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없다. 이번에는 저축은행 수사와 사법개혁 문제가 서로 부딪혔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정보를 정확하게 얻을 수 있는 통로가 없는 사건을 마주하면 우리는 쉽게 음모론에 기대게 된다. 음모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그것대로 약점이 있지만 가끔은 이러한 관점 자체가 일종의 '힌트'를 주기도 한다.

물론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와 사법개혁은 성실한 정치인들과 정직한 사법관료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최선의 방책을 찾아나가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사실의 정확한 파악을 위한 힌트를 얻자는 차원에서 음모론적 관점에서 파헤쳐보자. 팍 팍!

▲ 국회의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 합의로 정치권과 검찰이 충돌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김준규 검찰총장이 긴급간부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를 마친 김준규 검찰총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중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사법개혁'이라는 주제가 담고 있는 정치적 맥락을 되짚어보자. 애초에 사법개혁 얘기가 나온 이유는 단적으로 얘기해 소위 강기갑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에 대한 판결이 전부 집권여당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다.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우리법연구회'라는 조직의 이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편향적 판결' 문제의 여론이 잦아들고 이른바 '스폰서 검사' 사건이 터지고 소위 '조두순 사건' 등 강력사건에 대한 양형 기준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이러한 개혁의 방향이 묘해졌다. 애초에 얘기가 없던 검찰 조직까지 개혁의 대상이 된 것이다.

혹자는 소위 '청목회 사건'에 대한 국회의 복수가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이 문제를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여기서부터는 삼류 소설을 한 번 써보기로 하자.

정권 말에 권력형 측근 비리가 늘 터지는 것은 물론 레임덕 때문이다. 레임덕이라는 말을 다시 해석해보면 대통령의 권한이 줄어드는 것이고 이는 권력형 비리를 수사할 수 있는 검찰입장에서 보면 임기 말이야 말로 대통령의 통제에서 벗어나 대통령 측근을 조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때 일종의 '기획수사'를 담당하는 부서가 바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다.

지금 삼류 소설을 쓰고 있으니 이를 거꾸로 뒤집어서 말을 한 번 해보자. 즉,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검찰조직의 마지막 무기다. 정권이 바뀌면 조직의 특성상 일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는 검찰 수뇌부가 '카드'를 쥐고 '딜'을 시도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인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는 '부산저축은행'이 그 '카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중수부가 시작했을 때 '전 정권 인사들을 치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첫째, 굳이 중수부가 담당하지 않아도 되는 사건으로 판단할 여지가 있었고 둘째, 부산저축은행의 유력한 주주들이 호남권 인사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수사 중에 소위 ‘BBK 해결사’ 중 1인이었던 은진수 감사위원의 이름이 나온 것은 상당한 의외였다. 물론 이 역시 조금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한데, 어쨌든 부산저축은행 정도 규모라고 하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 로비를 했을 가능성이 다분하지 않은가?

이러한 전제를 깔고 최근 며칠간의 상황을 순서대로 정리해보자. 여야가 중수부 폐지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나오자 검찰에서 반발을 시작했고 때맞춰 보수언론에서는 부산저축은행 2대주주인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의 가족사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물론 박형선 회장의 이러한 특이한 이력은 그 전에도 간간히 보도된 바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작정한 듯 기획기사를 뿌려대는 것을 두고 굳이 삼류소설을 써본다면 검찰이 손을 쓴 것 아니냐는 전혀 근거 없는 추측을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가족사가 뒷받침하는 것은 ‘부산저축은행 수사는 전 정권의 인사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검찰의 알리바이이기 때문이다.

이게 중요한 카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치적 입장 때문일 것이다. 민주당 인사들은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에도 공직비리수사처의 신설을 추진했을 만큼 대검 중수부에 대해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나라당의 반응이다. 왜 한나라당은 여기에 합의한 것일까?

앞서 얘기했듯이 단순한 입법부의 사법부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삼류소설을 쓰는 시간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이전 정권과 비교하여 도덕적 우위를 지키려고 노력했었다. 측근 비리가 터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이들이 당선되는 과정에서 권력형 비리로 큰 일이 날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다르다. 정권이 탄생하자마자 이제 잡혀갈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거라고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예상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레임덕’이라는 말도 못 꺼내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당연히 한나라당으로서는 정권 바뀌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추측을 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꼭 그런 차원이 아니더라도 정권 말기 그 어떤 정권보다도 측근 비리가 많이 터질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 대검 중수부 수사기능의 존속은 그야말로 목 아래에 칼날이 들어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삼류소설의 절정은 여기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표명이다. ‘저축은행 수사 끝까지 하겠다’는 검찰총장의 성명이 나오고 나서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검찰 측과 입장을 같이 한다’는 언급을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검사 출신이며 사법개혁특위의 여당 간사인 주성영 의원이 ‘왜 이제 와서 그러느냐’고 말하는 것을 보아 당과 사전 교감도 전혀 없었다. 즉, 그동안 사법개혁에 대해서 말 한 마디 없다가 이제 와서 검찰에 힘을 실어준다고 하는 것은 청와대와 검찰이 직접 소통해서 무언가를 ‘합의’를 했을 그런 가능성을 추측할 수 있는 어떤 느낌을 주기도 한다. 즉, ‘저축은행 수사 끝까지 한다’는 말의 의미는 그 ‘끝’에 청와대도 기뻐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그런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과연 이 삼류소설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대검 중수부장 김홍일 검사는 2007년에 서울지검 3차장으로 BBK 사건 수사팀을 지휘했었다. 검찰 내에 학연도 지연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순전히 이 공으로 요직에 올라갔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내 생각엔 그가 마지막에 배신을 하는 내용의 삼류소설이라면 영화화 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그저 억측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은 시기상조인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라도 권력형 비리의 당사자들이 처벌받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좋은 일이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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