양극화된다. 뉴스회피자들은 오락·엔터테인먼트만 보고 뉴스는 안 본다. 반면 뉴스탐닉자들은 뉴스만 본다. 굉장히 많은 정보를 섭렵하지만, 그 범위가 넓어지기보다는 특정 주제와 영역에 집중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뉴스탐닉자들의 취향이나 수요에 따라 뉴스가 부응하지 않으면 뉴스 시장 창출이 안 된다. 다만 이 경우에는 뉴스탐닉자들의 높은 정치적 잣대에 보도의 프레임과 수준을 맞추기가 대단히 어렵다. 대신 뉴스회피자를 끌어오는 것은 어떨까. 그런 사람들을 뉴스 시장에 데려오려고 한국 언론이 애써온 것이 카드뉴스나 영상뉴스처럼 쉽게 뉴스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확인한 건 이들 뉴스회피자는 특정한 이슈에 따라 일시적으로 반응할 뿐 지속적 반복적으로 뉴스를 소비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특정 매체나 미디어 브랜드를 소비하지 않는 이들을 중심에 두고 언론사가 뉴스 전략을 마련하기 힘들다. 그러니 딜레마다. 뉴스탐닉자건 뉴스회피자건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둬야할지 혼란스러워졌다"

-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이 와중에 가장 성공한 미디어 전략을 펼친 이는 김어준이다. 김어준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나는 특정한 입장을 가진 이들을 위해 언론활동을 한다’고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왜 이런 전략이 성공했을까?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 유통이 많아지면 사람들이 그 정보를 모두 섭렵한 다음 합리적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정보가 폭증하면 오히려 사람들은 선택적으로 정보를 보게 된다. 자신의 의견과 입장에 부합하는 정보만 취사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의견에 대한 수요’를 레거시 미디어들이 등한시하거나 논설이나 칼럼을 통해 관성적으로 수행하는 동안 그 빈틈을 김어준과 같은 이들이 치고 들어왔다. 그 뒤를 이어 종편이 등장해서 그 자리를 채웠다.

문제는 그 전략이 성공적이었다고 해서 언론이 이 역할을 중심에 두기는 어렵다는 점에 있다. 의견과 관점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에 부응하는 콘텐츠가 넘쳐나면 결과적으로 기존의 선입견과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만 낳게 된다. 상대 입장을 생각하거나 제3의 대안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내 입장을 관철시킬 전술만 고민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운동권 총학생회 간부가 돼버리는 거다. 그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규범적인 차원과 별개로 시장적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 언론이 의견과 관점 제시에 집중하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시장성이 높아지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오래 가지 못한다. 정치적 입장, 전략과 전술 등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세분화되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미디어 브랜드를 오랫동안 소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견과 더욱 일치하는 언론을 찾아 계속 이동한다. 그런 뉴스 수용자를 타깃으로 하는 것은 레거시 미디어 입장에서 곤란하다. 한두 달 하다가 언론사를 접을 생각이 아니라면”

- 점점 언론사가 특정 관점을 취해주길 원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동안 언론은 진실 보도에 충실해야 하고 정치·정파적 입장에 흔들리면 안 된다고 규범 지어왔는데 지금도 이 규범이 통용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당장에는 독자가 감소하는 일이 있더라도 올바른 보도, 진실에 접근하는 충실한 보도를 지속하면 장기적으로는 독자가 늘어날 거라는 믿음에 기초하여 ‘객관적 저널리즘’이 정립돼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 가설이 성립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 한국 언론사의 문제는 지도부 가운데 누구도 그러한 근본 방향을 결연하게 선언한 이가 적고, 그 때문에 현장 취재 기자들이 어떤 잣대로 보도할지 혼란스러워 한다는 데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은 그동안 언론이 취한 행보의 결과이기도 하다. 언론 스스로도 고민해야 한다. 일관된 기준으로 믿을 만한 기사를 써왔는지, 아니면 언론사 스스로 자기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 맞춰 기사를 써왔는지, 이같은 질문을 모든 언론이 자문자답해야 한다”

- 언론이 갈등을 다루는 방식은 어때야 한다고 보는가?

