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8일 방송된 KBS <미녀들의 수다>의 한 장면이다.

출연자 중의 한 명인 도미니크가 ‘한국을 떠나 집으로 돌아갔을 때 실수로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었다’고 말하는 순간, 스튜디오 안 한국 사람들이 보인 표정이나 반응은 ‘그게 뭐가 문제가 돼?’라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적 상황에서 보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날 외국인 출연자들이 ‘돌아가면서’ 신체접촉이 가지는 문제점을 지적한 걸,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건 ‘범죄’였다. 구체적으로 성.희.롱.

아이의 신체에 손을 대는 행위가 한국을 벗어나게 되면 범죄가 될 수도 있다는 ‘다소 심각한’ 의미가 내포돼 있었지만 <미녀들의 수다>는 이를 ‘국내 남성출연자’ 특유의 익살과 재치(?)로 그냥 넘겨버렸다.

특히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함부로 안지도 못한다는 사례가 나왔을 때도 그걸 ‘한국적 개그’로 연결시켜 웃어넘겼지만 사실 그건 그냥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그만큼 외국의 경우 성희롱에 대해 어릴 적부터 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냥 웃음으로 넘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출연진들이 여러 구체적 사례를 통해 강조하고 있었지만 <미녀들의 수다>는 이를 그냥 웃음으로 대치했다. 그냥 문화적 차이로만 인식했다고 할까.

하지만 원하지 않는 신체접촉을 단순히 문화적 차이로만 규정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한국이 가진 특수한 문화라기보다는 성희롱에 대한 한국의 낮은 인식수준을 좀더 명확히 보여줬다고나 할까. 사실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살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KBS <미녀들의 수다>는 ‘논란의 여지가 많으면서도’ 나름 장점이 있는 프로그램이다.

어찌 보면 남과 ‘부딪히며’ 사는 게 인생인 듯싶다. 땅덩이는 좁고 인구는 많고, 먹고는 살아야하니 매일 아침 출근전쟁을 치러야 하고, 퇴근 후에는 또 각종 회식이다 모임이다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야 한다. 생각해보니 ‘부딪히며’ 사는 게 인생이 아니라 ‘부대끼며’ 사는 게 인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출근전쟁과 각종 모임 등에서 ‘전쟁’을 치르다 보면 다른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신체를 접촉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비단 모임 뿐만 아니라 정말 우리네 일상 자체가 접촉의 연속이다. 지하철에서 툭 치며 지나가는 사람은 부지기수고, 아예 대놓고(!) 퍽 치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출근시간 지하철을 한번 생각해보자. 지하철 속으로 진입하는 자와 이미 진입해 있는 사람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 순간만큼은 모두 미식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다.

‘한국적 상황’이 이러할 진대 CF나 영화에서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고상한 일상’을 가질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대중매체 속 대중교통은 어쩜 그리 한가롭고 여유로운지!)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마디 덧붙이면 이 좁은 땅에서, 사람과 ‘부딪히며’ 살든 ‘부대끼며’ 살든 그것이 ‘숙명’이라면 어차피 감수해야 할 몫이라는 말이다. 어디를 가든 사람으로 넘쳐나는 곳에서 남과의 신체접촉을 피하면서 ‘마이웨이’ 할 수는 없는 노릇.

다만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의도하지 않은 신체 접촉에 한해서라는 것이다. 시간과 장소는 한정돼 있거나 늘 부족하고, 먹고는 살아야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되는 신체 접촉은 일단 ‘감수’할 수밖에 없다.

물론 가급적 신체 접촉은 피해야 하고 설사 의도하지 않은 신체 접촉이라 해도 상대방에게 ‘미안하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그 의사표시가 한국에서는 잘 작동이 되질 않을뿐더러 어떤 이들은 그걸 당연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가끔 그들의 무의식(?)에 경악하면서 어이없어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런 신체 접촉이 일상화 되다 보니 ‘선의’를 가진 신체 접촉에 대해서는 더욱더 무신경해지는 게 사실이다. 가령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귀엽다는 이유로 “어머 귀여워”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거나 얼굴을 만지기도 하는 게 우리네 일상이다. 하지만 아무리 귀여워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만지는 것은” 삼가야 한다.

본인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의 신체접촉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특히 아이들의 경우 본인의 의사표시 등을 정확히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이유가 됐든’ 가족의 경우를 제외하곤 가급적 신체접촉은 피해야 한다. 그것이 아이의 자발적 ‘접촉’이 아니라면.

가급적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피하자. 정말 친한 관계가 아니라면 남의 몸에 가급적 손을 대는 일은 삼가자. No To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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