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내가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영화’를 고르기 위해서는 상당한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내게 가장 황홀했던 순간’만은 1초 만에 답할 수 있다. 바로 2017년 1월 24일이다. 극장에서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연속해서 본 날이다. 재개봉 덕에 가능했던 논스톱 중간계 여행은 적어도 한나절을 확보해야 하는 탓에 평소에는 선뜻 시도하기 어렵다.

자율격리와 재택근무의 확대와 스트리밍, OTT를 통한 몰아보기가 쉬워진 지금이 중간계 여행 티켓을 끊는 데 적기다. 물론 이 시국에 개봉한 지 20년 가까이 된 영화를 택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여가시간이 늘어서 뿐만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을 위한 지혜가 <반지의 제왕>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덕분이다.

절대반지의 가장 사악한 능력

<반지의 제왕>은 악의 군주 사우론의 부활을 막기 위해 그의 모든 힘이 깃든 절대반지를 파괴하는 여정을 그렸다. 이 여정은 절대 녹록지 않다.

일단 절대반지를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반지가 만들어진 ‘운명의 산’이다. 공교롭게도 운명의 산은 사우론의 본진인 모르도르에 위치해 있다. 모르도르에는 백만 명의 오크 군대가 출격을 기다리고 있고 최강의 요새 바랏두르 정상에서 반지의 행방을 좇는 감시망인 ‘불타는 눈’의 시선도 피해야 한다.

금반지의 외형을 띤 절대반지도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다. 반지에는 사우론의 사악한 힘이 깃들어 있다. 강력한 능력을 가진 소유자에게는 이 세상 모든 힘을 주겠다며 끝없이 유혹한다. 사우론을 견제하기 위해 선신들이 파견한 마법사 5인방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사루만도 절대반지의 힘 앞에서 타락해 사우론의 동료가 됐고, 간달프 역시 유혹에 버틸 자신이 없다며 반지와의 접촉조차 꺼린다.

호빗처럼 별 다른 능력이 없는 존재들에게는 다른 방식으로도 타락을 부추긴다. 바로 투명화인데 이 유혹이 이 시점에서 주목해야 할 절대반지의 가장 사악한 능력이다. 절대반지를 착용하는 순간 착용자는 모두의 시선에서 사라진다. 가족, 친구, 동료의 눈에 띄지 않고 악행을 저지르거나 감출 힘이 생기는 것이다. 반지의 강력한 유혹에 넘어가 친구를 살해하고 깊은 동굴 속으로 숨어버린 골룸도 어떻게 보면 절대반지의 피해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절대반지의 유혹에 굴복하는 사람들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의 능력인 투명화를 사회적으로 분석한다면 ‘상호감시체계’의 붕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은 나약하다. ‘감시’라는 강력한 단어를 썼지만 나약한 개인이 일상이나 공적영역에서 마주하는 강력한 유혹들을 물리칠 힘을 얻는 건 가족, 친구, 동료가 지켜보고 있다는 자각과 책임감 덕분이다. 익명성의 가면을 통해 자각과 책임감을 벗어던질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지 않나.

이는 도덕적 결단과 맞물린 개인의 문제만도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는 공적영역에서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한 상호감시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확산 초기에는 다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K-방역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한국의 코로나19 대처가 모범사례로 소개되는 이유는 확진자 현황, 동선을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한 결정 덕분이었다.

신종 전염병 발생 사실을 쉬쉬하던 중국이 전 세계의 질타를 받고 결국 천만 명이 사는 도시를 봉쇄하는 강경책까지 써야했던 까닭은 물론이고 의료/보건강국으로 알려진 일본이 의심의 눈초리를 사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의료 인프라 부족을 꼽는 전문가보다 올림픽을 앞두고 보여주기식 선전에 치중하는 지도자 탓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건 서로를 향한 시선이 확진자를 찾아내 단죄하려는 박해로 이어지면 안 된다는 점이다. 바이러스에 걸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왜 조심하지 않아서 바이러스에 걸리고 함부로 돌아다녀 사회에 피해를 주느냐는 눈초리는 가장 먼저 의료시설에서 치료받고 사회로 복귀해야 할 확진자가 절대반지를 낀 투명인간이 되고자 하는 유혹을 강화시킬 뿐이다.

원하지 않는 일이 찾아왔을 때

프로도 : 반지가 제게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에요.

간달프 :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 하지만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우리가 할 일은 주어진 시간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할 뿐이지

반지원정대가 결성되고 절대반지의 운반자로 결정된 프로도가 모리아갱도에서 간달프와 잠시 나눈 대화의 일부다. 일생에 한 번도 절대반지를 원한 적 없던 프로도처럼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원했던 공동체 역시 없었을 거다. 그러나 간달프의 대답처럼 우리가 정할 수 없는 일이 찾아와버렸고 우리가 해야할 일, 어떻게 할 것인지 방향조차 가늠되지 않는다.

초유의 재난 속에서 정답을 찾기 어렵다면 오답부터 지워나가는 방식은 어떨까. 프로도는 사우론에게 절대반지를 넘겨주는 확실한 오답인 절대반지의 남용만은 피했다. 마지막까지 동료들의 시선에서 도망치지도 않을 수 있었고 불가능해 보였던 절대반지의 파괴에도 성공한다. 결국 서로에 대한 믿음과 격려, 책임감만이 나약한 한 사람을 재난의 한복판에서도 구해내고 공동체를 지켜내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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