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중국 우한에서 송환되는 교민들을 격리수용할 지역을 두고 진천·아산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특히 해당 지역 주민들은 애초 정부가 격리지역으로 천안을 검토하다 천안에서 반발이 일자 진천·아산으로 지역을 변경했다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정부가 진천·아산 주민들을 우롱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정부의 '우왕좌왕' 대응이 님비현상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정부는 수용인력이 예상보다 급증하면서 검토 끝에 진천·아산지역으로 확정하게 됐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주민이 반대하면 수용지역을 변경할 수 있다는 인상만을 남겼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조선일보 등은 '정부가 야당 지역을 골라 바꿨다'는 정치적 주장까지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격리수용지역으로 천안이 처음 언급된 것은 정부발표가 아닌 언론이었다는 점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배경에 언론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중앙일보 1월 28일 <[단독]"'전세기 철수' 우한 교민, 2주간 천안 2곳에 격리한다">

우한 교민을 격리수용할 곳으로 천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28일 중앙일보의 단독보도로 알려졌다. 중앙일보는 <"'전세기 철수' 우한 교민, 2주간 천안 2곳에 격리한다">기사에서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 등 2곳이 격리시설로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 이후 '천안 격리설'과 천안 주민들의 반발이 수십 건의 기사로 집중 보도됐다.

정부가 천안을 격리수용지역으로 유력하게 검토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날 오후 4시경 정부는 우한교민 송환대책을 발표하기 전 사전 브리핑 자료를 배포했다. 해당 보도자료에는 중앙일보 보도에서 언급된 천안 수용시설 2곳을 임시보소호시설로 활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후 실시된 브리핑에서는 관련 내용이 제외됐다.

당시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은 "민감한 사항이라 격리 장소를 밝힐 수 없다"고 했고, 김용찬 충청남도 행정부지사는 중앙정부의 상황이 변경됐다고 사전 배포된 자료에 대해 해명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9일 정부는 진천·아산에 우한 교민들을 수용하겠다고 공식발표했다. 이 지점에서 진천·아산 주민들의 반발과 언론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이 같은 지역 주민의 반발이 중앙일보 보도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천안에 우한 교민을 수용하겠다고 공식발표한 적은 없다는 지적이다.

민언련은 "중앙일보 보도 이후 28일 하루 동안 네이버에 송고된 온라인 기사 중에서 '천안 지역 반발'이 포함된 기사는 37건이나 됐다"며 "이러한 보도를 본 진천·아산 주민들은 자신들이 반발하지 않아 자신들의 지역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민언련은 "중앙일보의 보도가나온 날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은 브리핑에서 '민감한 사항이라 현재로선 격리 장소를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음 날인 29일 오후 정부는 최종적으로 진천·아산지역 공무원 교육 시설에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면서 "정부는 귀국 희망 인원이 점점 늘어나고, 1인 1실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더 큰 수용시설을 찾은 것"이라고 했다.

29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부처 회의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수용인원 급증을 지역변경의 이유로 들고 있다. 24일 150여 명 수준이던 귀국 희망 교민이 26일 500명, 27일 694명, 29일 720명으로 점차 크게 증가하면서 1인·1실·1화장실 병역원칙에 따라 방역통제가 가능한 시설로 선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은 384실(2인실), 천안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은 289실(4인, 8인 다인실 다수)로 교민 700여명 1인 1실 수용과 150여명 규모의 정부지원단 숙박이 어렵지만,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638실(2인실),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210실(2, 3인실 다수)은 총 848실로 1인 1실 동시 수용이 용이하다. 행안부 등 정부는 천안을 유력검토한 것은 맞지만 여러 후보지를 놓고 조건들을 대입해 평가하는 과정에서 진천·아산이 최종 결정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민언련은 "언론은 어느 수용시설에 격리될 것인지 점치기 이전에, 우리 교민들이 왜 수용시설에 격리되어야 하는지, 수용시설에 인근의 지역 주민은 실제로 안전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취재해서 시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어야 한다"며 "이런 정말 필요한 보도는 제쳐두고, 어느 지역이 낙점되었다는 식의 보도를 내놓아서 갈등만 키운 것이다.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는 우리 사회에 어떤 공적인 이익도 주지 못하며, 갈등과 불안만 부추길 뿐"이라고 질타했다.

반면, 정부가 격리시설 지정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투명한 사전동의 절차를 진행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향신문은 31일 사설 <미숙한 정부 대응·님비가 초래한 우한 교민 격리시설 논란>에서 정부 대응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와 협의 한번 거치지도 않았다. 외양상 주민이 반대하면 변경될 수 있다는 빌미만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진천·아산 지역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경향신문은 "미리 지정해 놓고 주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향신문은 "감염병 확산 국면에서는 무엇보다 투명한 행정과 정보의 공개가 중요하다. 격리시설 지정처럼 주민 이해와 공동체 가치가 충돌하는 사안일수록 사전에 동의 절차를 투명하게 진행했어야 옳다"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격리시설 변경 과정과 안전관리 대책을 상세히 설명하고 주민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3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우한 교민 수용에 있어 지역주민과 충분히 소통해야 했으나, 대응 과정에서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며 “상당한 불만·혼란을 초래한 점에 사과드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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