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대통령 취임식 ‘축하 특사단’인데, 내용을 보면 ‘FTA 압력 행사단’이다. 미국이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을 이명박 대통령 취임 경축 특사로 파견키로 하면서 공개한 특사단 리스트를 보니 그렇다.

오늘자(18일) 아침신문을 보면 미국의 경축 특사단에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와 웬디 커틀러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윌리엄 로데스 한미재계회의 미국측 회장, 한국계 프로 미식축구 선수 하인스 워드 등이 포함돼 있다.

이명박 당선인도 부담스러운 한미FTA 비준동의안

▲ 경향신문 2월18일자 2면.
이 중에서 관심을 모으는 인물은 미국 목축업자들의 단체인 육우목축협회 앤디 그로세타 회장이다. 미 쇠고기 수입문제가 한미FTA 조기비준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된 상황에서 그로세타 회장의 경축특사 자격 방문은, 말이 경축특사이지 한국에 와서 쇠고기시장 개방을 다시 한번 강하게 요청하거나 압박하려는 기회로 삼을 것이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다.

한미FTA 협상 타결을 이끌었던 웬디 커틀러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와 함께 오는 걸 보면 ‘경축특사’가 아니라 ‘압력행사단’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사실 이명박 당선인 입장에서 봐도 미국의 ‘압력행사단’이 반가울리 없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당선인이 17일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이명박 정부 국정운용 워크숍’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은 가능하면 2월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이 좋다”고 강조한 것도 4월 총선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농민과 FTA 반대 진영의 ‘표심’을 잃을 수 있는 ‘부담요인’을 새 정부 출범 전 털어내고 싶은”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오늘자(18일) 일부 언론들의 분석도 이런 배경을 전제로 한다.

‘FTA에 대한 미국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 강조한 동아 조선일보

물론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도 다급한 건 마찬가지다. 특정 이익단체의 대표를 ‘남의 나라’ 대통령 취임식에 포함시키면서까지 강행을 하려는 의도가 무엇이겠는가. ‘우리’ 입장에서는 괘씸한 일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 문제를 다루는 ‘국내’ 일부 언론의 시각이다. 위생과 안전문제를 두고 그동안 논란이 끊이질 않았던 미 쇠고기 수입을 압박하기 위해 미 육우목축협회 회장이 웬디 커틀러 무역대표부와 함께 ‘축하사절단’에 포함된 이 사안을 ‘남의 소식 전하듯’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 동아일보 2월18일자 6면.
동아일보가 대표적이다. 동아는 오늘자(18일) 6면 <미, 취임식특사단 ‘FTA 의지’ 반영>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국 협상대표였던 커틀러 대표보가 특사단에 포함된 것은 양국 의회의 비준동의 절차를 남겨둔 FTA의 임기 내 시행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면서 “그로세타 회장 당선인이 방한하는 것도 미국 내에서 FTA 비준의 전제조건으로 제기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해결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역시 2면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미 특사단장에 라이스>에서 “특히 특사단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미국측 협상 대표로 활동한 커틀러 대표보가 포함된 것은 FTA 체결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그로세타 회장 내정자가 포함된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해결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한미FTA 조속한 비준 강조해 온 ‘조중동’은 미 백악관 기관지?

이들 신문의 이 같은 태도가 놀라운 건 아니다. 이미 사설 등을 통해 국회가 한미FTA 조기비준을 해야만 국내 경제가 활성화 될 수 있다는 논지를 전개하며 계속해서 FTA조기 비준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웃긴다. 국회가 조기비준을 하더라도 미국의 정치일정과 대선 판세 등을 감안했을 때 ‘재협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조기비준 여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 조선일보 2월16일자 사설.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가 오늘자(18일) 노컷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잠깐 인용한다.

“미국에서는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다. 대선승리가 확실시되는 민주당의 유력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바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미 행정부가 비준동의안을 5월 초순에는 의회에 제출해야 8월 8일 이전 처리가 가능하다. 왜냐하면 미 의회는 대선 일정에 맞춰 회기종료일을 9월 26일로 앞당기고 8월 9일부터는 여름휴가를 위한 휴회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한국보다 앞서 서명한 콜럼비아, 파나마와의 FTA 비준안이 기다리고 있다. 설사 한국국회가 이번에 비준안을 통과시키더라도 차기 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가 한·미 FTA 비준안을 동의하면 여기에 맞춰 법률개폐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궁금하다. 이 같은 주장에 조중동이 ‘경제살리기’라는 답변 외에 어떤 다른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지. 사실 언론은 미국의 정치일정과 대선 판세 등을 감안해서 ‘종합적인 분석’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조중동과 같은 보수 언론은 총선 등을 염두에 두고 머뭇거리는 정치권을 향해 빨리 비준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미국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처럼 대외무역 협상하기 쉬운 나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한국 정부를 향해 ‘개방하라’고 하기 전에 ‘그 나라 유력 언론들’이 알아서 ‘개방하라’고 하면서 뛰고 설치기 때문이다. 이들 언론들은 미국의 이번 경축특사단을 정말로 열렬히 환영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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