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천영식 전 KBS 이사 후임으로 서정욱 변호사를 추천하기로 의결했다. 앞서 방통위는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인사 2명을 부적격자라는 근거로 부결시켰다. 한국당 세 번째 추천 인사인 서 변호사가 보궐이사로 추천되면서 방통위와 KBS 이사회 정치적 독립성 훼손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방통위의 서정욱 KBS보궐이사 추천 결정을 규탄한다”는 성명을 냈다. 앞서 ‘세월호 조사 방해 인사’나 ‘5·18 폄훼 인사’와 비교해 서 변호사가 KBS 이사에 적합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지적과 함께 방통위가 정치권의 추천 관행을 묵인하고 스스로의 권한을 포기했다는 내용이다.

19일 방통위 상임위원들은 비공개 회의를 열어 서 변호사를 KBS 보궐이사로 추천하기로 의결했다. KBS 이사는 방송법에 따라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해 방통위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방통위는 방송법에서 정한 결격사유 해당여부를 확인한 후 서 변호사를 보궐이사를 추천할 예정이다. 보궐이사의 임기는 전임자 임기의 남은 기간인 2021년 8월 31일까지다.

2017년 3월 21일 OBS에 출연해 박근혜 전 대통령 검찰 출두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서정욱 변호사 모습 (사진=OBS)

이번 KBS 보궐이사 추천 과정은 방통위가 처음으로 한국당 추천 인사를 거부하고, 한국당측이 추천 몫을 공개 주장하고 나서면서 공영방송 이사에 대한 정치권 추천이 공식화된 양상을 띄었다. 게다가 한국당이 추천한 이헌 전 세월호특조위 부위원장,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 서 변호사 등이 세월호 참사,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인사들이어서 자격 논란이 함께 일었다.

비공개 회의 후 브리핑에서 방통위 관계자는 KBS 보궐이사 추천에 대한 방통위·공영방송 이사회 정치적 독립성 훼손 논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방통위원 인사 추천에 관한 사항으로 제가 방통위 공식입장을 말씀드리긴 어렵다"면서 "다만 법 어디에도 정당 추천이라는 건 없다"고 강조했다. 법에 따라 방통위가 추천했을 뿐 정치권 추천은 없었다는 설명이다.

언론이 '관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정치권이 방통위원을 통해 사실상 공영방송 이사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라는 질문에 대해 이 관계자는 "언론이 관행 비슷하게 정당 추천이라는 표현을 쓰다보니 그렇게 표현이 흘러온 것 같다"며 "일견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방통위원은 여야 추천이 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야당 추천 위원이 이사를 추천하면 '야당 성향이 있겠다', 여당 추천 위원이 추천하면 '여당 성향이 있겠다' 간접적으로 느꼈던 것일 뿐 당에서 추천하는 것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언론시민사회에서는 천영식 이사 사표 수리 시기부터 방통위가 보궐이사 공모절차를 준비했다면 이 같은 논란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같은 지적에 방통위 관계자는 "보궐이사이다 보니 전례에 따라 갔던 것"이라며 "공모를 전혀 안하겠다라기보다는, 차후 개선계획을 밝힌 입장에서 내년도 방송문화진흥회, KBS, EBS 이사 공모 때는 전향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방통위는 지난달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KBS 등 공영방송 이사·사장을 선임할 때 국민 참여를 보장하고 절차적 투명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퇴한 천영식 전 이사는 한국당 추천 인사였다. '전례'에 따라 천 전 이사의 빈 자리가 다시 한국당 추천 인사로 메워진 모양새다.

이 관계자는 두 번의 한국당 추천 이사 부결 이유에 대해선 "세월호, 5·18 논란을 방통위원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며 "후보의 사상을 판단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부분에 대한 판단은 불가피하고, 보편타당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방통위가 한국당 KBS 보궐이사 추천 인사인 이헌, 이동욱 후보 등을 거부하자 한국당측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 몫을 공개 주장하고 나섰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대출 한국당 의원은 지난 11일 성명을 내어 "방통위가 또다시 폭거를 저질렀다. 야권 몫인 KBS 보궐이사 후보를 연거푸 퇴짜 놓았다"고 했다. 방송법상 법적 근거가 없는 보궐이사 추천 관행을 정당의 권한으로 주장하며 방통위 비난에 나선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16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방송법은 공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사회를 설치하고, 정치적 경력이 있는 사람을 이사의 결격사유로 정했다. 즉 정치권의 개입을 금지하는 것이 법의 정신"이라며 "정치권의 추천권 행사는 그것이 비공식적이라 하더라도 법의 취지를 어기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방송법에 '대통령이나 정당은 방통위원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고, 방통위원은 추천한 대통령이나 정당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권한을 행사한다'는 조항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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