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정홍원 전 총리가 3일 일부 보수유튜브 채널과 언론사 등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를 돌렸다. 정 전 총리는 문 대통령을 향해 자진 사퇴 용의를 묻고, 박 전 대통령 사면을 언급하며 국정농단 사태의 위법성을 전면 부인하는 내용을 공개질의서에 담았다.

보수 유튜브 채널에서 곧바로 38분 가량의 정 전 총리 공개질의 영상이 여과없이 업로드됐다. 언론도 다르지 않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상당수 언론이 정 전 총리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전했다. 공개질의서를 받지 못한 언론은 유튜브 채널 등을 인용하며 정 전 총리의 주장을 전했다. 전직 총리의 현 정부 비판은 '매우 이례적'이며 정 전 총리가 정부 국정운영을 '조목조목' 비판했다는 분석 정도가 언론에서 추가된 내용이다.

반면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MBC, SBS, JTBC 등의 언론은 정 전 총리의 공개질의 내용을 전하지 않았다. 정 전 총리의 말을 적극적으로 전한 언론과 그렇지 않은 언론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정홍원 전 총리는 3일 일부 보수유튜브 채널과 언론사 등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를 돌렸다. (사진=유튜브 채널 '신의한수' 캡쳐)

정 전 총리는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총체적인 거짓·파탄·실정'으로 규정했다. ▲거짓말이 된 취임사 ▲헌법 파괴 ▲선거개입 ▲시장경제 역행 ▲근거 없는 원전 중단 ▲부정직·부도덕·무능 ▲반인권적 탈북민 북송 ▲정치보복 등이 문제라는 것이다.

정 전 총리는 "반자유주의적이고 반헌법적인 사상이 소신이라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으므로 그 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며 "자진 사퇴할 용의가 없는지 밝히라"고 문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정치보복' 문제를 언급할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억울하게 수감돼 있는 사람들을 석방하는 등 보복의 질주를 멈출 용의는 없는지 답해달라"면서 "호주머니에 돈 한 푼 들어간 흔적이 없는 박 전 대통령에게 경제 공동체니 묵시적 합의니 하는 이론을 만들어 신종 뇌물죄를 창출하고 30년형을 선고한 것은 누가 봐도 보복"이라고 말했다.

정 전 총리의 이 같은 주장은 개인 표현의 자유 범위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문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고,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사법적 판단이 내려져 처벌을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을 '억울하게 수감된 자'로 표현해 사법정의의 근간을 부정했더라도 한 개인으로서 이 같은 주장을 펼 수는 있다.

문제는 언론에 있다. 민주주의 공론장으로서 기능하는 언론은 비난이 아닌 비판의 영역에서 권력감시와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신념으로 여긴다. 그런 언론이 따옴표를 통해 전직 국무총리의 비난을 무비판적으로 수용, 전달하는 것은 비난을 옮긴 것 밖에는 안 된다.

중앙일보 4일 <정홍원 “문 대통령, 반민주·반헌법이 소신이면 물러나야”>

정 전 총리의 정부 국정운영에 대한 공개질의는 마침 총선을 2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이뤄졌다.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진영과 주요 보수언론이 문재인 정부 4년차에 벌어지는 총선에서 이른바 '정권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시점이다.

지난달 24일 조선일보에 실린 박정훈 논설실장의 칼럼 <무능한 줄로만 알았는데 '선수'였다>가 대표적이다. 이 칼럼에서 박 논설실장은 청와대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뤄진 법무부의 검찰 인사를 칼럼 서두에 언급하며 정권심판론을 주장했다.

이 칼럼에서 박 논설실장은 "문 대통령은 애초부터 취임사의 약속들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며 "남은 2년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라가 망가져도 아랑곳 않는 막무가내 정권을 대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선거로 심판하는 것"이라고 썼다.

박 논설실장은 정부가 권력의 거악을 파헤치는 검찰을 악의 집단으로 만들고, 불공정·특권·반칙 이슈인 조국사태를 인권침해로 엎어치고, '미친 집값'을 만들어 놓고 '강남 대 비강남'으로 편 가르기 하고, 일자리를 만들려면 세금을 퍼부어야 한다며 비판 목소리를 '반서민'으로 몰아 붙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논설실장은 "문 정권은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국익의 선량한 관리인이 아니었다. 국민보다 진영, 국가 이익보다 이념, 나라보다 선거를 우선하는 정파의 대변자에 가까웠다"며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은 애당초 허언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일련의 국정 자해극은 무능 때문이 아니라 이 정권의 태생적 본질"이라고 했다.

'거짓말이 된 취임사' '헌법 파괴' '시장경제 역행' '부정직·부도덕·무능' '정치보복' 등의 키워드를 내세운 정 전 총리의 주장은 박 논설실장의 칼럼 내용과 상당부분 겹쳐진다. 정 전 총리는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모두가 허언이 되고 말았다"는 말로 공개질의를 시작해 "오는 4.15 총선을 통해 준엄한 심판이 내려질 것임을 확신하며 또 확실한 심판이 내려지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글을 맺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운데)와 박형준 혁신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오른쪽 끝) 등이 지난달 3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혁신통합추진위원회 제1차 대국민보고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는 지난달 27일 칼럼 <유튜브 편향성 닮아가는, 조중동의 문재인 때리기>에서 설 연휴 직전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쏟아낸 조선·중앙·동아일보 칼럼에 대해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권력 감시"라며 "문재인 정부의 검찰 인사가 검찰의 청와대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검찰 인사를 수사방해라는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총선에서 심판할 것을 촉구하는 것은 언론의 책무를 벗어난 과잉 보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성 선임기자는 "이번 문재인 정권 심판론은 과거 박근혜 정부에 대한 그들의 보도 태도와 비교해도 너무 지나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면서 이 같이 보수 성향 신문들의 정파성이 점차 강해지는 이유로 '확증 편향 강화의 시대상황'을 꼽았다.

성 선임기자는 지난해 6월 TV칼럼니스트 이승한 씨의 한겨레 칼럼 <유튜브가 업이 되는 순간 빠지게 되는 함정>을 인용해 이 같은 현상을 설명했다. 이 씨는 칼럼에서 다채널 무한경쟁 시대 속 '특정 성향을 지닌 구독자만 집중적으로 만족시키는' 유튜브의 매체전략을 언급하며 지상파, 케이블채널, 종편, 활자 기반의 언론 역시 다채널 무한 경쟁 시대에 도착해 있다고 진단했다. "유튜브가 다른 플랫폼보다 먼저 그 상황의 극단을 경험하고 있을 뿐, 지금의 추세라면 결국 모든 미디어가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