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개편안 협상이 결국 무산됐다. 대다수 언론이 이명박 당선인의 조각 명단 발표 소식을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지만, 핵심은 조각의 내용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협상이 결렬됐다는 것이다.

협상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고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원인과 책임 모두 이명박 정부에게 우선적으로 있다. 오늘자(19일)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아니 이런?” 하면서 믿을 수 없다는 분들을 위해 잠깐 조선일보의 사설을 인용한다.

조선 “야당 설득 얼마나 했나…정부조직개편안은 새 정부의 책임”

▲ 조선일보 2월19일자 사설.
“당선자는 ‘새 정부 출범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더 이상 조각 발표를 미룰 수 없었다’고 했다. 지금 사정이 그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급한 당선자가 야당 설득에 최선을 다했는지는 의문이다. 당선자가 ‘(민주당이 정부 개편안을 계속 거부하면) 총선에서 국민이 선택할 것’이라고 압박한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작은 정부’는 새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런 국민과의 약속을 담아 정부조직 개편안을 내놓았다. 이것이 잘되든 못되든 새 정부의 책임이지 민주당의 책임이 아니다.”

물론 조선은 사설에서 “국회 원내 제1당인 민주당이 새 정부의 출발을 이렇게까지 파행으로 만든다는 것은 결코 책임 있는 자세라고 할 수 없다”며 나름 ‘균형 잡힌’ 시각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야당설득 실패와 그에 따른 이명박 정부 책임론을 제기한 조선의 사설은 지금까지 조선이 보인 ‘노선’과는 좀 거리가 있다. 이유가 뭘까.

사실 이번 협상결렬과 관련해 대다수 언론이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대치 상황’을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르게 주목해야 할 것은 인수위원회와 한나라당간 엇박자다. 오늘자(19일) 아침신문 가운데 한국일보가 이 부분을 거론하고 있는데 기사 가운데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정당정치 실종에 대한 우려는 이명박 정부에도 계속된다?

▲ 한국일보 2월19일자 6면.
“18일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원내대표가 정부조직법 협상을 준비하고 있던 시간 대통령직 인수위에서는 조각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결국 이 문제 때문에 최종 협상은 테이블에 제대로 앉지도 못한 채 파장이 됐다 … 사단은 이날 저녁 2차 협상을 앞두고 벌어졌다. 오후 6시 양당 원내대표 협상이 예정돼 있었지만 오후 5시30분께 인수위에서 ‘오후 8시 조각 명단을 발표한다’는 사실이 흘러나온 것. 타협이냐 결렬이냐로 여야간에 흘렀던 숨막히는 긴장감은 일순간에 사라졌다 … 여야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인수위가 성급하게 조각 명단을 발표하는 바람에 모든 틀이 흐트러졌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한나라)당과의 조율이 안됐다는 이야기다.”

엄밀히 말해 이 당선인이 조각명단을 발표한 것은 그냥 발표한 것이 아니라 발표를 ‘강행’한 것이다. 그것도 여야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말이다. 이번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해 이 당선자 주변에선 원안고수파와 야당협상파들이 팽팽히 맞선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당선자는 최종적으로 원안사수를 주장한 소장파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사실 조선이 사설에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고 나선 것은 통합민주당에 대한 애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한나라당 내부를 겨냥한 성격이 짙다. 말이 좋아 원칙론이지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정치력 자체가 시험대에 서게 된 상황인데, 조선은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이 당선인 주변의 소장파들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같다. ‘강경노선’을 선택한 새 정부에 대한 우려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 소장파에 대한 견제구를 조선이 날리고 있는 셈인데, 이 같은 기류는 오늘자(19일) 3면 <"총선에서 결판내자" 타협 대신 강공>에서 일정하게 드러나 있다.

소장파·원칙론자들에 대한 조선의 우려

“이번에도 이 당선자는 기존 정치권과 자신의 차별화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이 당선자측은 ‘이명박다움’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이 당선자에 대해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 당선자가 상대가 있는 정치 협상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는 지적이 없지 않다. 이 당선자의 장관 발표 전에 열린 당 최고위원회에선 냉랭한 분위기 속에 ‘무슨 정치를 이렇게 하느냐’는 얘기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당선자가 팽팽했던 여야 협상을 강공으로 끊고 나온 것은 ‘여론은 내 편’이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조선 역시 이 부분을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론이라는 것은 늘 가변적이다. 특히 야당시절의 ‘정치’와 정부·여당 시절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와 잣대는 다르다. 이미 참여정부 시절 경험하지(?) 않았던가.

▲ 국민일보 2월19일자 6면.
오늘자(19일) 국민일보가 총선 D-50일을 남겨두고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의미심장하다. 물론 이 조사는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새 정부에 대한 견제론 또한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는 것 역시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명심하자. 여론은 늘 가변적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는 정말 ‘동물적인 감각’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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