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같은 업무를 하는데 정규직이 하면 안 죽고, 비정규직이 하면 죽는다"

LG헬로비전(구 CJ헬로비전)에서 설치·수리 업무 등을 담당하는 고객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들 노동자는 높은 노동강도와 저임금, 산업재해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문제의 근본원인에는 '위험의 외주화'가 지목되고 있다.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는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노동안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노동건강연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박광온·송옥주 의원, 정의당 노동본부와 이정미·추혜선 의원, 민중당 김종훈 의원, LG헬로비전 비정규직지부 등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지난해 12월 30일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 김도빈 씨가 작업 중 숨을 거두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긴급하게 실시됐다. 2019년에만 4명의 통신업체 소속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사망했는데, 이들의 죽음이 단순히 우연적 발생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가 진행되었다고 주최측은 설명했다.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는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노동안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사진=미디어스)

조사는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전국 34개 업체 중 17개 업체 현장 노동자 187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가 실시됐으며, 현장 노동자 4인에 대한 면접조사가 이뤄졌다. 비영리민간단체 노동건강연대가 조사를 담당했다.

임금부터 살펴보면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의 임금은 229.4만원이었다. 이는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17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 결과에서 나타난 평균임금 287만원에 못 미치는 수치로, 노동자 평균경력이 11년에 달하고 정기적인 주말근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고 노동건강연대는 설명했다.

주말근무의 경우 토요일에는 매주 혹은 격주로 근무한다는 응답이 95.2%로 나타났고, 일요일의 경우에도 40.6%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휴게시간이 1시간 미만인 노동자는 73.3%였으며 업무를 위한 차량 이동시간을 휴게시간에 포함하고 있었다.

현재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응답은 20.9%, 객관적으로 좋은 직업이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11.8%로 나타나 대부분의 노동자가 업무에 불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17년 제5차 근로환경조사에서 나타난 직업만족도가 76.9%과 비교해 저조한 응답이다. 노동자들은 잦은 업체교체 등으로 경력이 민반영된 낮은 임금과 높은 노동강도, 위험환경으로 인한 노동환경 저하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전체 응답노동자 중 77.5%는 업무로 인한 손상(36개월 기준)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2017 근로환경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손상경험률이 1.6%(12개월 기준)인 것과 대조적이다. 주된 손상경험은 배임/찔림/ 찍힘으로 인한 재해였고 부딪힘/넘어짐, 교통사고, 추락, 감전 등이 뒤를 이었다. 배임/찔림/ 찍힘은 건강보험공단이 매해 적발해 근로복지공단에 통보하는 산재은폐 중 가장 빈발하는 손상유형 중 하나다.

반면 높은 손상경험률과 비교해 산재보험을 신청했다는 응답은 2%에 그쳤다. 산재절차에 대한 불이해라는 응답은 37.8%에 달했다. 노동건강연대는 회사 등의 압박으로 인해 은폐되는 산재가 상당부분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추락, 감전, 미끄러짐 등의 재해 환경에 놓여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주당 평균 19.9회의 고소작업(높은 곳에서의 작업, 전봇대·옥상·난간·담벼락 등)을 수행하고 있으며, 강우·강설·폭염·강풍 등 자연재해 시에도 각각 73.6%, 63.1%, 74.9%, 55.6% 정도가 작업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추락위험이 높지만 관련 안전교육을 받은 비율은 42.2%였고, 안전벨트 없이 작업한다는 응답도 60.4%에 이르렀다.

작업위험과 건강에 대한 주관적 인식조사 결과 89.3%가 자신의 노동환경이 위험하다고 인식했다. 이 같은 인식 요인과 관련해서는 '전신주, 난간, 창밖 등 높은 곳에서 작업해야 한다'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안전을 고려해 일할 수 있을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응답이 두번째로 많았다. 건강상태와 노동의 관련성을 묻는 질문에는 61.5%가 관련이 있다고 답했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사항으로는 '정규직 전환'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업무당 처리시간 증가와 임금 인상이 뒤를 이었다. 면접조사에 임한 한 노동자는 "중간 착취가 없어지면 그 비용을 기사들에게 쓸 수 있고, 또 산업안전과 노동안전에도 원청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오니 더 신경을 쓸 것"이라고 말해 도급 등 외주가 아닌 직고용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상빈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에 대해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지속적으로 위험하게 만드는 근원인 원·하청 구조에서 발생하는 중간착취를 끊지 않는 이상, 적은 인원으로 바쁘게 움직이며 전봇대에 오르는 LG헬로비전 노동자들의 모습을 멈추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원청인 LG헬로비전과 LG에 책임을 촉구했다.

이만재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은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산재 사망사고의 구조와 원인을 원청의 외주업체 통제방식에서 찾았다. 성과지표와 수수료, 재계약 등을 통해 원청이 외주업체를 통제하면 고객센터의 노동환경이 악화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외주업체에서는 비용절감을 위한 불법 개인도급까지 성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간통신사업자, 정보통신공사업자의 개인도급, 재하도급은 불법이지만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일부 노동자들은 '개인도급', '근로자영자'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이 국장은 "직접고용이 외주업체 노동자의 안전문제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입증됐다. 바로 산재예방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직고용 전환을 강조했다. 이 국장은 딜라이브, SK브로드밴드 홈앤서비스 등 직고용 사례에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관리체계가 구축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SK브로드밴드 고객센터는 2013년 산재 사망사고만 5건에 이르렀지만 2017년 홈앤서비스 전환 이후 산재 사망사고가 1건으로 줄었다.

2014년 C&M(딜라이브 전신) 안전보건 실태조사에 참여했던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같은 업무를 하는데 정규직이 하면 안 죽고 비정규직이 하면 죽는, 비정규직이 작업을 수행하는 순간 위험해지는 일이 벌어진다"며 "노동자 안전보건에 미치는 악영향 중 가장 중요한 건 도급이라는 질서"고 지적했다. 이어 한 사무처장은 현장에서 안전보건에 대한 대대적 감시와 고소·고발을 통해 원청의 책임을 묻고, 부당하고 위험한 작업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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