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노무현이 가고 이명박이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박수를 받으며 떠났다. 정확히 5년 전 노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 청산과 지역구도 완화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개혁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는 5년간 누구보다 치열하게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다. 그에 따른 성과를 따지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일 것 같다. 일단 그가 숱한 악조건 속에서도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박수에는 그동안의 수고에 대한 격려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박수를 받으며 임기를 시작했다. 박수소리에는 앞으로 5년간 잘 해주기를 바라는 희망이 실려있었다. 본인 역시 어제 가회동 자택을 나서며 "5년 뒤 성공해서 (청와대를) 나오겠다"고 말했다.
이명박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일단 이 대통령이 어떤 약속을 했으며, 그 약속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지켜보면 1차적 판단이 가능할 것 같다. 그는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고,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자고 제안했다. 법질서 확립은 그 방법론 가운데 하나다.

▲ 한겨레 2월 25일자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중요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한 후보자는 공직자윤리법을 어겼다. 2001년 한 후보자의 부인 홍소자씨는 서울 강남에 살지도 않을 아파트 분양권을 매입했다. 홍씨는 이를 1년여만에 되팔아 앉은 자리에서 1억8500만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게다가 한 후보자는 이를 공직자 재산신고 당시에 누락시켰다. 결과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이고, 재산을 숨겨온 셈이다. 1억8500만원이면 노동자와 서민이 평생 벌어도 만져보기 힘든 돈이다.

이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약속한 '법질서' 확립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한 후보자의 인사를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이 대통령이 말하는 법질서가 후보자와 대기업 등 가진 자들에는 한없이 관대하고 힘없는 노동자와 서민에게는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이라면, 이 대통령이 5년 뒤 고향으로 돌아갈 때 박수를 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2월 26일 통합민주당이 야당으로서 첫 번째 시험대에 올랐다

한승수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 표결처리와 관련해서 민주당이 반대 입장을 강제적 당론으로 하는 대신 자유투표를 선택했다고 한다. 손학규 민주당 공동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어려운 문제를 의원 한분 한분께서 각자의 양심과 자존심에 따라 현명한 판단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며 슬쩍 발을 뺐다. 한승수 후보자에게 길을 열어준 것이다.

임종석 원내수석부대표는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는 26일 아침 "한 후보자에 대해 공직자윤리법 위반 등이 불거지면서 인사청문위원들은 객관적 기준만 놓고 보면 부정적 의견을 많이 이야기한다"면서도 "다만 저희들이 정치를 하는 정당으로서 국민들의 신정부 출범에 따른 기대감 때문에 이것을 종합적으로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토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할 말이 없다. 원래 민주당은 전신인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해야 할 일을 해놓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벌어지지도 않을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에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정치집단이었다.

야당의 역할은 정부와 여당의 일방독주를 견제하는 것이고, 대통령의 잘못된 인사에 대해 야당으로서의 주어진 권한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근거도 없는) 표계산에 몰두하는 것은 진정한 야당의 역할이 아니다. 민주당이 5년간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 사족 - 임 부대표가 말한 "정치를 하는 정당으로서"라는 부분이 자꾸만 목에 걸린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정약용 선생은 '정치政治란, 바르게 한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큰 도적을 없애지 않으면 백성이 죽는다'고도 했다. 굽은 것을 바로 펴는 것이 정치이지, 굽은 것을 그대로 얼렁뚱땅 넘기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겠다.

최성진은 현재 한겨레21 정치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방송작가 생활을 경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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