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루스 안스라시스(Bacillus Anthracis),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늄(Clostridium Botulinum), 히스토플라스마 캡슐라툼(Histoplasma Capsulatum), 브루셀라 멜리텐시스(Brucella Melitensis), 클로스트리듐 퍼프리젠스(Clostridium Perfrigens)

이 생소한 이름의 생물학 물질들은 지난 1985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 기업들이 정부의 허가와 상원의 승인 아래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에 ‘공식적으로’ 판매한 것들이다. 이 가운데 바실루스 안스라시스(탄저균으로 고열과 호흡 곤란, 가슴 통증으로 시작해 패혈증을 유발하며 치사율이 높다)와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늄(보툴리누스균 독소의 박테리아원으로 구토, 변비, 갈증, 전반적 허약, 두통, 열, 현기증, 착시 현상, 동공 확대 등 치명적인 증상을 유발한다)은 훗날 이라크 생물학무기 프로그램의 초석이 되었다.

사담 후세인에게 무기를 판 것은 미 정부와 기업

▲ 부시 미 대통령과 사담 후세인.
그렇다면 2003년 3월19일, 바그다드 폭격과 함께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에서 이런 치명적인 물질로 만들어진 ‘대량 살상무기’를 미국은 찾아낼 수 있었던가. 아니. 조지 부시가 말한 대량 살상무기도, 콜린 파월이 “사실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한 ‘이동 세균 공장’도 발견되지 않았다. 위에 열거한 물질들은 1980년대에 사담 후세인이 ‘미국의 협조와 묵인 하에’ 쿠르드족을 학살하고 이란인들을 공격하는 데 사용됐을 뿐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 상무부는 화학물질과 생물학물질에서부터 재래식 무기 및 핵무기 체제에 필요한 컴퓨터와 설비에 이르기까지 15억 달러에 이르는 이중 사용 기술의 판매를 승인하였던 것이다. 같은 기간에 3억 800만 달러 상당의 비행기와 헬리콥터 및 그와 관련된 부품들이 이라크에 전달되었다.” 해당 기업들의 면면을 보니 휴렛 패커드(Hewlett-Packard), AT&T, 벡텔(Bechtel), 캐터필러(Caterpillar), 뒤퐁(DuPon), 코닥(Kodak), 휴즈 헬리콥터(Hughes Helicopter) 등 하나같이 세계적인 기업들이다.

이라크 국민들과 쿠르드인과 이란인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독가스로 학살한 악랄한 독재자 사담 후세인에게 미국 정부와 기업은 이런 식으로 무기를 팔았다! 그리고는 정작 ‘테러와의 전쟁’의 구실이었던 대량 살상무기를 찾을 수 없자 미국은 잽싸게 말을 바꿔버렸다. 이라크 인민의 해방을 위해 그곳에 갔노라고. 저자는 묻는다. 그렇다면 단 한 차례 폭격으로 부인과 자녀 여섯, 아버지, 어머니, 형제 둘을 잃은 라제크 알카젬 알 하파지의 절규는 대체 뭐란 말인가. “신이여, 미국에게 복수를!”

▲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 책표지.
전쟁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미국 정부가 고안한 고도의 ‘선전 프로그램’(Propaganda Program)은 전쟁 기간 내내 미국 언론과 국민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부시가 재선되기 직전에 이 책을 쓰고 영화 <화씨 9/11>을 만든 마이클 무어는 백악관을 ‘와퍼’(버거킹의 메뉴 중 하나로 터무니없는 거짓말, 허풍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부시가 지금도 여기에 있는 이유는 거짓말을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아주 자주 하면, 조만간 그 거짓말은 진실이 된다는 오랜 격언을 입증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거짓말로 포장된 미국의 이라크 침공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속절없이 무너지던 바로 그날, 전 세계가 TV를 통해 생방송으로 전해지는 참사 현장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그건 사고가 아닌 명백한 테러였다. 하지만, 21세기의 모두(冒頭)에 미국이 겪어야 할 가혹한 운명을 예고라도 하는듯한 이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보여준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저자는 신랄하게 비난한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또 다른 테러 위험을 피한다며 ‘에어포스 원’을 타고 쏜살같이 달아나 지하 벙커로 숨어들었고, 9월11일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특별위원회의 조사 활동은 미국 행정부와 공화당원들의 조직적인 방해를 받았으며, 미국이 테러의 배후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의 가족 24명은 별 다른 조치도 없이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미국 땅을 안전하게 빠져나갔다. 미국이 대 이라크 침공 명분으로 삼았던 핵무기와 대량 살상무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고, 실제로 오사마와 후세인은 불구대천의 원수 같은 관계였음도 훗날 밝혀졌다. 그런데도 수많은 거짓말로 포장된 이 부도덕한 침공은 대한민국과 같은 ‘강제되고 매수되고 협박받은 나라들의 동맹’ 속에서 끝내는 묵인되었다. 저자는 말한다. “정말로 나를 열받게 만드는 것은 이 사기꾼들이 9/11을 모든 것의 구실로 이용해왔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인류사의 비극이지만, 우리는 버젓이 전쟁을 기념하고 있다(‘전쟁기념관’이라는 이름에 담긴 저 군국주의의 냄새!). 힘의 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할 때, 패배주의와 무기력증이 판을 치게 된다. 힘 있는 다수에 대해 힘없는 소수가 설 자리는 더더욱 없어지고, 정당한 비판과 문제의식은 다수의 더 큰 고함소리에 묻혀버리고 만다.

▲ 러스 페인골드 상원의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인 마이클 무어는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서 ‘유토피아’의 희망을 발견하면서, 그런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행동에 나서 ‘진격’할 것을 독자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9월11일 사건 직후, 미국 상원이 국민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유례없는 자유를 정부에 부여한 이른바 애국법(USA PATRIOT Act of 2001)을 98대 1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을 때, 연단에 올라 홀로 이의를 제기한 상원의원이 있었다. 민주당 상원의원 러스 페인골드(Russ Feingold)였다.

힘 있는 다수 앞에서의 용기와 신념은 소중하다

“우리나라 역사상 시민적 자유가 전쟁이라는 합법적 비상사태 뒤로 물러앉은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다음 사건들은 지금까지도 우리 국민의 의식 속에 오점과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외국인 규제법과 보안법, 남북전쟁 당시의 인신보호영장제도의 중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일본계, 독일계 미국인들 및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의 구금, 매카시 시대에 있었던 이른바 공산주의 동조자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 베트남 전쟁 동안 벌어졌던 마틴 루터 킹 2세를 비롯한 반전 운동자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 등이 그것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과거의 편린들이 이번 사태의 서곡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힘 있는 다수 앞에서 용기와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 고결한 정신은 소중하다. 마이클 무어의 책은 어느 누리꾼이 지적한대로 ‘구문(舊聞)’이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애국심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교과서이기도 하다.

2001년 KBS에 기자로 입사했다. 2004년 8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KBS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포커스>를 제작 담당하면서 언론에 관심 갖게 되고, 2006년 11월부터 1년 동안 50회에 걸쳐 미디어오늘에 <김석의 영화읽기>를 연재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보도한 탐사저널리스트 시모어 허쉬의 저서 <밀라이 학살과 후유증에 관한 보고>를 번역 출간 준비 중이고, 현재 KBS 사회팀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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