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남산의 부장들>은 많은 종류의 익숙함에 의지하는 영화다. 박정희가 살해된 10.26은 사건 개요가 익히 알려진 역사적 사건이며, 티브이와 극장을 거쳐 몇 차례 재현되었다. <남산의 부장들>은 플롯과 인물 묘사, 인물 관계 등 대부분을 실화에 디테일을 덧붙이는 것으로 진행한다. 예컨대 영화의 선명한 대결구도, 김규평과 곽상천의 갈등은 당시 중앙 정보부장 김재규와 경호실장 차지철의 그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다만, <남산의 부장들>에 10.26을 다룬 극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중앙정보부라는 방첩 기구, 정확히는 김규평(김재규) 개인에게 렌즈를 맞추고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 비중을 둔다는 점이다.

<남산의 부장들>의 또 다른 익숙함은 장르적 성격이다. 영화는 역사적 사건을 뼈대로 삼지만, 정치 드라마나 역사 드라마는 아니다. 그보다는 누아르 무비, 남자들의 갈등과 배신, 대결을 다룬 소위 한국 ‘남자 영화’에 가깝다. 화면의 톤은 어둡고 불투명하며, 청와대를 정점으로 한 경호실과 중앙정보부의 조직 구조는 조직 폭력배 집단이 연상된다(군사 정권 자체에 그런 속성이 있기도 했을 것이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을 재현한 박용각은 조직을 이탈한 배신자에 다름 아니며, 김규평은 과거 그와 피를 나눈 ‘형제’지만 ‘보스’의 명령으로 배신자를 숙청한다. 박 대통령 역시 일국의 지도자라기보다 마피아 조직의 두목처럼 보이며, 그가 심복들을 처리하는 비정한 술수 또한 누아르 영화의 관습에 속한다. 그 외에도 영화는 미국과 프랑스를 넘나들며 스파이 활동과 도청, 미행과 납치를 벌이는 첩보 영화의 관습을 차용한다. 역사적 실화와 김규평의 심리 드라마, 누아르와 첩보 영화의 혼성, 이것들이 <남산의 부장들>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이미지

주연 배우 이병헌의 캐릭터 또한 익숙하게 활용된다. 영화의 드라마를 저변에서 이루는 감정선은 김규평과 박 대통령의 애증 관계다. 김규평은 박 대통령의 장기 독재를 둘러싼 이상 징후들에 동요하면서도 대통령에게 인정받기를 갈구한다. 대통령과 김규평의 관계는 유사 부자관계다. 김규평과 곽상천의 충성경쟁은 누가 적자이고 누가 서자인지 아비에게 승인받기 위한 인정 투쟁이다. 대통령 역을 맡은 이성민과 김규평을 맡은 이병헌은 실제론 동년배지만, 이성민이 나이보다 늙어 보이게 분장했고 이병헌은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동안이라 관계 구도는 강화된다. 이런 보스와 오른팔의 애증 관계는 이병헌의 대표작 <달콤한 인생>에서 선우와 강 사장의 관계와 흡사하다. 보스의 의심에 버림받은 부하가 막다른 궁지에 몰려 보스를 총으로 살해한 후 몰락하는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면 두 영화의 플롯은 동일하다.

이렇게 장르 영화의 성격이 강조된 배경은 서사의 무대가 청와대 권력 기구 내부로 철저하게 제한되며 당대의 역사적 풍경이 암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야기는 권력의 중심부에 있던 장르화 된 인물 몇 명으로 조직돼 있고, 시민들의 얼굴과 삶은 물론 시가지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 민주화 시위에 관한 사실은 장면이 아니라 등장인물들 대사로 표현될 따름이다. 이 점은 <남산의 부장들>이 품은 역사에 대한 태도로 이어진다.

