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중장기 방송제도개선 추진반이 제출한 정책제안서를 접수했다. 중장기방송제도개선은 방송의 공공성 강화, 방송‧통신‧인터넷 융합에 따른 미래지향적 규제체계 정비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핵심인 공·민영 방송체계 개편방안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규제정책 방향과 관련해 개념 규정과 근거 등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책제안서에 따르면 방송의 법적 분류는 '공영방송', '공공서비스방송(PSB, Public Service Broadcasting)', '민영방송' 등으로 구분된다. 그동안 방송법상 모든 방송사업자가 공공성 가치를 부여받았다면 소유구조, 재원조달 방식을 고려해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을 분리한다. 공공영역은 공공성 회복·강화하고 민간영역은 산업성·효율성을 제고한다는 계획이다. 공공영역에는 공영방송과 PSB가, 민간영역엔 민영방송이 해당된다.

KBS와 EBS가 공영방송으로서 공적책무를 부여받고 공적책무 수행을 위한 정부 지원의 근거가 마련된다. PBS는 '자기규율성' 관점에서 규정된다. 법률로 PSB의 공적책무를 규정하면 방송사업자가 PSB임을 선언(신청)하고, 지배구조와 설명책임을 부과(면허 부여)해 공적 재원을 지원한다. 공영방송이면서 상업방송의 성격을 지닌 MBC와 정부·공공기관 운영채널이 해당될 수 있다.

OTT 정책방향은 방송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기존 '방송'을 '방송서비스'로 정의하고, '시청각미디어서비스' 개념을 신설해 방송서비스를 시청각미디어서비스의 한 유형으로 정의했다. 방송서비스는 콘텐츠 소싱과 스케쥴링(편성)에 따라 규정된다. 지상파와 유료방송이 방송으로 규정됐다. 방송통신설비, 전송기술, 수신방식, 제작은 방송서비스를 규정하는 요소에서 제외됐다. 시청각미디어서비스는 네트워크 특성과 관계없이 편집권을 행사하는 동영상서비스로 분류됐다. 방송망과 인터넷망을 통한 실시간서비스(실시간 방송·OTT), 주문형서비스(VOD, 방송·OTT)가 포함된다.

OTT에 대한 규제방향은 ▲금지행위 및 분쟁조정 ▲자료제출 의무화 ▲내용규제 등이다. 방송사와 OTT 간 금지행위 규제와 분쟁조정을 위한 법적 근거를 방송법과 전기통산사업법에 마련하고, OTT 시장 경쟁상황평가를 위한 기초자료 제출을 일정 규모 이상의 OTT 사업자에 의무화해 규제를 가능게 하자는 안이다. 기초자료는 매출, 가입자, 상품정보, 요금, 이용실태 등의 자료를 의미한다. 내용규제의 경우 기존 방송심의규정을 적용하지만 방송보다는 완화된 심의기준을 적용하거나, 정보통신망법이나 정보통신심의규정에 동영상콘텐츠 규제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같은 정책 방향에 대해 방송의 공공성이 전반적으로 악화될 수 있고, 공영방송과 PSB의 개념 구분이 모호하며 OTT 규제정책 정비의 증거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있다.

우선 공영방송(public broadcasting)과 공공서비스방송(Public Service Broadcasting)의 용어적 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사실상 공영방송과 같은 의미인 PSB를 별도로 구분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PSB로 분류될 수 있는 대상의 범위도 모호하다. 현재는 대표적으로 MBC가 PSB 대상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제도개선반이 참고자료로 제시한 영국사례를 살펴보면 국내에서 PSB 분류 대상은 늘어날 수 있다.

영국 커뮤니케이션법 264조에서 정의하고 있는 PSB의 공적책무는 ▲광범위한 주제의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방송서비스 제공 ▲다양한 시청자의 요구와 흥미를 충족하는 방송서비스 제공 ▲시청자의 요구와 흥미를 균형있게 충족하는 방송서비스 제공 ▲프로그램의 내용, 품질, 전문적인 기술과 편집상의 동일성의 측면에서 고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방송서비스 제공 등이다.

