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보수·경제매체 중심으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재정 건전성 악화 정책,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국가채무비율과 코로나19 관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필요성을 고려했을 때 합리적 비판인지 의문이다.

30일 정부는 제3차 비상경제회의를 열어 소득하위 70%에 해당하는 약 1400만 가구에 가구당 100만원씩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지급액은 1인 가구 40만 원, 2인 가구 60만 원, 3인 가구 80만 원, 4인 이상 가구 100만 원으로 지역화폐, 전자화폐 형태로 지급된다. 보건복지부는 4월 중 소득하위 70% 기준을 마련한다는 방침인데 4인 가구 기준 712만원, 1인 가구 기준 263만원 수준으로 전망된다.

31일 보수·경제매체의 비판 지점은 국가채무비율 증가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 총선을 앞두고 나온 포퓰리즘 정책, 구체적 지급기준의 부재 등이다.

조선일보는 사설 <선거 의식 졸속 '100만원' 발표, 野까지 경쟁 가세>에서 "당초 기획재정부가 추진했던 것은 1000만 가구에 최대 100만원씩 주는 방안이었다"며 "하지만 당정 협의에서 민주당이 지원 대상의 대폭 확대를 요구했다. 소득 하위 70%의 명확한 기준도 없이 졸속으로 발표하는 바람에 정부 홈페이지는 접속자가 몰려 하루 종일 먹통이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실제 지급은 빨라야 5월로 예상되는데 덜컥 발표한 것은 총선용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총선용 지원'으로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저소득층도 지원하고 재정도 지키는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며 올해 예산 512조원 역시 '선거용 예산'이고, 불필요한 지출을 삭감하면 50조원 정도를 준비해 코로나 사태를 대비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9일 조선일보는 사설 <"전 국민에 100만원" 충정인가, 정치인가>에서도 "일본 등 다른 나라 예를 보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현금 뿌린다고 경기 회복 효과가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고 재정만 파탄난다"며 기업과 시장 활력을 회복시킬 경제 활성화 정책이 '최선의 길'이라고 한 바 있다.

중앙일보는 사설 <코로나19 장기화 대비한 재정 여력은 있는가>에서 "지급 범위가 적절했는지 의문"이라며 "이 정도면 돈이 없어서 못 쓰는 상황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있어도 못 쓰는 계층도 포함된다. 여당이 여기까지 지원 대상을 넓힌 데 대해 '총선을 겨냥한 선심'이라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라고 썼다.

동아일보는 사설<재난지원금 全가구 70%로 확대… 정치논리에 흔들린 재난대책>에서 "(민주당과 기재부간)결국 절충안이 마련되긴 했으나 최종안을 보면 총선을 앞둔 여당의 정치 논리가 깊숙이 개입된 것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면서 "'정말 어려운 계층 지원'과 '신속 지원'의 두 가치 사이에서 균형 있는 선택을 해야 하는데, 지원 대상은 넓힐 대로 넓히고 행정적 복잡성도 높게 만드는 우를 범했다"고 했다.

서울경제는 사설 <재난지원금, 문제는 재정 건전성>에서 "나라 곳간은 이미 한계에 이를 만큼 빨간불이 켜져 있다"며 "2차 추경까지 더하면 국가채무는 820조원 안팎까지 치솟고 국가채무비율 역시 42%에 달한다. 경기 위축으로 세수가 급감하면 나랏빚은 통제하기 힘든 수준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썼다.

한국경제는 "나랏빚으로 쌓인 11조 7000억원의 추경이 국회를 통과한 지 2주 만에 2차 추경은 또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이라면서 김종인 통합당 선대위원장의 주장인 '100조 비상예산 투입론'에 동조했다. 김 위원장의 주장은 각 부처 예산을 20%씩 줄여 100조원을 확보해 코로나 비상예산으로 쓰자는 주장인데, 20% 삭감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한국경제는 "정부와 여당이 대승적 차원에서 동의한다면 예산정책의 의미 있는 모델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을 실었다.

한국경제 3월 31일 1면 <슈퍼예산 그대로 두고…코로나지원금 9兆 푼다>

하지만 한국의 국가채무비율 수준과 '슈퍼예산'이라 불리는 정부예산의 실체, 긴급재난지원금의 필요성과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역차별 주장까지 고려하면 보수·경제매체의 주장을 합리적 비판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해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18년 기준 35.9%이다. 지난해 40%선 돌파를 놓고 언론 등에서 논란이 인 바 있다. 같은 기간 OECD 국가 평균 국가채무비율은 110%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성인 한 사람당 1000달러(약 123만원)를 나눠주는 경기부양책을 마련한 미국은 국가채무비율이 105%다. 2009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큰 현금지원정책을 고려 중인 일본은 220%에 달한다.

올해 정부 예산을 상당수 언론이 이른바 '초슈퍼예산'으로 명명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 2020년 예산안을 513.5조원 규모로 책정하면서부터다. 중앙정부 예산이 5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사상 최초였다. 그러나 매년 정부예산에는 '슈퍼예산'이라는 이름이 따라 붙었다.

예산규모 역시 GDP를 기준으로 '슈퍼예산'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OECD 국가의 GDP 대비 평균 정부 총지출 규모는 지난 5년 간 40~41% 선이다. 한국은 31~32% 선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30% 후반대, 일본은 40~42%대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44%가 넘는다. 지난해 한국의 GDP 대비 정부 총지출 규모는 33.5%, OECD 평균은 42.7%다. 한국은 OECD 평균보다 약 10%p 정부 예산을 적게 쓰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낮은 편이다. OECD 국가 평균 조세부담률은 24~25% 선이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18~20% 선이다.

뉴스1 3월 30일 <재난지원금 못받는 고소득층 "세금만 많이 내고 역차별" 불만>

다른 한편, 일부 언론과 SNS 상에서는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해 '역차별'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득 하위 70%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다. 뉴스1은 30일 기사 <재난지원금 못받는 고소득층 "세금만 많이 내고 역차별" 불만>에서 국내 한 대기업에 근무하는 외벌이 20년차 박 모 부장의 '한숨'을 전했다.

뉴스1은 "물론 박 부장에게 돈이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정부가 출범 첫 해부터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 기조를 이어온 상황에 비춰볼 때 '언제나 돈은 고소득층만 내고 혜택은 저소득층에 돌아가느냐'는 불만이 내심 커지는 것도 사실이었다"고 썼다.

지난해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간한 조세재정 브리프의 '임금소득 과세(Taxing Wages) 2019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가구 형태별 조세부담률 차이는 OECD 평균이나 주요국들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OECD 회원국의 경우 전반적으로 부양가족이 많고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세 부담이 낮아지는 등 조세 격차가 큰 것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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