김재규와 10.26에 관한 해석은 정파적 입장에 따라 양극단으로 나뉘는 면이 있다. 박정희를 지지하는 우파들에게는 충성 경쟁에서 패배한 인물이 충동적으로 저지른 대통령 시해 사건이며, 그 반대편 중도 우파 진영에는 김재규를 ‘민주화 의사’로 복권하자는 입장까지 있다. 영화는 어느 한쪽으로 가기보다 그 입장들을 하나씩 취해 종합한다. 김재규가 차지철과 박정희로 인해 느끼는 감정의 혼돈, 독재 정권 내부의 합리적 온건파의 면모를 아울러 묘사하고, 거기 더해 대통령에게 숙청당할 운명을 자각한 순간을 트리거로 박아 넣는다. 이를 위해 김규평이 직접 비를 맞으며 박 대통령의 대화를 도청하는 장면이 배치돼 있는데, 현실적 개연성을 버리고 장르적 개연성에 복무하는 연출이다. 이는 김재규의 거사 동기를 장르화하는 연출이며 그의 결행에서 주체성은 억제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이미지

서사의 흐름을 보아도 10.26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재현된다. 한 시대의 운명이 이미 저물었음을 공언하는 대사가 반복되며 (“President Park Is Finished.“) 영화는 10.26 당일로 시작해 전두환의 대두로 끝난다. 김규평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대통령의 죽음을 택했고, 김규평이 아니라도 독재는 끝이 났을 것이며, 거사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독재는 막을 수 없었다. 영화에는 시위대의 모습이 단 한 차례 등장한다. 헬기를 타고 부마항쟁을 내려다보는 김규평의 시점 숏에서, 건물을 태우는 불길은 아득하며 성난 군중은 막을 수 없어 보인다. 버즈 아이 뷰 숏으로 지상을 보는 초월적 시야를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물살이 현현한다.

10.26을 역사적 흐름의 일각으로 명확히 한정 지으면서, 영화는 김재규를 윤색하거나 민주화 과정을 ‘수컷’들이 밀실에서 벌인 권력 투쟁으로 환원하는 오류를 피해 가는 데는 성공한다. 이건 정치적 균형 감각이라기보다, 역사를 장르화하기 위한 역사로부터의 안전한 거리두기 같다. 모든 것은 그렇게 예정되어있었다는 숙명론 아래, 40일간의 실화가 서사적 틀에 묶여 나열되는 데 머물며 인물들과 사건은 장르적으로 해석되고 전유된다. 역시 10.26을 재현한 임상수의 2005년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실존 인물들의 이미지를 비틀고 상황을 재구성해 10.26을 한바탕 소극으로 펼치며 역사의 인과율에 대한 관념을 해체했다. <남산의 부장들>에는 역사에 대한 비평과 관점이 존재하지 않고 상상력이 통속적이다. 가령 김규평이 저지른 죄악, 그를 무너트리는 죄의식은 중정 부장으로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데 가담한 정치적 책임이 아니라 오래된 ‘형제’ 박용각을 죽인 장르적 율법의 위배에 있다.

<남산의 부장들>은 군사독재와 민주화 항쟁이 결부된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 가운데 가장 탈역사적이고 탈정치적인 영화에 속할 것 같다. 우파들에게 숭배받던 전 대통령 살해 사건을 장르화한 영화가 명절에 개봉해 흥행하는 건 이 사회가 이제 박정희라는 역사의 무거움에서 그만큼 물리적으로 떨어진 시각에 와있다는 뜻이다. 가령 <그때 그 사람들>이 개봉했을 때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들어간 것과 같은 논란은 이번엔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점은 2017년 박근혜 탄핵으로 박정희의 상징적 통치가 탄핵당한 사건과 당연히 무관하지 않다. <남산의 부장들>은 박근혜를 자리에서 끌어내린 촛불 집회 이후에 개봉해 6월 항쟁을 통해 광장을 회고하게 한 <1987>과 함께, ‘포스트 3.10(박근혜가 파면당한 날짜) 영화’로 분류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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