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청와대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과정에서 빚어진 인권침해를 조사해 달라는 국민청원을 넘긴 것을 두고, 단순 실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 해명과는 달리 인권위 거부의사에도 청와대가 인권위 조사가 가능하다는 식으로 국민청원에 답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인권위는 16일 설명자료를 통해 지난 7일부터 13일 사이 청와대와 주고받은 내용을 공개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사진=연합뉴스)

이에 따르면 지난 7일 대통령 비서실은 인권위에 '국민청원 답변 요건 달성에 따른 답변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통령 비서실은 최영애 인권위원장이 직접 답변을 해달라는 협조를 요청했다.

국민청원 내용도 함께 첨부했다. 해당 국민청원은 조국 전 장관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를 인권위가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10월 15일 접수된 이 청원은 한 달간 22만 6434명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 공식 답변 요건을 채웠다.

협조공문을 받은 인권위는 8일 대통령 비서실에 회신 공문을 보내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인권위원장 직접 답변은 어렵고, 인권위 법상의 진정제기 요건을 갖추지 못해 조사도 불가하다는 내용의 회신이다.

인권위는 "진정제기 요건을 갖추어 행정상 이송(이첩)이 이루어져 조사개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진정으로 접수하여 조사가 가능함을 회신"했다며 진정이 익명이나 가명으로 제출된 경우에는 각하된다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 규정을 덧붙여 회신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통령 비서실은 9일 인권위에 해당 국민청원을 이첩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다시 보냈다. 이어 대통령 비서실은 9일자 공문이 착오로 송부된 것이므로 폐기를 요청한다는 공문을 13일 다시 보냈다. 청와대 해명에 따르면 대통령 비서실은 9일 공문보낸 후 그날 오후 인권위에 구두로 해당 공문은 착오라며 폐기를 요청했고, '폐기 요청을 공문으로 보내달라'는 인권위 입장에 13일 폐기 요청 공문을 보냈다. 인권위는 이 공문을 13일 정식 반송하고 14일 그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

13일 청와대 강정수 디지털소통센터장 '조국가족 인권침해 조사' 국민청원 답변 방송화면 갈무리

그러나 13일 청와대 강정수 디지털소통센터장은 국민청원 관련 브리핑에서 "청원 내용을 담아 대통령 비서실장 명의로 국가인권위에 공문을 송부했다"며 "인권위는 인권침해에 관한 사안으로 판단되면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전해왔다"고 말했다. 청와대 해명과 인권위 설명을 종합하면 다른 내용의 발언이다. 아울러 청와대가 15일 해명에서 애초 발송한 공문의 효력은 유효하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언론에서는 진보, 보수성향을 막론하고 청와대의 인권위 독립성 침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겨레는 16일 사설 <'조국 청원' 인권위 송부, 실수로 넘길 일 아니다>에서 "청와대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실수에 따른 헤프닝' 정도로 끝내고 싶어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마무리하기엔 파장이 크고, 미심쩍은 부분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번 사건은 청와대 비서실의 안이한 인식과 일 처리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일 수 있다"며 독립기구인 인권위에 조국 전 장관 수사의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공문을 보낸 점, 인권위를 통해 검찰 수사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읽힐 수 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17일 사설 <'조국 인권침해' 청원 보낸 靑, 인권위까지 거수기 만들려 하나>에서 "청와대는 그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청원에 대해선 처리 결과를 답변했지만 입법 사항이나 법원의 판결, 언론 문제 등과 관련해선 소관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답변을 피해왔다"며 "인권위는 청와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엄연한 독립기구이고, 그동안 관례에 비춰 봐도 청와대는 조국 전 장관 관련 청원을 인권위에 넘기지 않아야 했다"고 썼다.

인권운동사랑방 등 15개 인권단체는 15일 성명을 내어 "인권위는 청와대가 조사를 지시하는 하부 행정기관이 아니다"라며 "인권위에 국민 청원을 전달하는 공문이 발송된 자체만으로 인권위의 독립성이 침해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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