“news seeker(뉴스탐닉자)들에 의해 한국 여론이 규정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기 어려워졌다.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기자로서 사안에 접근할 때 최대한 여러 입장을 검토하는 게 도움이 됐다. 갈등 이슈가 발생하면 갈등과 대립의 연쇄 고리를 상상해봤다. 피라미드 구조로 이 갈등 아래는 뭐가 있을까 차근차근 내려가는 거다.

최저임금을 예로 들어보자. 이 갈등 구조를 대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정부와 야당의 대결구조를 다루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래에 다른 단계가 있다. 기업-노조, 소상공인-알바생 등이 있다. 한 단계씩 내려가서 다른 갈등 구조를 보여주면 더 나은 기사를 쓸 수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관련자나 당사자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최저임금도 안 받는 실직자들은 이 제도가 발생했을 때 어떤 영향을 받는지까지 들여다보는 것이다. 어떤 갈등 이슈가 발생했을 때 연쇄 고리 구조에서 빠뜨리는 게 없는지,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대목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접근하면 기사 쓸 때 도움이 된다”

- 마감 시간 압박 등 현실적인 문제로 충분히 고민하고 기사를 쓰는 게 어렵다.

“디지털 환경에서 뉴스룸 간부들은 기자들에게 더 많은 기사를 주문할 수밖에 없고 이에 맞춰 기자는 개별 기사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줄이게 된다. 결국 짧은 시간 안에 마감하려면 표면적 갈등만 대비시키는 기사를 쓰게 된다. 일종의 악순환이다.

하나의 기사가 최소한의 품질을 갖추는 데 필요한 시간은 일주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보의 교차 검증은 물론이고 관점을 두루 취재하다보면, 각 입장에 어떤 허점이 있고, 이슈를 다루는 새로운 관점은 무엇인지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남들과는 ‘다른 기사’를 쓸 수 있다.

이게 가능해지려면 기사 타임 테이블을 재조정해야 한다. 표면적 갈등을 부각하여 독자를 끌어들이려고 짧은 시간에 표피적 기사를 생산해내는 것을 중단하고, 하나를 써도 다른 관점, 복합적 정보를 담은 기사를 내보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서, 그런 기사가 그 언론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시도해야 한다. 그것을 최종 목적으로 삼으면 기사 취재-출고의 타임테이블도 바꿀 수 있다"

2009년 한겨레21에 연재된 '노동OTL'표지 모음 (사진=한겨레)

- 2010년 탐사보도팀장을 맡았고 탐사 보도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해왔다.

“탐사보도(investigative journalism)의 원래 의미는 ‘수사보도’다. 수사보도의 핵심은 사람들에게 죄를 묻는 공권력을 의심하는 데 있다. FBI도 믿지 않고 백악관도 믿지 않는 기자들이 직접 수사를 한 것이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보도다.

수사보도를 이해하는 기자들이 많았다면, 조국 국면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한국 언론이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일단 검찰 발표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독립적인 수사보도의 출발점 또는 착안점으로 삼았을 것이다. 기자 스스로 발굴하고 검증한 것만 가리고 골라서 보도했을 것이다. 정치인을 감시해야 한다는 원칙만큼이나 수사기관을 의심해야 한다는 원칙을 함께 고려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검찰이 내놓는 자료를 받아쓰기할 일도 없고 검찰의 정보 흘리기에 당할 일도 없다.

다만 기자들이 그렇게 할 수 없었던 배경을 이해한다. 검찰발 단독 보도가 타 매체에서 나올 텐데 이를 안 따라갈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기자들끼리 경쟁하다,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그래서 기자 일을 때려치고 싶어진다. 그게 싫다면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새로운 유형과 새로운 방식의 검증 보도를 해야 한다. 검찰발 보도의 고질적인 문제를 끊고 다른 방식으로 보도하는 언론이 나오면 차별화된 보도를 앞세울 수 있을 테고 이를 뉴스 수용자들이 알아차릴 것이다. 검찰발 단독 경쟁에 매달리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될 거다”

-10년 전에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언론계에 탐사 보도 붐이 일었다.

