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SKY 캐슬>의 '쓰앵님'이 돌아왔다. 온기라고는 느낄 수 없는 차가운 표정, 그 표정을 감싸며 들리는 낮고 저력 있는 목소리. 그리고 그때도 지금도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상흔을 감춘 듯 그림자가 드리운 '쓰앵님' 김서형이 <아무도 모른다>의 차영진으로 돌아왔다.

김서형이 분한 차영진은 현직 형사로 강력 1팀을 이끈다. 관내 여성들의 로망이자 우상, 하지만 그런 후배 형사들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불철주야 일만 파는 '워커홀릭'이다. 표창장을 받은 날, 하지만 최고의 찬사를 받은 처지가 무색하게 꽃다발 들고 찾아와 주는 사람 한 명 없다. 그녀의 집 역시 마찬가지다. 베란다에는 화초가 무성하지만 사람의 온기가 없다. 텅 빈 방 중 하나를 가득 채운 사건의 기록들. 식물을 돌보고 싶던 18살 시절의 그녀를 오늘날 형사로 만든 친구 수정의 사건을 비롯한 '성흔 연쇄살인 사건'의 기록들이다. 18살 여름 귀찮아서 받지 않은, 수정에게서 온 세 통의 전화가 차영진을 그 사건으로부터 놓아주지 않고 있다.

18살 차영진을 형사로 만든 사건

SBS 새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는 태완이 법을 계기로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되고 그로 인해 '아직 기회가 남은 연쇄 살인'의 범인을 추적하는 서사로부터 시작된다. 친구가 사건의 피해자가 된 사건, 친구의 전화를 받지 않은 그 '죄책감'에서 비롯된 원죄는 여주인공을 형사가 되어 사건을 추적하도록 만든다.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아직 과학적 수사법이 발달하지 않아 불가능했던 수사. 이제 당시의 여고생이 형사가 된 현재, 그 사건의 피해자 여동생이 가진 피해자의 유품에 남겨진 DNA를 통해 사건 추적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집요한 우정으로 시작된 <아무도 모른다>는 더이상 '성흔' 사건은 없을 것이라는 범인의 장담과 달리, 과거 사건의 흔적을 찾아간 교회에서 다시 한번 '성흔'을 남긴 채 살인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과거 성흔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서상원(강신일 분)을 통해 차영진의 집착을 넘어 현재형의 사건으로 부활한다.

그런가 하면, 가족도 없이 지난 십여 년을 친구 수정의 사건에 매달려 온 차영진에게 유일한 '인간적 온기'를 나눠 준 아래층 소년 고은호(안지호 분)를 통해 사건은 또 다른 각도에서 펼쳐진다. 우선은 고은호가 다니던 중학교가 과거 서상원이 헌신했던 신생명 교회 재단의 신성중학교인 데다, 은호는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목숨을 잃을 뻔하던 신생명 교회 권재천 목사의 비서였던 장기호가 전해준 비밀스런 책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방기되고 학교 내 폭력의 희생자였던 은호. 거기에 신발 상자 안에 숨긴 의문의 돈다발에, 이제 종교 단체와도 연루되어버린 은호는 정체 모를 위협에 시달리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

SBS 새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

차영진이 놓지 않았던 과거 연쇄살인에서 시작된 사건은 그 범인으로 추정된 서상원의 자살, 그리고 뜻하지 않게 그와 연루된 은호의 자살 혹은 살해 시도로 인해 '현재형'이 된다.

이렇게 현재형이 된 사건은 복합적이다. 우선은 범인이 여러 명을 연달아 살해한 연쇄살인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피해자의 손 등에 과거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당할 때 생긴 상처와 같은 성흔을 남긴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드라마들이 다룬 '장기 미제 연쇄살인사건'과는 달리 '종교적 색채'를 더하며 차별성을 갖는다.

그런데 사건 피해자의 유품에서 도출된 DNA의 당사자인 서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칫 연쇄살인사건은 그대로 마무리될 위기에 처해진다. 그리고 그 위기의 돌파구는 뜻밖에도 차영진이 수정이 이후 처음 마음을 연 은호 사건에서 찾게 된다. 그런데 은호의 사건은 얽힌 실타래와도 같다. 학교 폭력? 범죄 관련? 그리고 종교 단체와의 연관? 그렇게 드라마는 은호 사건을 통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펼쳐 보이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도한다.

거기에 은호가 소속된 학교, 그 학교가 소속된 신생명 교회가 보이는 의문스러운 태도들. 그리고 다짜고짜 학교에 나타난 의문의, 하지만 강력한 카리스마를 펼쳐 보인 자칭 성공한 남자 한생명 재단의 백상호(박훈 분)가 또 다른 가능성을 연다.

원심력으로 펼쳐나갈 복합 장르물

SBS 새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드라마는 장기 미제사건에서 시작하여 사이비 종교로 인한 범죄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거기에 현재 거대 교단과 관련된 모종의 부도덕한 사건의 여운을 더한다. 앞서 <조작>을 통해 언론과 검찰, 정권으로 이어진 거대한 음모의 큰 그림을 폭로했던 이정흠 피디는 이제 과거 사건에서 현재의 사이비와 거대 종교재단까지 더한 원대한 밑그림을 펼쳐 보이며, 보는 것이 다가 아닌 거대한 '음모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런 만큼 <아무도 모른다>는 아직은 그 밑그림의 설계도를 펼쳐나가는 과정이지만, 그 윤곽과 진실이 드러나면 또 한편의 거대한 스케일의 장르물로 진면목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대한 구도는 동시에 <아무도 모른다>의 발목을 잡는다. 첫방 9%에서 이후 8.8%의 하락세는 드라마가 그려내고 있는 그 거대한 밑그림을 진득하게 기다릴 수 없는 시청자들의 이탈을 반영한다. 차영진은 내내 진지하고 심각하며 사건들은 온통 의문투성이지만, 그것들이 시청자들에게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풀어내는 호흡마저 느리니 떡밥은 많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시청자들은 벌써 지친다.

과연 과거로부터 현재로 펼쳐진 거대한 '종교의 부도덕’을 폭로할 복합 장르물의 성공이냐, 그게 아니면 '도대체 아무것도 몰라서 답답한 안갯속 같은' 장르물의 좌초가 될 것인가. 그건 3, 4회의 전개가 가름할 것이다. 부디 뻔한 연쇄살인물의 변화를 지향한 시도의 안착과 함께 여성 원탑 드라마로 돌아온 김서형의 변신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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