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개학연기와 재택수업 권고가 이뤄지는 가운데 청각장애 학생들의 학습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당사자 목소리가 나온다. 교육부는 온라인 강의 등을 대체수단으로 권장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강의 영상에 자막과 수어통역 지원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장애벽허물기, 농교육·농학교 바로세우기 추진위원회 등 8개 장애단체는 코로나19에 따른 청각장애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장애벽허물기, 농교육·농학교 바로세우기 추진위원회 등 8개 장애단체는 코로나19에 따른 청각장애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미디어스)

앞서 교육부는 지난 2일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교육분야 학사운영 및 지원방안'을 발표,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개학을 23일까지 2주 더 연기했다. 대학의 경우 코로나19가 안정될 때까지 원격수업 등 재택수업을 하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EBS 등 온라인 학습물, 교육부가 운영하는 KOCW(대학공개강의 공동활용 서비스), K-MOOC(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 등에는 상당부분 자막과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아 청각장애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 문제가 불거졌다. 이에 교육부는 해명자료를 내어 교육활동 지원사업 등을 통해 장애 학생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청각장애 당사자들은 명확한 지원기준이 없어 온전한 학습권이 보장되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유현주 교사는 "교육부의 해명자료는 타당한 면이 있지만 지금의 상황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농학생들은 늘 학습권을 침해받아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일부 교수의 경우 마스크를 착용하고 강의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 입술모양을 봐야 하는 청각장애학생들은 난감하다"며 "또한 초중고 학생들에게 안내된 온라인 콘텐츠에는 어디에도 수어통역이 없으니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학생들 역시 난감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평상시 온·오프라인상 장애 지원 서비스가 좋지 못한 탓에 이 같은 상황에서 청각장애학생들의 학습권은 더 밀려난다는 게 유 교사의 지적이다.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김민경 교사는 "교육부는 전국 모든 학교, 모든 학생과 학부모에게 3주간 개학연기에 따른 후속조치로 온라인 학습자료 등을 활용할 것을 안내했지만, '전국 모든 학생'에 청각장애학생, 특히 수어를 사용하는 농학생들은 포함되지 않았다"며 "EBS 동영상 등의 온라인 콘텐츠에는 일부만 자막이 있었고, 수어통역은 어디에도 제공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사는 "코로나19는 특수 상황으로, 이런 상황은 언제 또 생길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청각장애학생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기준을 만들어 달라"며 "더 나아가 EBS 등 온라인 학습물에 청각장애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수어통역이나 수어로 만들어진 학습 자료를 올라달라"고 촉구했다.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김민경 교사(가운데)가 EBS 등 온라인 학습물에 대한 자막·수어통역 서비스 제공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대학원생인 한국농교육연대 호예원 대표는 교육부가 운영하는 KOCW, K-MOOC의 강의 대부분에 자막, 수어통역은 없어 청각장애인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호 대표는 "코로나19로 각 대학에서 사이버 캠퍼스를 적극 운영하기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사이버 캠퍼스 강의에도 자막과 수어통역은 없다"면서 "청각장애학생이 요구하면 자막과 수어통역을 지원하겠다는 일부 대학도 있지만, 구체적 운영지침이 없어 청각장애학생들이 교수와 대학측에 애원하고 부탁하러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학생인 한국농아대학생연합회 구윤호 사무국장은 나사렛대학교, 대구대학교 등 비교적 청각장애 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잘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대학에서도 지원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구 사무국장에 따르면 나사렛대학교와 대구대학교는 유튜브 자막 설정, 장애학생센터 방문접수 등을 통한 지원방침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음성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유튜브 자막 전환의 부정확성, 코로나19에 따른 직접방문의 어려움 등으로 학습에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 사무국장은 "몇 개의 대학을 제외하고 대부분 농학생에 대한 서비스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제대로 된 학습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비스 제공 기준이 필요한데,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기존 장애학생지원센터 기준보다 더 구체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교육부에 ▲코로나19 등 긴급상황에서 청각장애 학생을 지원할 수 있는 기준 마련 ▲EBS 등 초·중·고 공개강의에 자막·수어통역을 제공할 수 있는 예산 마련 ▲온라인 강좌 단계적 자막·수어통역 제공 정책 마련 ▲초·중·고 청각장애학생을 위한 수어 영상도서·교육콘텐츠 확대 보급 등을 촉구하는 촉구하는 요청서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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