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선거에서 민주당만 빼고 찍어야 한다'는 취지의 신문 칼럼을 이유로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교수와 경향신문에 진행했던 검찰 고발을 취하했지만, 후폭풍이 가시지 않는다. 공보국을 통해 기자들에게만 보낸 '유감' 입장문이 사후조치의 전부로 그 내용 역시 임 교수 개인에 대한 이른바 '메신저 공격'으로 흐르면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에 대한 사과요구는 커져만 가고 있다.

민주당은 14일 공보국을 통해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사과가 아닌 유감을 표했다. 민주당은 임 교수가 '안철수 캠프 출신'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해당 칼럼이 분명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 고발을 진행하게 됐다고 했다. '안철수 전 의원' 싱크탱크 출신이라는 민주당의 유감 입장은 추후 '특정 정치인'으로 정정됐다.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확대간부회의. (사진=연합뉴스)

이날 앞서 열린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해당 사건에 대해 침묵했다. 이해찬 당 대표 명의로 고발이 이뤄진 사건이지만 관련 언급은 없었다.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국회 취재진은 이해찬 당 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등 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표현의 자유 침해 비판 등에 대한 입장을 물었으나 지도부는 답하지 않았다.

정부여당을 지지하는 여론 일각에서는 임 교수의 이력을 문제 삼는 등 이른바 '메신저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 급기야 15일 임 교수와 경향신문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신고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접수됐다.

임 교수는 14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자신의 신상정보를 올렸다. 임 교수는 "예상은 했지만 벌써부터 신상이 털리고 있어 번거로운 수고 더시라고 올린다"고 신상정보 공개 취지를 밝혔다. 온라인상에서는 임 교수의 한나라당 서울시의원 출마 이력 등을 문제삼는 여론이 일고 있다.

임 교수는 자신의 학력과 직장, 정당 이력 등을 밝혔다. 1998년 한나라당 서울시의원 출마, 2007년 민주당 손학규 대선 후보 경선캠프, 2007년 창조한국당 홍보부단장·사이버본부장·자원봉사센터장 등이다. 임 교수는 자신의 정당 이력을 설명하면서 지금과 지향을 가지된 계기로 긴급조치9호 30주년 기념문집 작성과 세월호 참사를 들었다.

임 교수는 16일 재차 SNS 글을 올려 "민주당에서는 고발 철회와 함께 당연히 당 지도부의 사과표명이 있어야 함에도 공보국 성명 하나로 사태를 종결시키려고 하고 있다"며 "다시 강조하지만 민주당이 과거 이력을 문제삼아 저의 주장을 폄훼하는 것은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당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비판적인 국민의 소리는 무조건 듣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언론에서는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민주당이 억압했다는 비판이 강하게 인다. 15일 경향신문, 한겨레,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서울신문 등 주요 신문들은 민주당의 고발조치, 부적절한 유감표명 등을 비판하며 사과를 촉구했다. "오만은 위대한 제국과 영웅도 파괴했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어쩌다가 이렇게 작은 핀잔도 못 견디고 듣기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스스로 검찰을 하늘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 온 정당이다. 언론의 자유가 중요한 가치라고 믿는 정당"이라는 민주당 내 비판의 연장선상에 있다.

경향신문 1월 29일자에 실린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칼럼 <민주당만 빼고>

민주당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현행 공직선거법을 개정하기보다 이를 활용하는 양태가 부적절하다는 시민사회 비판도 제기된다.

참여연대는 14일 논평을 내어 "민주당이 임 교수를 고발한 혐의는 공직선거법 제58조2 투표참여 권유활동과 관련된 256조 각종제한규정위반죄와 제254조 선거운동기간위반죄로 알려졌다"며 "칼럼의 주요한 내용은 집권당인 민주당과 집권세력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으로 결코 공직선거법으로 규율할 영역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참여연대는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각종 제한 규정들은 유권자들의 표현의 자유는 물론 참정권을 지나치게 제약해왔다. 또한 선관위와 검찰의 해석에 따라 임의로 고발과 수사, 가소가 이뤄져왔다"며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공직선거법 앞에서 멈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스스로 '민주'를 표방하는 정당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지는 못할망정 이런 악법 규정들을 활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현행 공직선거법에 대해 헌법재판소와 법원 등이 특정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해 투표참여를 권유한 경우 그 행위 자체가 형사처벌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만큼 해당 칼럼이 금지·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오픈넷은 "여당이 이를 몰랐다는 것도 문제고, 알면서도 고발을 했다면 국민의 정치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므로 더욱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논평 <'비판적 언론' 고발하려 한 집권당… 자유한국당 보고도 교훈 없었나>에서 "언론 칼럼에는 공식적 입장 표명, 반박 칼럼 게재 등 품위 있게 대응할 경로가 있으며, 이는 민주당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한겨레 고발 당시 윤 총장에게 했던 충고이기도 하다"며 "'언론 개혁'을 공약으로 삼았던 민주당이라면 '언론이 좌파에 장악됐다'며 반공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유한국당과는 다른 언론관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논평에서 "달라진 건 하나다. 민주당이 '여당'이 됐고 '낙선운동'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이라며 "민주당은 그동안 언론·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며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분들을 당으로 합류시킨 바 있다. 과연 그들의 의견이 반영됐나"라고 질타했다.

이어 언론연대는 "이낙연 전 총리가 '고발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지도부에 전달했다는 보도를 보면 그러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렇다면 더욱 이상한 게 아닌가. 언론·표현의 자유를 지키겠다고 국회로 들어가신 분들이나, 그들의 전문성을 운운하며 영입한 당이나 말이다. 이것은 비단 언론·표현의 자유 영역만의 일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민주당 박주민, 이재정 의원은 정의당 이정미 의원, 국회시민정치포럼, 정치개혁공동행동 등과 함께 '유권자 입 막는 180일 간의 선거법'을 주제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 촉구 토론회를 주최한 바 있다. 시민사회에서 선거운동 규제와 표현의 자유 관련 논의는 지속돼 온 사안으로 박주민, 이재정 의원을 비롯해 유승희, 진선미 의원(현 여성가족부 장관) 등 민주당 내 의원들은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 관련 지나친 규제를 풀고 유권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함께 내왔다.

한편, 14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른바 '정부 견제론'이 '정부 지원론'을 오차 범위에서 처음으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4·15 총선에서 '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45%, '정부 지원을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43%였다. 특히 중도층에서 '정부 지원론'(39%)보다 '정부 견제론'(50%)이 높게 나타나 지난달과 반전된 결과가 나왔다. (11~13일 18세 이상 1천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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