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걸그룹 트와이스는 2015년 방송된 엠넷의 아이돌 오디션 방송 <식스틴>으로 탄생했다. 트와이스 이전에도 아이돌 그룹은 대세였지만, 신인 트와이스는 어딘가 반짝거리는 면모가 있었다. 아이돌 산업, 걸그룹의 지도는 트와이스의 등장 전후로 재편되었다.

10년대 중반 이후 아이돌 산업은 팬덤과 대중을 아우르는 산업에서 온전한 팬덤 산업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아이돌 그룹이 총체적 묶음 상품으로 판매되며, 그 안에서의 다양한 캐릭터와 그것들이 이루는 조화, 소위 ‘케미스트리’가 중요해졌다. 트와이스는 2015년 ‘모두가 센터인 걸그룹’으로 데뷔해 아이돌 그룹의 새로운 전형을 선보였다. 예를 들면, 멤버 저마다가 자신을 설명하는 소품과 별명, 속성을 장착했다. 모모는 족발을 뜯고 다녔고, 사나는 시바견이라 불렸고, 나연은 ‘맏내’라고 취급받았다. 그 외에도 중요한 특질은 많다. 다인조-다국적 걸그룹 포맷, ‘케미스트리’가 음악적으로 표현된 ‘컬러팝’, 브이 라이브와 팬 사인회를 적극 활용하는 팬덤형 걸그룹, 일본인 멤버 발탁을 통한 단절된 한류 재개. 여타 기획사들은 어떤 답안을 제시받았다. 트와이스가 걸어간 길을 내비게이션 삼은 걸그룹은 많다. 이렇듯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는 점에서, 나는 트와이스가 단순히 한 시대에 인기 있었던 걸그룹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기록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룹 트와이스가 5일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제34회 골든디스크 어워즈'에서 음반 부문 본상 수상자 중 하나로 선정됐다. 수상소감 밝히는 트와이스. [골든디스크 사무국 제공. 연합뉴스]

트와이스는 데뷔곡 ‘우아하게’로 인기를 얻은 후, 이듬해 ‘cheer up’으로 국민적 선풍을 일으켰다. 그 후 TT, Knock Knock, 라이키까지 다섯 곡의 대흥행은 가요사에서도 흔치 않은 역주였다. 이건 이변이 아니라 일기예보로 예고된 날씨가 찾아오는 일처럼 느껴졌다. 트와이스는 포스트 박진영 체제 JYP가 기획한 회심의 역작이다. 이전까지 JYP가 기획사의 메인 프로듀서 박진영이 경영을 맡는 음악 중심의 기획사로 돌아갔다면, 포스트 박진영 체제는 거기 더해 활동 노선의 세부를 짜고 팬덤을 규합하는 기획력으로 승부를 걸었다. 트와이스는 어떻게 걸그룹이 팬덤을 모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교과서 같은 사례였다. 흔히들 보이그룹은 팬덤에 강점이 있고 걸그룹은 대중성이 무기라고들 한다. 그 말은 예전에도 사실이었고 지금도 일정 부분 사실이다. 하지만 트와이스는 보이그룹 이상으로 앨범을 파는 대중형 가수로 성장했다.

현재 케이팝은 아이러니에 처해 있다. 대외적으론 케이팝이 세계화를 거쳐 보편적 문화가 되어가지만, 국내에선 아이돌 산업이 대중문화 내부의 서브컬처가 되며 특수 계층 문화가 되어간다. 아이돌 문화의 수요가 분립되며 코어 계층 중심의 팬덤 문화가 되었다는 말이다. 케이팝의 해외 진출은 국가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있지만, 국민 다수는 케이팝을 콘텐츠가 아니라 일본과 북미에서 수출 실적을 거뒀다는 '사회면 뉴스'로 접한다. 다시 말하면 아이돌 문화에서 대중성이 지워지고 있으며 대중성에 강점이 있는 걸그룹은 점점 생존하기 힘든 여건이 되어간다. 트와이스는 정확히 이 전환기에 나타나 팬덤과 대중성을 극한까지 이룬 ‘마지막 국민 걸그룹’이다.

음악이 곧 스포츠는 아니다. 메시가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냐 펠레가 최고냐를 두고 논쟁하듯 누가 최고인지 따지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저마다에겐 저마다가 사랑하는 가수가 있고 그 사람에겐 그이가 최고의 가수다. 다만, 세상이 케이팝이라 부르는 음악 산업의 궤적을 돌아보자면 트와이스가 달려온 지난 5년은 덧칠할 수 없이 각인돼 있다. 케이팝이 팬덤 산업으로 바뀌는 동시에 글로벌 산업으로 완성된 시대를, 트와이스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숨을 크게 뱉을 틈도 없이 가로질렀다. 어느덧 가요사의 한 챕터가 된 그들의 족적을 누군가는 이렇게 평가한다고 기록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이 글을 썼다.

트와이스 일본 투어 [JYP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보이그룹은 팬덤이고 걸그룹은 대중성이라고 말했다. 이런 구분은 어느 정도 흐려졌지만 여전히 어떤 각도에선 관철된다. 대중성이라 함은 많은 사람이 응시하는 자리에 있고,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아이돌 산업엔 남성 팬보다 여성 팬이 훨씬 많다. 보이그룹의 수익성이 걸그룹의 수익성을 압도하지만, 잘나가는 보이그룹을 운영하는 기획사들에게도 간판급 걸그룹이 중요하다면 이런 의미일 것 같다. 회사의 이미지와 대중적 평판을 꾸며주고 갈음해주는 상징적 자원이다. 뒤집으면, 대중성이 중요시될수록 평판에 대한 구속과 이미지 관리의 요구가 더 강해진다. 확실히 같은 논란이 있다 쳐도 걸그룹은 구설수에 좀 더 자주 노출되고 취약한 면이 있다. 이건 물론 아이돌 산업에 한정된 논리가 아니다.

지난 5년 동안 트와이스의 모든 활동을 지켜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트와이스의 활동 소식은 잠시의 텀도 없이 뉴스로 배달되었다. 언젠가 한 번은 리더 지효가 어느 방송에서 “휴가를 받는 것이 소원”이라는 말투로 말을 했던 걸 기억한다. 작년 한 해에는 계절마다 가십에 시달리기도 했다. 실은 불과 며칠 전에도 시달렸다. 이런 종류의 구설수는 관리하여야 한다는 당위, 관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 명제를 넘어선다. 아이돌은 사람이고,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100%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2010년대가 가고 2020년대가 왔다. 그들은 지난 시간을 자축하기에 충분한 길을 걸었다. 가십은 순간을 착취하지만, 역사는 길게 흐른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