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걸그룹 아이즈원이 오늘 17일 컴백한다. 작년 11월 원래 계획된 컴백이 무산된 이후 3개월 만의 복귀다. 지난여름 촉발된 엠넷 프로듀스 사태는 작년 연말 CJ ENM 허민회 대표의 기자회견을 경유한 후 아이즈원의 컴백을 통해 잠정적 주기가 완성되는 모양새다.

그동안 이 사태에 관해 충분히 많은 글을 썼다. 프로듀스라는 방송의 구조적 문제와 투표 조작 사태, 나아가 CJ ENM의 음악 산업 수직 계열화를 비판하는 글을 몇 차례 썼고, 사태에 대한 비판이 엑스원과 아이즈원을 향한 과도한 비난으로 변질되는 흐름을 지적하기도 했으며, 프로듀스 사태에 관한 언론 보도의 맹점을 짚는 글 역시 몇 차례 썼다. 다양한 각도에서 꾸준히 사안을 추적하며 언론과 여론의 동향을 놓치지 않고 관찰했다. 오랜 시간 사안을 지켜본 소감을 최종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느껴 워드 프로세서를 켰다. 이 글은 그동안 쓴 글들에 덧붙이는 에필로그이며, 나 자신이 말하지 않았거나 여타 기사에서 말해지지 않은 부분을 말하는 보론에 해당하는 글이다.

그동안 글을 쓰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여론과 언론의 관심이 지나칠 정도로 프로듀스 그룹, 특히 아이즈원의 해체 여부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못 박자면 투표 조작은 변호할 수 없는 잘못이다. 시청자들의 투표 참여를 통해 탄생한 그룹인데 거기 조작된 부분이 있다면 그룹의 존속 여부는 당연히 논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넘어 사태의 옳고 그름, 조작을 저지른 주체들에 대한 비판에 앞서, 그룹과 멤버들을 매장하려는 사육제가 벌어지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는 사태 초반에 특히 극심했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비난 게시물은 물론 악성 게시물이 넘쳐 흘렀고, 거기서 제공되는 소스를 인터넷 언론들이 받아쓰며 기사가 무한 양산됐다.

'투표조작 의혹' 오디션 프로그램 수사 확대 (CG) [연합뉴스TV 제공]

한국 언론 시스템의 나쁜 부분을 그대로 목도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조회수 외에는 관심사가 없는 선정적 연예 기사들, 취재를 거치지 않고 특정 언론사에서 보도한 기사를 소스 삼아 플라나리아처럼 증식하는 단신들, 비평이 아니라 악담에 이른 기사들, 저널리즘이 아니라 소설로 장르를 분류해야 할 기사도 많았다. 부정확한 사실을 인용하는 걸 넘어 아예 사실이라 부를 수 없는 허구를 창작하거나 명백히 자의적인 맥락으로 관련 정황을 취사 편집한 기사들이다. 익히 알고 있던 실태였지만 포탈에 뜬 기사 하나 하나를 읽으며 피부로 접하게 된 현실은 적나라했다. 사태를 심층 보도하는 비평 기사 역시 없지 않았지만 그런 기사들은 커뮤니티에 인용되는 일이 적었다. 왜냐하면 저 기사에 미달하는 무수한 기사들이야말로 커뮤니티 사용자들의 욕망을 충족해주는 전언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사회 여론 생성지는 전적으로 온라인에 치우쳐 있고, 신문과 정기간행물을 아우르는 매체의 숫자는 2만 개가 넘는다. 그중 구천 개가 인터넷 언론사다. 사회의 이슈는 양자를 축으로 왕복하며 공진하고 있고, 가십과 뉴스의 경계엔 광활한 구멍이 뚫려 있다. 그리고 이 양극을 오가는 흐름에 인터넷 사용도가 높고 이슈에 발언할 동기가 큰 특정 계층이 몸을 담고 있다는 정황이 보인다. 정파적 성향, 이념적 성향, 소속된 아이돌 팬덤 등에 따라 포털과 커뮤니티, SNS를 무대로 ‘댓글 관리’와 화력 동원, 여론전을 벌이는 것이다. 공론장에 참여하는 시민은 없고 이슈 쟁탈전에 참가하는 인터넷 사용자가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프로듀스 사태가 진행되며 온라인 각지에선 모종의 정황이 터져 나왔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프로듀스 그룹과 경쟁관계에 있는 아이돌 그룹의 팬이 안티 행각을 벌이는 것이 몇 차례 밝혀졌고, 어떤 그룹의 팬들이 ‘단톡 방’에서 아이즈원을 포함한 타 그룹을 비난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고, 얼마 전 모 유명 인터넷 카페에서는 운영진이 아이즈원을 비난하는 글을 조직적으로 쓰는 유저들을 적발해 공지 사항을 썼으며, 역시 특정 아이돌 그룹의 팬덤이 나무 위키에 등재된 타 그룹 문서에 반달리즘을 가하다 적발된 사건도 생겼다. 말하자면, 프로듀스 사태의 윤리적·사회적·산업적 층위와 병렬해 거기 개입하려는 아이돌 리그의 이해관계가 존재했으며 온라인 기층에서부터 특정한 방향으로 이슈를 증폭하려 한 욕망이 존재했다.

걸그룹 아이즈원 [오프더레코드 제공]

투표 조작 혐의는 프로듀스 전 시즌, <아이돌학교>까지 아우르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유독 기사와 여론의 화살촉은 아이즈원에게 쏠렸던 이유도 비슷하다. 이전 시즌 그룹들, 아이오아이와 워너원은 해체됐고, <아이돌학교>로 탄생한 프로미스 나인은 팬덤이 작으며, 기존 보이그룹 세력 판도는 이미 정립된 상태다. 기존 판도를 흔들 만큼 팬덤이 크면서 세대교체 주기에 들어간 걸그룹 시장의 정중앙에서 데뷔한 것이 아이즈원이다. 또한 <프로듀스 48>은 한일합작으로 치러진 데다 앞선 시즌의 보이그룹을 걸그룹으로 밀어내는 방송이었다. 내셔널리즘이 강한 한국 케이팝 팬덤의 성향, 프로듀스 시리즈 팬덤 내부의 정세가 결부돼 있다.

<프로듀스 48>은 방송 내내 내외부의 이슈 몰이에 휘말렸고, 아이즈원은 데뷔 직후에도 방송 출연 금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과 KBS 청원에 저격당했다. 당시 청원 서명을 요청하는 링크 역시 아이돌 팬덤이 다수 거주하는 특정 연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포됐었다. 일부 보이그룹 팬덤과 다수 걸그룹 팬덤을 아우르는 아이돌 리그 구성원들이 주시하던 그룹이 아이즈원이었고 그 정세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목청을 여는 일은 쉽다. 시간도 들지 않고 수고로움도 없으며 몇 분 몇 초면 댓글을 쓰고 청원에 서명한다. 그런 주장은 역시 쉽게 기사화돼 포탈을 뒤덮는다. 취재를 나가고 교차검증하는 시간을 거치는 언론사 대신 마우스를 드래그해 가십을 퍼 나르는 언론사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뉴스가 소음으로 변질되는 과정 속에 뉴스에 깃든 논제는 제대로 된 형식과 내용으로 말해졌을까? 지난 몇 달 동안 이 자문을 떨쳐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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