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이른바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한 이들이 재심을 받게 됐다.

이들의 변호를 맡은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는 8일 KBS1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경찰들의 실적에 대한 압박감, 과학 기술이 발전되지 않은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수사가 진행됐던 사건들로 (범인으로 지목된 이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란 점에서 화성 8차 사건과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최인철(왼쪽), 장동익 씨 (사진=연합뉴스)

앞서 6일 부산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문관)는 강도살인 피의자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모범수로 21년 만에 풀려난 최인철, 장동익 씨의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사건기록 등을 검토한 결과 청구인들이 경찰 조사과정에서 폭행과 물고문 등을 당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봤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데이트하던 남녀가 괴한 2명의 습격을 받아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다. 범인을 찾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가 22개월 뒤 별건으로 경찰에 구속된 최인철, 장동익 씨가 이 사건의 범행을 자백하며 수사가 재개됐다. 두 사람은 검찰과 법원에서 경찰의 고문에 따른 허위 자백이라며 무죄를 주장해왔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시신으로 발견된 여성과 함께 있던 남성이라 보고 있다. 박 변호사는 “남성이 자백한 게 아니라 당시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2명의 괴한에 의해 습격당했다고 사건을 만들어버렸고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바람에 그 남성의 말대로 ‘낙동강 2인조 살인 사건’이 되버렸다”고 했다.

이어 “당시에 살인사건과 같은 강력사건·미제사건의 범인을 검거한 경찰은 특진시켜주는 제도가 있었고 당시 특진에 눈이 먼 사람들이 무고한 시민 두 사람을 잡아다가 물 고문을 해 고문을 견디다 못해 이들이 자백하게 된 것”이라며 “자백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건”이라고 말했다.

당시 사망한 여성과 같이 있던 남성, 즉 용의자로 지목된 이는 1994년 사망했다. 박 변호사는 “(억울하게 누명 쓴 이들) 가족들 입장에서는 그 남자가 진실을 얘기해주기를 바래서 재판 도중, 판결이 확정된 후에도 진실을 이야기해달라고 찾아가 사정사정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했다.

최 씨와 장 씨는 과거 검찰에 자신들의 무고함과 함께 경찰에서 물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 수사관은 이를 무시했다. 법원 재판 과정에서는 사하경찰서 유치장 동료 3명이 이들이 물고문을 당한 것 같다고 증언했지만 이또한 무시됐다.

재판부가 30년이 지난 사건을 두고 재심을 인정하게 된 이유를 박준영 변호사는 인권 수사와 재판에 대한 인식, 재판부의 인식이 바뀌어서라고 말했다. 물고문이 있었다고 30년 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온 부분과 동료 재소자들의 증언도 한몫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증언했던 동료 재소자들과 당시 사하경찰서에서 유사하게 물고문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진술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볼 수 있다는 치과 전문의, 정형외과 전문의의 진술이 겹쳐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 고문을 주도했던 경찰들은 다 살아있다”며 “당시 특진했던 경찰은 뇌출혈 때문에 법정에 증언을 못 했고 거의 퇴직해 1명만 남아있다”고 말했다. 경찰들은 여전히 고문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인정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당시 재판 과정에서 무죄가 나올 줄 알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막내 형사 같은 경우는 고참들이 알아서 해서 잘 모른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이도 있었다”고 밝혔다.

사건 피해자들의 30년 세월은 어떻게 보상받냐는 김경래 기자의 질문에 박 변호사는 “잃어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이분들의 가족, 고인이 되신 부모님들의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냐”며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위로가 안 된다. 잔인한 고통은 보상이 안 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사건 피해자들이 재심을 받게 되자 과거 재판 과정에서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의 역할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92년~1993년 항소심 재판 담당 변호사다. 박 변호사는 “(문 대통령이) 최선을 다해 변호했던 부분이기에 그게 전제가 돼서 재심 과정에서 여러 재심 사유로 주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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