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 ⓒ 연합뉴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반값 등록금'을 야심차게 내놓았을 때 솔직히 궁금했다.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어떤 신묘한 방법을 통해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인가? 그러던 중에 5월 30일 김성식 한나라당 정책위 부의장이 대책을 내놓았다. '소득 하위 50%와 학점평점 B이상' 이라는 기준에 맞춰 장학금을 지원하며 그마저도 부실대학에는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2조원 가량의 예산을 만들 수 있다는 대책이다.

이걸 진지한 자세로 논평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왜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지부터 짚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등록금 인상의 주요한 원인을 찾아본다면 등록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대학 적립금 문제를 그 첫 번째로 꼽을 것이다. 대학이 과도하게 이월금을 적립하고 있으며 이를 투명하게 사용하지 않고, 그러고도 예산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등록금을 인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대학은 왜 쓰지도 않을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대학교육의 시장화에서 찾아야 한다.

군부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국가가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여 불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살고 있었으므로 민주화가 시작된 이제부터는 사회의 각 부분을 국가로부터 빼앗아 와서 시장이 공정함을 보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신앙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학 등록금 문제에 있어서 '자율화'라는 정책으로 나타났다.

1989년 사립대학의 등록금 자율화가 시작된 것으로부터 2002년 국공립대의 등록금 전면 자율화에 이르면서 대학 등록금과 관련한 교육의 시장화라는 1단계가 사실상 마무리 됐다. 이로써 시장원리에 의한 대학 간의 공정한 경쟁이 시작될 것 같았지만 결과는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듯이 상상했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시장주의자들의 정부는 등록금 책정 문제와 더불어 대학 재정의 운용과 관련해서 대학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규제를 줄이고 대학의 자율성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하면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 역시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지옥의 문을 여는 데에 일조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들이 다음으로 획책하고 있는 것은 공정한 시장 경쟁이 무한대로 가능할 수 있도록 대학교육의 시장을 엄청난 크기로 늘리는 것, 즉, '교육개방'이다. 영어와 실용학문을 수출하는 외국의 명문대를 국내에 유치해서 기러기 아빠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내용이 이명박 정부의 '서비스 산업 선진화 방안'에 들어있다. '기러기 아빠'는 지금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고 2009년 5월 8일에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민관합동회의'가 발표한 '경제난국 극복 및 성장기반 확충을 위한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 (요약)' 이라는 문건에 나오는 말이다.

이런 엄청난 스케일의 세계적인 경쟁을 하면 더 이상 매일같이 '서울대가 세계 대학 순위 50위권 안에 들 수 있는가?'를 가지고 싸울 일도 없고 우리 대학의 경쟁력이 막 강화되며 이는 국가 인적 자원의 수준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지금까지 한국을 좌지우지해온 시장주의자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잠시 이런 생각을 한 번 해보자. 대학과 관련된 것은 뭐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유행에 발맞추어 김영삼 정부 때 대학 설립도 마음대로 하라고 했기 때문에 이미 대학은 공급 과잉이다. 그럼 교육개방이 시작되고 대학교육의 시장화가 완성되면 이들 중 없어져야 할 대학이 몇 개인가? 시장주의자들은 이걸 '구조조정'이라고 부르지만 대학의 입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이유가 된다. 진실한 경쟁의 원리는 이렇게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재정을 확보하고 이것을 효율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

▲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김영길)는 30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반값등록금' 관련 긴급 이사회를 갖고,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기 위해선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늘려줄 것을 요구하며 사실살 '반값 등록금'을 반대했다.
그럼 효율적인 투자란 무엇인가? 이것 역시 평가를 받는 대학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첫째, 어쨌든 무조건적인 재정건전성을 도모해야 하고, 둘째, 대학평가에서 보다 높은 순위를 얻기 위해 시설에 투자해야 하며, 셋째, 이를 통해 연구 성과를 내야하고, 넷째, 보다 많은 외국인을 유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은 이렇게 저렇게 부동산 투자도 하고 주식, 펀드 투자도 하면서 공격적으로 재정을 운용해 왔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다가 손실을 보면 등록금을 인상하면 되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최근 국립대 법인화와 대학의 재정회계법 개정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이 역시 국립대를 좀 더 자율화해서 시장원리에 충실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돈을 마음대로 꾸고 마음대로 쓰도록 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위에 언급한 대학교육의 시장화 문제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는데, 덕분에 우리 신세만 이 모양 이 꼴이 됐다.

이런 상황에 보수주의자들이 등록금을 반값으로 만들고자 할 때 취할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이 있겠는가? 첫째로 학자금 대출에 대한 정책을 세우는 방법이 있는데 이건 ‘취업조건부 학자금 대출제도’니 ‘든든학자금’이니 뭐니 해서 이미 실행하다가 욕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둘째는 대학에 직접적으로 지원금을 막 집어넣는 방법이 있는데, 이건 시장 원리에 걸맞지도 않을뿐더러 이미 대학 자율화를 끝까지 밀어 붙이는 마당에 어울리는 방식이 아니었다. 모든 대학에 다 지원금을 넣으면 시장주의자들이 늘 꿈꾸는 대학 구조조정도 불가능해진다. 그러자면 어느 대학에 지원금을 줄지 기준을 정해야 하는데 그 기준을 정하는 게 쉽지 않고 가뜩이나 어지러운 정국에 사학자본까지 나서서 난리를 치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다. 그렇다고 국공립대에만 지원을 하자니 국공립대의 등록금 수준을 높여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게 하자는 그간의 정책 방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수단이 장학금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었고 이것마저도 늘 ‘모럴해저드’를 경계해야 하는 시장원리에 걸맞는 방식으로 하려다 보니 ‘B학점 이상’이라는 누가 봐도 이상한 기준이 나와 버린 것이었다. 일단 ‘반값등록금’이라고 질러놓고 자기들 상식에 맞는 얘길 하려니 죽도 밥도 안 되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이 거대한 ‘해프닝’은 당내 정치를 겨냥한 황우여 원내대표의 초라한 개인기와 ‘대학교육의 시장화’라는 문제를 죽었다 깨어나도 건드릴 수 없는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코미디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학의 등록금 문제에 관한한 이들은 영원히 시기상조라는 태도를 견지해야 맞는데, 이번에 워낙 급하게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입어 모두를 민망하게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