“탐사보도라는 말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났어도 한국 뉴스룸의 조직 편제는 여전히 출입처 위주다. 근본적으로 바뀐게 없다고 생각한다.

탐사보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논문을 보니, 미국 언론이 하나의 탐사보도에 들이는 시간이 평균 6~8개월 정도라고 하더라. 그래서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한국 언론사들이 탐사보도팀의 상설화를 꺼리는 것을 이해한다. 그런 입장에 반론을 제기하자면 이렇다.

첫째, 미국은 신문의 위기가 발생했을 때 차별화된 기사를 쓰는 길을 택했다. 전체 기자 총원은 줄이더라도 탐사보도팀을 강화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야 ‘남들과 다른 언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두 번째, 전체 인력이 소수일지라도 탐사보도팀이 있어야 그 결과물에 자극을 받고 그 방법과 경로를 따라가는 뉴스룸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사람이 부족하다고 출입처 중심으로 뉴스룸을 편제하면, 200명이 했던 관습적인 일을 100명이 더 바쁘게 계속 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앞으로 매체들은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

- 미디어랩 부장 등을 역임하며 뉴미디어 관련 업무를 맡았다. 시도해본 결과는 어땠나?

“미래라이프 에디터, 미디어랩 부장 등을 맡은 시절, 디지털 혁신 관련 보고서를 만들었고, 주로 버티컬 매체를 실험했다.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 젠더매체 <슬랩>을 후배들과 함께 만들었다. 한겨레의 주요 독자가 아닌 20대, 여성 등에게 다가갈 수 있는 ‘틈새 미디어’를, 지면이나 웹이 아닌 소셜미디어 또는 영상을 중심으로 운용해보고 싶었다.

협업해본 결과 레거시 미디어가 뉴미디어에 대응하는 방법은 디지털 DNA를 장착한 사람들에게 이 일을 맡기는 거다. 최근 4~5년 동안 틈나는 대로 주변에 얘기했다.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를 바꾸고 싶다면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더 많이 채용해야 한다고. 기자는 기사의 퀄리티를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하고 편집·유통은 이를 잘하는 개발자나 디자이너가 해야 한다. 그들은 직업적 특성상 디지털 공간에서 수용자들에게 이 기사가 어떻게 전달될지를 최우선으로 본다.

일단 그들이 뉴스조직 안에서 적정한 규모와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 그들의 안목으로 능력있는 인재를 채용하거나 정돈하면서 뉴스룸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다. 지금은 디지털을 모르는 30년차 기자가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관리하고 있는데, 디지털 DNA를 가진 이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그들이 채용-기획-집행에 이르는 디지털 혁신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많은 언론사가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디자이너와 개발자 채용은 망설인다.

“(나를 포함한) 50대 이상의 언론사 고위 간부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을 망설이지 말아라. 한국 언론에서 이들을 비정규직 또는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는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그들을 계속 고용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가지 점에서 그런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첫째, 디지털 환경의 특성과 젊은 세대의 노동문화는 예전과 다르다. 그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해서, 일도 없는데 정년 퇴임 때까지 월급만 받아갈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 그들은 조직과 개인의 지향이 일치하지 않거나, 자신의 업무에 의미 또는 재미를 부여할 수 없으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언제건 떠나간다.

둘째, 계약직으로 채용하면 이들의 능력을 조직 내부에 확산시킬 수 없다. 계약직 입장에선 매체나 조직을 위해 일한다기보다 주어진 계약 조건의 프로젝트에만 매달리게 된다. 디지털 혁신은 디지털의 DNA를 조직 전체에 확산시키는 과정인데, 그 진앙지가 되어야할 사람이 조직 전체에 대한 안목과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들을 채용하는 목적은 그들의 철학과 노하우를 조직 안에 흡수·확산시키는 건데 그런 일은 단기 계약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

