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남규] 꼭 1년 전인 2019년 1월, ‘동물권단체 케어(CARE)’의 박소연 대표가 케어에서 구조한 동물들 다수를 무분별하게 안락사시켜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당시 이 보도는 상당히 화제가 됐다.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던 시기였고, 케어는 대표적인 동물권 단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기견 ‘토리’를 입양한 단체로도 유명했다.

그런 단체에 이렇게 충격적인 의혹이 제기되자 후폭풍이 거셌다. 가장 일반적이었던 반응은 바로 ‘시민단체의 위선’에 대한 분노 또는 냉소였다. 동물을 위하는 척 거액의 후원금을 모아놓고는 결국 동물 보호는 뒷전이고 대표 잇속만 챙겼냐는 것. 안 그래도 시민단체들에 대한 시선이 썩 곱지만은 않았던 한국 사회였기에, 이 일은 한 단체를 향한 불신에 그치지 않고 시민단체 전반을 향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반응은 단지 냉소로 그쳐선 안 됐다. 적어도 ‘동물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박소연 대표의 충격적인 행각에 묻힌 사실들이 있었다. 그의 행각을 언론사에 제보한 것은 케어의 전현직 직원들이라는 사실이 첫 번째다. 우리는 이 간단한 사실로부터 케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동물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케어라는 단체, 나아가 시민단체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냉소하고 마는 것은 너무 쉬운 선택지다. 두 번째는 보도 이후 직원들이 ‘케어 대표 사퇴를 위한 직원연대’를 결성하고 치열하게 내부투쟁했다는 사실이다. 동물이 보호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랐다면, 케어가 다시 동물을 구조하는 진정성 있는 단체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싸우겠다는 직원들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필요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이 얘기를 다시 꺼내는 것은 최근 한국의 대표적 진보언론인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서 있었던 논란 때문이다. 지난 12월 경향신문에서는 사장이 기업의 협찬금을 대가로 비판성 기사를 삭제하는 사태가 발생해 크게 논란이 됐다(미디어스, "'독립언론' 경향신문서, 협찬금 대가로 기사 삭제 파문”). 사태가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경향신문 너마저’를 읊조리며 크게 실망했다. 경향신문조차 이렇다면 무슨 언론을 믿을 수 있겠냐고 한탄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을 세상에 알린 것이 바로 경향신문 기자들로 이루어진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향신문조차’ 이런 일이 생겼지만, ‘경향신문이기 때문에’ 이 일은 알려질 수 있었다.

지난 6일 보도되어(기자협회보, “한겨레 편집팀 성명 “편집국장의 독단적 편집권 거부””) 세상에 알려진 한겨레신문 편집팀의 편집국장 규탄 성명도 마찬가지다. 이 성명에서 편집팀 기자들은 새해 첫 지면의 레이아웃 편집 및 제목이 편집국장의 일방적 지시로 수정되었다는 점을 짚으며 ‘독선적 리더십’을 비판했다. 경향신문 사태에 이어 한겨레신문에서도 편집권과 관련한 비민주적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진보언론의 위선을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그러나 역시 이 일을 공론화한 것이 바로 한겨레신문 기자들 본인이라는 점을 놓치지 말자.

그러고 보면 오랫동안 위선이라는 단어는 진보진영을 향해서만 쓰여 왔다. 이른바 ‘입진보’라는 말은 ‘진보진영의 위선’을 함축하는 말로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다. 이 말을 풀어 쓰면 이런 뜻일 것이다.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척은 다 하더니, 너희도 똑같이 더러운 놈들이었어.” 동물권단체 케어, 경향신문, 그리고 한겨레신문에 대한 냉소들 역시 이 맥락에 있다.

그러나 위선에 반발하여 향한 길이 ‘똑같은 더러움’이어선 안 되는 것 아닐까. 어떤 대상이 위선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한들, 그 대상이 좇던 가치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며, 쉽게 냉소하고 내다버리기엔 우리 사회에 선한 가치를 가득 채우는 일은 너무나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척’에서 ‘척’을 떼어내는 것, 즉 ‘진정으로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것’을 좇는 일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그러한 가치를 좇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단체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 낫다고 믿는다. 시민단체와 진보언론에 진실하게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위선에 맞서 참된 정의로움을 이루기 위해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 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며 격려하는 것은 우리 시민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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