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의 말로'라는 식으로 서태지의 이른바 '신비주의'를 문제 삼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서태지가 그동안 신비주의 전략으로 돈을 많이 벌었는데, 거기엔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식이다.

뭔가 대중에게 응당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고, 지나치게 자기 편할 대로만 한 이기적인 마케팅 전략이었으며, 영악한 돈벌이 수법이었다는 비판이다.

그런데 수많은 매체가 문제 삼고 있는 그 '신비주의'란 것의 정체가 무엇일까? 서태지는 몇 년에 한 번씩 잠깐 음반활동할 때만 빼면, 조용히 자기 삶을 살았다. 이게 신비주의란다.

전략이니, 마케팅이니 하는 이름을 붙이려면 뭔가를 능동적으로 하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에 이런 이름을 붙이긴 힘들다. 서태지는 가끔 가다 한 번씩 하는 음반활동 이외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전략이고 마케팅인가?

서태지는 자신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누구나 그렇게 자기 삶을 산다. 이게 뭐 그리 특별한 일인가? 삶을 사는 것이 무슨 전략이고 마케팅이고, '주의'란 말인가?

신비주의의 문제에 집중하는 '신비주의 프레임'은 서태지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음반활동만 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 '없어져야 할 사람'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건 문제다. 그런 사람은 없어져야 할 대상이 결코 아니니까.

요즘 사생활 팔기, 추억 팔기, 사생활 교차 폭로하기가 대세다. 우린 지금 노출증, 노출 마케팅이 넘쳐나는 '노출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이상하게 생각해야 할 건 바로 이런 노출과잉이다. 뮤지션이 왜 사생활을 팔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신비주의가 아닌 노출주의가 문제다.

노출주의를 문제 삼아야

서태지는 가수가 방송사나 대중음악산업의 부속품처럼 여겨지던 시절에 뮤지션의 가치를 확립한 사람이다. 그는 처음 데뷔했을 때부터 음악활동 이외의 것에 무관심했다. 서태지 이후론 주류 대중음악계에서 이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엔 다시 가수들이 예능의 부속품처럼 변해가고 있다. 기성가수가 음악프로그램이 아닌 서바이벌 예능프로그램을 통해서야 비로소 인정받는 <나는 가수다>는 요즘 한국 가수들의 처지를 웅변해주고 있다.

음반활동 이외엔 아무 것도 안 하는 주류 가수는 달랑 서태지 하나가 남은 것이다. 음악 이외엔 아무 연예활동도 안 하고, 음악 이외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 사람이 딱 서태지 하나 있을 뿐인데 그것조차 그렇게 눈엣가시였을까? 한 명도 남김없이 대중과 언론의 감시 아래 포박해야 하나?

물론 확고한 스타성이 있는 사람은 비노출 전략도 마케팅 전략으로 쓸 수 있긴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서태지에게 신비주의 마케팅이란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증언에 의하면 서태지는 원래 드러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타고난 성격을 마케팅이라고만 하긴 힘들다. 그러므로 성격과 마케팅이 결합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성격의 부분에 대해선 앞에서 지적했듯이 당사자 마음이고 자신의 삶일 뿐이니까 제3자가 왈가왈부할 필요 없는 것이고, 마케팅의 부분도 그렇다. 위에 말했듯이 지금처럼 노출증이 범람하는 시대에 이런 식의 음악활동 중심 신비주의 마케팅이란 게 정말 있다면 오히려 소중하게 여겨야 할 가치다.

뮤지션들이 예능이나 사생활을 모두 빼고 음악만으로 인정받고, 대중이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한다면 한국 대중음악이 얼마나 발전하겠는가? 그러므로 지금 언론이 벌이고 있는 신비주의 사냥은 무리수다. 달랑 하나 있는 서태지는 놔두고 범람하는 노출주의를 문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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