안수찬 기자가 쓴 저서. 특히 첫번째 사진 <기자, 그 매력적인 이름>은 몇 번의 우연이 겹쳐 기자가 된 자신과 비슷한 상황의 기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고민이 담겨있다고 밝혔다.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오랜 시간 기자 지망생들을 가르쳤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2010년 이후 언론사에 입사한 젊은 기자들은 불쌍한 기자들이다. 디지털 변화, 그에 적응하지 못하는 언론사, 덩달아 발생하는 정치 격변, 모든 언론사에 적대적으로 변한 여론, 시장의 변화를 초년 시절부터 겪고 있다.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눠 실시간 온라인 기사를 쓰고, 취재하다가 영상도 찍고, 뉴미디어 관련한 기획도 하면서 살고 있다. 선배 세대의 기자들은 그렇게 안 살았다. 미안한 일이다.

다만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있다. 혼란스럽고 힘들겠지만, 눈높이를 높게 잡을 필요가 있다. 어떤 영역을 맡든 그 영역의 최고 수준의 기사를 찾아보는 시간을 늘려야만 한다. ‘이런 기사를 써보고 싶다’는 동력을 가져야 헤쳐나갈 수 있다. 해외 언론의 수상작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다면, 한국기자상 수상작들이라도 봐야 한다. 기사를 장르별로 구분해, 자신에게 걸맞은 것을 궁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르포 , 내러티브, 피처, 칼럼 등 가운데 꼭 정복하고 싶은 장르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그 장르의 전범을 찾아보는 거다. 그렇게 내가 만들고 싶은 텍스트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평생 기자를 할 수 있다. 여러 좋은 기사를 찾아 읽다 보면, 출입처 옮겨 다니고, 팀장이나 부장이 되는 식의 기자 이력이 아니라, 새로운 궤적의 목표를 갖게 된다.”

-2017년 한겨레21 편집장을 내려놓을 무렵, SNS에 ‘덤벼라 문빠들’이라고 남겨 논란이 됐다. 당시 발언을 후회하는지.

“명백한 내 잘못이다. 내 스스로 납득하지 못할 일이었다. 언론인은 세상을 감각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인데 당시 나는 정치적 지지자들의 움직임을 서툴게 감각했고 이를 정제되지 못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다만 당시 배경은 설명하고 싶다. 그 무렵 한겨레를 둘러싼 3가지 이슈가 있었다. 한겨레21 표지에 실린 문재인 대통령 당선자의 사진이 악의적으로 편집됐다는 것, 대선 전 문재인-안철수 후보 관련 여론조사 보도가 편향적이었다는 것, 문재인 후보의 유세장면을 찍은 사진이 악의적으로 편집됐다는 것 등이었다.

이를 근거로 한겨레에 대한 비난이 폭증했다. 내 판단으로는 한겨레가 매체 차원에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겨레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세간에서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뉴스룸의 기자들도 자괴감을 느끼지 않고 중심을 잡고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의견을 당시 부장으로서 편집국에 제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 혼자라도 나서서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거기에 내 잘못이 있다.

내용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내가 제기하고자 했던 논점은 그날 오후에 먼저 올린 글에 일부 나와 있다. ‘대중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의견과 표현을 할 수 있고 특정 매체에 대한 비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을 포함한 의견지도자들이 한겨레라는 매체의 가치를 너무도 손쉽게 폄훼하는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언론이 정치혐오를 유포하는 게 민주주의 발전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정치가 언론혐오를 유포시키는 것도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자유, 표현, 언론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 생각해온 이들이 한겨레를 폄훼하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그런 점을 정리하여 정돈된 언어로 표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지난 3년 동안은 일체 기사나 칼럼을 쓰지 않았다. 대신 매체에 도움이 될만한 일을 나름 찾아 다녔다. 디지털 혁신에 대한 보고서를 쓰거나 그 일부를 실행하는 일을 했고, 최근에는 취재보도준칙 개정 작업에도 참여했다. 조직이나 매체에 남긴 폐를 갚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 역할이나마 다하지 않았나 싶다. 마침 새로 사장, 편집국장이 선출되는 시점에서, 조직 전체가 새로 출발하는 때에 맞춰 떠나는 게 옳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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