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하정 언론인권센터 사무차장 기고] 최근 ‘박사방’사건을 계기로 디지털성범죄가 사회적으로 재부각되며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대규모 디지털 성범죄 ‘N번방’ 사건은 2018년 말부터 여러 번 사회적인 문제로 수면에 올라왔지만 번번이 솜방망이 처벌 등의 미온적인 대응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어왔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의 중심이 된 ‘박사방’은 미성년을 비롯하여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노예로 지칭하며 성 착취 영상물을 제작, 유포하는 등 범행 수법이 악질적이며, ‘그 정도쯤이야’의 태도로 바라보았던 사회 분위기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이 더해져 ‘이번만은 그대로 넘어갈 수 없다’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3월25일)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60만 명이 넘어가고 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경찰청장은 운영자 ‘조주빈’뿐만 아니라 ‘박사방’의 조력자, 영상제작자, 영상 소지·유포자 등 가담자 전원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한 디지털 성범죄 강력 처벌에 대한 국민청원이 성립되어 문희상 국회의장이 국회에 신속한 입법을 요청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는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강화와 사회적 인식개선이 요구되는 전환의 시점에 놓여있다. 무엇보다 박사방·N번방과 같은 중대한 사건이 단발적인 이슈, 단순한 가십거리로 전락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성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었던 가해자 개인에 대한 비난과 혐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사회구조적’ 문제보다 ‘개인’에 집중하게 했다. 보도 과정에서도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기보다는 사생활과 관련된 선정적인 보도로 이어졌고, 이는 개선을 위해 힘써야 할 법원·국회 등의 역할을 유보하는 결과를 낳았다.

SBS 3월 23일자 <[단독] '박사방' 운영자 신상 공개…25살 조주빈> 보도화면 갈무리

최근 ‘박사방’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를 지켜보며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지는 않을까 무척이나 우려스럽다. 얼마 전 SBS에서는 단독으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신상을 경찰의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의 결정이 있기 바로 하루 전에 공개했다.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는 인권보호를 위한 일종의 장치이다. 위원회의 기준과 운영에 대해서는 일단 차치하고, 위원회의 운영 목적은 신상공개를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남용하지 않도록 함이다. ‘추가 피해를 막고 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아서 수사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에서 공개한 SBS의 결정은 신상정보공개심의원회의 결정이 난 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심의위원회의 결정이 잘못됐다면 그 후에 다시 문제를 제기해도 될 일이었다. 굳이 12시간을 앞당겨 ‘단독’으로 보도한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이 외에도 ‘박사방’에 대한 각 언론의 기사는 벌써부터 조주빈의 개인사로 덮어지고 있다. 조주빈의 학력, 봉사활동 이력, 범죄 행위까지 개인의 문제로 시선이 옮겨지고 내용이 선정적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심지어 포토라인에서 입었던 옷의 브랜드까지 기사의 소재로 쓰였다.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박사방’사건은 디지털성범죄의 한 단면일 뿐 전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박사방은 일상 속에서 만연되고 있는 성범죄에 대한 안일한 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성범죄를 놀이와 문화로 착각하고 그러한 행위에 대한 죄책감이나 죄의식에 대한 민감성을 잃어간 양상을 엄연히 보여주고 있다. 여성 또는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가 너무나도 손쉽고 당연하게 우리 일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사건은 운영자 1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박사방에 입장하고 가담한 전원이 공범이다. 그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분명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에도 잘만 피하면 넘어가겠지라는 뉘우침 없는 공범들에 대한 경고와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한다. 이러한 여론의 방향성을 잡아가는데 있어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얼마 전 MBC 메인뉴스에서는 박사방 사건을 ‘가입자 전체가 저지른 집단성착취 사건으로 규정’하고 ‘집단 성착취 영상 거래 사건’이라 칭하며 보도를 이어갔다. 이러한 사건에 있어서 개인의 범죄 혐의와 사적인 문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인에만 집착하는 보도에서 벗어나 구조적인 문제에 보다 심도 있게 다가서야한다. 즉,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운영자 개인 혐의에 집중하는 것보다 가담한 집단 전체와 시스템을 향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선정적인 보도에서 벗어나 분노와 혐오 속에 가려질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들추어내고 국민의 관심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끈질긴 취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언론이 ‘디지털 성범죄’를 공동체의 안전을 위한 관점으로 다루고 있는지 그들의 시선을 지켜볼 차례이다.

* 김하정 언론인권센터 사무차장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852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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