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권진경] 한국 영화의 암흑기로 불리는 1970년대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뇌리에 남았던 영화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1971)이다. 이 영화가 유독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월남전(베트남전)과 파병 군인들을 바라보는 당대의 욕망과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수 김추자가 부른 동명의 히트곡에서 제목을 따온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월남파병을 마치고 귀환한 남자들의 현실 적응기를 다룬다. 이중에는 신영균이 맡았던 창호처럼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사례도 있지만, 그의 상사처럼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거나 진영(김희라 분)처럼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온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어떤 이는 몸은 멀쩡하지만, 전쟁으로 겪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후유증으로 한동안 정신적 방황을 겪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1971) 포스터

강인한 정신력과 애국심으로 중무장한 금수저 창호를 제외한 극중 파병군인들은 일상 복귀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에는 이들 모두 조국 근대화에 헌신하는 산업전사로 변신하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가 일절 허용되지 않았던 당시 풍토가 빚은 뜬금없는 결말. 한편으로는 전쟁에 희생당한 파병군인들을 조국 근대화의 역군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박정희 정부의 욕망이 이렇게 투명하게 투영된 영화가 또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에는 훗날 베트남전 생존자들에 의해 수없이 제기된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단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이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뿐만 아니라 당시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실’이다. 월남전 파병 명분을 만들기 위해 제작된 홍보 영상과 영화에서 한국군은 공산 괴뢰군에 맞서 자유와 베트남 양민을 수호하는 정의의 용사로 미화될 뿐, 참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참전 후유증에 시달리는 참전 군인의 입장에서 베트남전을 회상하는 <하얀전쟁>(1992)이 전쟁의 진실을 호도하지 않았던 최초의 한국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 이미지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시선에서 베트남전을 바라보는 <기억의 전쟁>에서 이질적인 장면을 꼽자면, 월남전 파병군인들의 등장이다. 베트남전 생존자들이 증언하러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목소리를 높이는 파병용사들은 전쟁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은 없었고,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들을 향한 모욕이라면서 적개심을 감추지 못한다. 심지어 이 파병용사들은 지난해 5월 인천인권영화제가 주최한 <기억의 전쟁> 정기상영회 당시, 영화제 측에 상영 금지 공문을 보내는 것은 물론, 상영 당일 영화 상영에 반발하는 집단행동을 벌여 영화제 측과 적지 않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지금까지 영화나 대중매체를 통해 조명된 월남전 참전용사는 국가발전에 기여한 애국자 혹은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는 피해자 이미지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뒤늦게 알려진 한국군 민간인 학살 사건은 월남전 파병을 대한민국 발전의 토대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 이미지

생존자들의 잇따른 증언에 주월한국군을 음해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월남전 참전용사들. 그런데 과연 <기억의 전쟁>이 이들의 주장처럼, 월남전 파병용사들을 모욕하는 영화일까. 생존자의 증언을 토대로 베트남전을 기억하고자 하는 영화는 당시 학살에 참여한 군인 개개인에게만 책임을 묻지 않는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 가장 큰 책임은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수많은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몬 박정희 정부에 있다. 심지어 월남전 패망에도 이를 정권 유지 수단으로 이용하기 급급했던 박정희 정부는 이후 제기된 민간인 학살 문제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학살을 자행한 개인에게 아예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피해자들이 당시 학살에 관여한 당사자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국군 민간인 학살 생존자 응우옌 티 탄이 바라는 것은 하나. 한국 정부의 민간인 학살 인정과 사과, 그리고 민간인 학살에 가담했거나 동조했던 참전군인들과 후손의 반성이다.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 이미지

월남전 참전 이후 고엽제 후유증 등 잦은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는 자긍심 하나로 버텨온 참전군인의 심경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과거사라 해도 1968년 베트남의 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은 그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정부, 한국군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월남전의 영광을 기억하고자 했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와 민간인 학살 피해자 입장에서 베트남전을 복기하는 <기억의 전쟁> 사이에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선택할 역사는 무엇일까.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증언에 더 많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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