이를 국내법에 규정했을 때 MBC나 정부·공공기관 운영채널 뿐만 아니라 SBS, 종합편성채널 등 PSB의 공적책무에 부합하는 여타 방송사업자가 나타날 수 있다. 정책제안서는 PSB 면허체계 수립의 단점으로 '공공서비스 제공의 안정성이 감소할 수 있고, 경쟁력 없는 사업자가 공적서비스 시장으로 진입하여 공적 재원 수혜로 국민 부담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방송의 공공성이 지금보다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는 한국 방송산업의 상업화 현황, 즉 방송사의 재원구조를 반추해보면 좀 더 명확히 드러난다. 방통위 '2019 방송산업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라 한국과 영국 간 방송산업 재원구조를 비교해 보면 한국 방송산업의 공공재원 비율은 9.4%, 영국은 23.6%다.

반면 광고재원 비율은 한국 44.5%, 영국 37.4%, 가입자재원은 한국 46.2%, 영국 39%다. 한국 방송산업은 이미 상당부분 상업화돼 있다는 의미로 이 같은 상황에서 공·민영 분류를 통해 방송법상 모든 사업자에게 부과된 공적책무의 빗장을 풀고, 공적영역에 한정해 공적책무를 부과하는 방식의 공공성 회복책을 추진할 경우 방송 전반의 공공성 후퇴라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

지난해 11월 방통위 중장기 방송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시민사회 인사들은 방송의 공적규제 범위 축소를 우려했다.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의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공·민영방송체계의 궁극적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 공영방송의 특별한 책무 수립이 안된 상태에서 이분법 틀로 나누는 것은 공영의 축소라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방송 규정이라면 공공성 책무를 전반으로 이루어지고,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가 더 강화되는 개념이어야 한다"며 "공·민영 구분이 필요할 수는 있는데, 시청자 입장에서는 과연 구분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공공성의 강화를 전반적으로 올리는 방향에서 논의가 이뤄졌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OTT에 대한 정책방향은 국내·외 사업자 규제 형평성 문제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기초자료' 확보부터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시장에 대한 명확한 조사와 분석 없이 규제개편안이 구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림]영국 SVoD 가구 가입자 수 (OFCOM, Small Screen: Big Debate interactive data report)

지난해 7월 영국 방송통신규제기관 OFCOM은 'Small Screen: Big Debate'라는 전국포럼을 시작, 지난 2월 영국 내 미디어서비스 데이터현황을 구체적 수치로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영국의 SVOD(Subscription Video on Demand, 구독형 주문형 비디오) 가입자 수는 2019년 4분기 기준 영국전체 가구 수 1920만 가구 중 1427만 가구다. 이 중 넷플릭스는 1235만가구, 아마존프라임비이도는 714만, 나우TV 169만, 디즈니라이프는 11만 1천 가구다. 각 SvoD 사업자 플랫폼 내 미국 콘텐츠의 수, 영국 콘텐츠의 수를 비교해 제시하기도 한다.

방통위 차원의 규제개편 논의와 별개로 정부는 현재 범부처 차원의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을 이달 말까지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미디어산업 분야 발전방안의 목표는 글로벌 미디어 산업 재편에 대응하는 국내 콘텐츠 경쟁력 제고와 이를 위한 지원이다. 넷플릭스, 유튜브, 디즈니 등 글로벌 OTT가 급성장하면서 미디어 시장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국내 인터넷 미디어 기업에 대한 최소규제 원칙을 확립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류 콘텐츠를 육성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국내 미디어 시장 내 글로벌 OTT 현황에 대한 구체적 수치가 없어 규제개편, 정부지원 방향이 명확한 기준 없이 흔들릴 수 있다. 지난해 공청회에서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자문위원은 "OTT 규제에 필요한 건 자료제출의 의무화다. 기초자료라고 하는 부분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자료확보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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