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테이크 쉘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디어스] 재난이란 무엇인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에 따르면 “과거와 미래가 모두 잘려나가고 순수한 현재라는 시간성만이 내 앞에 존재하는 상태”, 즉 ‘미래의 상실’이다. 영화 <테이크 쉘터>의 주인공 커티스(마이클 섀넌)는 명백한 재난 상황에 처했다. 어느 날부터 시작된 악몽 때문이다. 반복되는 꿈에 나타나는 폭풍은 누렇고 끈적한 비를 뿌린다. 비를 맞은 동네 주민들은 섀넌과 가족들을 공격한다.

불안감에 휩싸인 커티스는 그날부터 집 앞에 방공호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사실 이 행동은 계획이 아니다. 방공호가 미래인 사람은 없는 탓이다. 계획은 지금보다 나은 무엇이 되기 위한 설계다. 방공호 건설은 더 나은 무엇이 아니라 현상이라도 유지하겠다는 현재의 확장일 뿐이다. 방공호에 대한 커티스는 집착은 급기야 환각까지 일으키며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악화된다. 물론 커티스의 불안에 동조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가장 사랑하는 아내 사만다(제시카 차스테인)마저도.

영화 <테이크 쉘터>

곧 몰려올 폭풍에 맞서기도 바쁜 커티스에게 현재는 더 지독한 고난을 선사한다. 방공호로 쓸 컨테이너를 구입하려면 하나뿐인 보금자리를 저당 잡아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야 한다. 청각장애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외동딸이 있지만 동료와 불화를 일으켜 직장에서 해고되고 만다. 직장건강보험 없이 딸의 막대한 치료비를 부담할 길은 점점 막막해진다. 심지어 치료를 위해 찾은 정신과에서도 만만찮은 상담비와 약값 걱정이 앞선다. 현재 상황이 악화될수록 커티스는 미래를 위한 계획이라고 착각하는 방공호에 집착한다.

그리고 커티스는 결국 방공호를 완성한다. 그 순간 온 세상을 쓸어버릴 듯 무시무시한 비바람을 동반한 폭풍이 찾아온다. 커티스는 가족들과 방공호로 숨는다. 시간은 흐르고 사방은 조용하다. 방공호의 문을 열어야 하는 시간이 된다. 커티스는 주저한다. 당장이라도 비를 맞은 주민들이 방공호를 습격할 것 같다. 사만다는 커티스가 혼자 힘으로 문을 열 수 있도록 기다린다. 주저하던 커티스는 결국 철문을 연다. 밖은 조용하다.

영화 <테이크 쉘터>

폭풍은 그렇게 지나갔고 커티스는 진짜 미래를 되찾았다. 상담사는 치료를 위해 입원을 권유한다. 커티스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입원 전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고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이상하리만치 한적한 해변에 도착한 커티스 가족은 수평선 너머까지 이어진 시커먼 비구름을 본다. 그리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꿈에서 본 누렇고 끈적한 비가 커티스의 손에 떨어진다. 이제 폭풍은 커티스 혼자만의 악몽이 아니다.

<테이크 쉘터>는 2011년 개봉했다. 당시 평론가들이 2007년 경제위기 이후 빈곤층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미국 중산층의 위기감을 진단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10년도 지나기 전인 2020년 지금은 당시의 중산층의 우려들-연애, 결혼, 육아, 건강,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등-은 그저 악몽에 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계획은 고사하고 마스크 한 장으로 현재에 맞서는 걸 보고 있노라면 말이다. 방공호라도 있는 커티스가 부러운 시간이 올 줄이야. 마스크 한 장을 위해 새벽부터 약국 앞에 줄을 서는 사람들을 보며 다시 한번 묻게 된다. 재난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앞으로의 재난영화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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