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위업을 이뤄냈다. 2020년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달성했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석권했다. 한국 영화는 물론 아시아 영화 역사에서도 초유의 일이다. 봉준호 감독은 북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을 ‘로컬’ 영화제라 일컬으며 화제가 된 적이 있지만, 할리우드는 세계 영화 산업의 공룡이며 아카데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시상식 중 하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감독이, 한국 영화가 국제영화상(예전 외국어 영화상)도 아니고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같은 주요 부문을 수상한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봉준호 감독이 수상 소감을 말하던 순간은 그 개인에게도 특별한 순간이었겠지만, 많은 한국인에게도 놀랍고 흥분되는 낭보였을 것 같다. <기생충>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최초의 한국영화인 동시에 아카데미까지 석권한 한국 영화가 되었다. <기생충>은 봉준호의 필모그래피는 물론 한국 영화, 한국 문화산업의 지표면에 높이 솟은 기념 조형물이 될 것 같다.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자랜드에 전시된 TV에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이 각본상을 받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다.(연합뉴스)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는 몇 가지 아이러니가 있다. 먼저, 봉준호 감독 개인의 커리어에서 드러나는 아이러니다. 봉준호 영화의 특징은 장르적 관습의 변주와 일탈이다. 봉준호 영화는 <괴물>이 프랑스 영화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진이 뽑은 '2006년 최고의 영화' 3위에 꼽히는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해외에서 좋은 평을 받아왔지만 유럽 영화제보다 할리우드 취향에 가깝다. 예컨대 역시 해외에서 평판이 좋은 이창동 홍상수 같은 감독에 비해 봉준호는 훨씬 장르적이다. 스릴러와 괴수 영화, SF 등 그의 필모그래피는 장르를 향한 여정이었으며, 그 이상으로 장르의 공식을 비틀고 위반해왔다.

봉준호가 <기생충> 해외 기자 회견에서 자신을 “장르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하면서도 “장르영화를 만드는데 규칙을 잘 따르지 않고 규칙의 틈바구니에 사회 현실 문제를 담아낸다”라고 자평한 것처럼 말이다. 봉준호 영화에서 장르의 관습이 변형된 자리에서 장르와 교직되는 것이 ‘한국적 현실’ 혹은 지역의 장르적·정치적 상황에 입각한 주제의식이다. 할리우드 장르 영화를 가져오면서 할리우드와 거리를 두는 것, 봉준호의 필모그래피는 다르게 풀면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지역적 전유의 역사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이후 찍은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가 이런 방면의 해설에 정확히 부합하는 영화였다면, 봉준호는 2013년 <설국열차>에서 한국의 국경을 벗어났다. 해외 스태프와 프로듀서, 배우가 다수 참여했고 주제의식이 글로벌해졌고 보편화됐다. 그다음 작품 <옥자> 역시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은 글로벌한 제작 방식과 스토리텔링, 캐스팅에서 <설국열차>의 연장선에 있는 영화처럼 보였다. 사실 <설국열차>와 <옥자>는 봉준호 영화 중 국내 평자들 사이에서 가장 호평이 적었던 영화이며, 스크린에서 배어 나오는 특유의 농밀한 정념과 어수선하고 분방한 활력이 옅어진 것처럼 보였다.

반면 <기생충>은 그 무대를 온전히 한국으로 돌려놓았다. 양극화와 계층갈등은 세계적 현상이지만, 동시대 한국의 계층적 광경을 보여주며 반지하 방과 ‘짜파구리’ 같은 한국적 도상을 세팅해 놨다. 이런 도상이 해외에서 이채로운 반응을 얻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봉준호는 <설국열차> 개봉 당시 <설국열차>를 자신의 필모그래피 초기작을 정리하는 영화로 봐달라고 말했었다. <설국열차> 이전까지 봉준호 영화가 한국의 특수성에 천착해 왔다면, <설국열차>를 기점으로 <옥자>까지 글로벌한 연출 단계로 나아갔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해외에서 가장 큰 호평을 받는 작품을 만들며 커리어의 ‘세계화’를 이룬 아이러니가 있는 셈이다.

<기생충>과 함께 CJ ENM이 거론되고 있다. CJ ENM은 <기생충>에 125억 원을 투자했다고 하며 아카데미 수상을 위한 홍보작업에 1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투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걸 ‘오스카 캠페인’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이미경 CJ 부회장과 허민회 CJ ENM 대표가 참석했고 이미경 부회장은 연단에서 직접 소감까지 말했다. 언론 지상에서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은 감독과 출연진, 스태프들뿐 아니라 CJ가 이룬 ‘업적’으로도 회자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포춘은 <기생충>에 관해 발행한 기사에서 이미경 부회장을 거론하며 그를 주목해야 한다고 가리켰다. 이번 수상은 최근 여러 악재로 수세에 몰린 CJ ENM에게 귀중한 반등점이 될 것 같다. 빈부 격차와 사회 양극화를 다룬 영화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 문화 산업을 수직계열화한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엔터 기업에게 화려한 트로피로 돌아왔다.

<기생충>의 수상을 ‘한국 영화의 승리’로 평할 수 있을까? 사실 봉준호 혹은 <기생충>이 한국 영화 전반의 현실과 연출 수준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관람 시장은 팽창했지만 대작에 치우친 산업 구조와 상업 영화의 질적 수준 획일화가 지적받은 건 오래전이다. 그 근간에는 대기업의 스튜디오 시스템이 있고 그것이 영화 제작과 연출가의 취향을 규격화했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로 한국에선 영화 시장 수직계열화가 확립된 이래 작가적 개성을 갖춘 스타 감독의 계보가 끊어진 상황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봉준호’를 낳기 힘든 시스템이 봉준호의 아카데미 수상을 도운 것이다.

문화 작품은 텍스트뿐 아니라 콘텍스트를 통해 그 성격이 직조된다. 아카데미 수상과 함께, <기생충>은 빈부 격차라는 한국의 지리멸렬한 현실을 담은 텍스트의 성격에 앞서, 초유의 국가적 위업을 달성하며 한국의 ‘국격’을 높인 영화로 회자되고 기록되는 분위기다. 이것이 <기생충> 수상에 관한 마지막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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