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서울 종로구청이 한국마사회의 부조리한 구조를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문중원 기수의 추모 농성장을 비롯, 4개 단체가 설치한 천막 7개동을 철거했다. 종로구청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행정대집행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지만,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 등에서 정부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종로구청은 27일 오전 7시경 공무원 100명, 용역 200여명, 경찰 병력 12개 중대 등을 동원해 광화문에 위치한 정부서울청사 인근 농성장에 대한 강제철거에 돌입했다. 문중원 기수가 세상을 떠난 지 91일째 되는 날로 고인의 시신은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분향소에 안치돼 있는 상태다.

고 문중원 기수 시민분향소와 농성장 강제철거가 시작되자 시민대책위와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이를 막아섰지만 2시간여 만에 철거 집행이 완료됐다. 이 과정에서 고 문중원 기수의 부인 오은주 씨,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 등 6명이 부상과 탈진으로 병원에 이송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계자 4명은 연행됐다.

27일 오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설치된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 천막 농성장 철거를 두고 종로구청과 시민대책위가 대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민대책위에 따르면 종로구청은 26일 행정대집행을 하겠다는 입장을 지난 24일 통보했다. 시민대책위 측 반발에 행정대집행은 잠정 연기됐지만, 26일 종로구청은 재차 27일 아침 7시를 기해 행정대집행을 실시한다고 통보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고 문중원 기수의 아버지 문군옥 씨는 "며칠 있으면 옮기든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사정했는데도 이렇게 끄집어내는 것이 민주주의냐"고 울분을 토했다.

시민대책위은 27일 성명을 내어 "문재인 정권이 91일 만에 내놓은 대답은, 경찰과 용역 폭력배들을 앞세운 고인의 빈소 강제 철거와 시신 탈취 시도였다"고 규탄했다.

시민대책위는 "우리는 정부가 이 참람한 폭거의 명분을 창궐하는 바이러스 탓으로 돌릴 것임을 잘 안다"면서 "그동안 이 정부가 진상규명 등 문제 해결을 위해 그 어떤 진지한 노력의 모습이라도 보였다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고 문중원 기수 유족과 시민사회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책 마련을 요구해왔지만 김낙순 한국마사회 회장과 청와대는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낙순 회장은 유족과의 만남을 거부한 채 '승자독식 구조개선'이라는 이름의 수습책을 언론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마사회는 경찰수사를 의뢰했지만 자체 감사는 하고 있지 않다. 유족 상경투쟁이 시작되자 마사회 측은 교섭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교섭은 시작 18일 만에 결렬됐다. 당시 시민대책위 측이 전한 마사회 측 입장은 법적 책임이 확인되지 않는 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유족 보상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낙순 회장은 17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고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한국마사회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월 김낙순 회장을 문재인 정부 첫 마사회장으로 임명했다. 고 문중원 기수 사건에 대한 청와대 입장은 현재까지 없다.

고 문중원 기수 부인 오은주 씨가 27일 오전 행정대집행으로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설치된 천막 농성장이 철거된 후 눈물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민대책위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오체투지로, 백팔배로 거리에 나서 호소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할 수 있는 모든 협조를 다했다"며 "그조차도 예방조치에 각별히 주의하고 참여자들의 협조를 챙겼으며, 실제 그 결과로 지금까지 의심환자 한 사람조차 나온 일이 없다"고 했다.

이어 시민대책위는 "나아가 주말마다 수만 명이 몰리는 경마장의 폐장을 요구하면서도, 심사숙고 끝에 이 정권의 선의와 양식을 믿고 '죽음을 멈추는 희망버스' 집회를 스스로 취소 연기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마사회는 경마장 내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견된 후인 지난 23일에야 전국 사업장의 운영을 중단했다.

같은 날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어 "민주노총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전국가적인 비상상황에 지혜를 모으고 있고, 집단 행사를 취소 또는 연기하며 범정부적 방역 방침에 적극 협조·이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분향소 강제 철거를 단행한 정부 행정당국에 묻는다"면서 "71년간 한번도 바뀌지 않은 적폐 공기업 한국마사회를 고발하고 목숨을 끊은 고인을 자발적으로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이 코로나19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위원장)는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강제철거는 정부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라고 비판했다. 신 변호사는 "법적 정당성 이전의 문제다. 우리나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는데, 시신이 있는 분향소이자 장례식장"이라며 "100일 가까이 장례도 못 치른 분인데 그런 문제에 대해 행정력을 동원해 천막을 강제로 철거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신 변호사는 "서울시에서는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입장인데, 오늘이 제일 많은 사람이 모였다"며 "저도 현장에 있었는데 거의 몇 백명이 모였다"고 꼬집었다.

신 변호사는 "과도한 공권력의 행사이고, 서울시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더라도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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