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을 둘러싸고 보이는 두 나라 국회의 자세가 판이하다. 양국의 정치일정을 미뤄보면 정상적인 처리는 무리다. 그런데 한국 국회는 협상내용을 면밀히 검토-분석도 하지 않고 이달 안에 본회를 통과시킨다며 밀어붙이고 있다. 반면에 미국 의회는 쇠고기, 자동차 재협상을 요구하며 비준을 반대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통합신당이 어깨동무하고 17대 국회에서 비준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며 기세를 올린다. 4월 9일 총선을 앞두고 많은 의원들의 마음은 표밭에 가있다. 공천을 받아야 출마 길이 열리는 절박한 심정이 눈앞을 가린다. 그런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가 지난 13일 민주노동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준 동의안을 상정했다. 질서유지권까지 발동하면서 말이다.

▲ 한겨레 2월19일자 사설.
통일외교통상위는 비준안을 법안심사소위에 넘기기 전에 먼저 공청회와 청문회를 갖는다. 그런데 소속위 이외의 의원 출입마저 통제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국민적 논의를 생략 한 채 추진하여 많은 저항을 불러일으킨 것과 닮은꼴이다. 여론무시과 밀실논의가 말이다. 그런데 통외통위의 출석률이 저조하니 전체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될지도 의문이다.

미국에서는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다. 대선승리가 확실시되는 민주당의 유력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바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의회일정도 조기비준을 가로막고 있다. TPA(무역촉진권한법)는 행정부가 제출한 FTA 이행법안을 90일 이내에 수정 없이 표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원 세입위원회 심의 45일, 본회의 표결 15일, 상원 재무위 심의 15일, 본회의 표결 15일 이내로 못 박고 있는 것이다.

이 일정을 역산하면 미 행정부가 비준동의안을 5월 초순에는 의회에 제출해야 8월 8일 이전 처리가 가능하다. 왜냐 하면 미 의회는 대선 일정에 맞춰 회기종료일을 9월 26일로 앞당기고 8월 9일부터는 여름 휴가를 위한 휴회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한국보다 앞서 서명한 컬럼비아, 파나마와의 FTA 비준안이 기다리고 있다. 설사 한국 국회가 이번에 비준안을 통과시키더라도 차기 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가 한-미 FTA 비준안을 동의하면 여기에 맞춰 법률개폐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정부가 집계한 법률 제-개정건수가 24개라고 하지만 세부 협정문안과 충돌하는 법률이 80개가 넘는 것으로 분석했다. 만약 한국 국회가 비준안을 동의하더라도 미국 의회가 상응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 나라의 법령체계는 한-미 FTA 틀에 갇히는 꼴이 되고 만다. 이 무슨 국가 망신인가? 국회의원이라면 국익을 따지고 국민경제-시회생활에 미칠 후유증과 부작용을 뜯어본 다음 조기비준을 떠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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