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지난 6일 오전 경남 합천군에서 발생한 연쇄 차량 추돌 사고 소식을 보도한 기사 제목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용어가 있다. '블랙아이스'(Black Ice)다.

‘블랙아이스’는 도로 표면에 생긴 얇은 빙판으로, 검은 아스팔트색이 그대로 비춰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낮 동안 내린 눈이나 비가 아스팔트 도로 틈새에 스며들었다가 도로 위에 얇게 얼어붙어 겨울철 교통사고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연쇄 추돌 사고가 발생한 6일 경찰이 이날 오전 내린 비가 얼어붙어 도로에 블랙 아이스가 생기면서 차량이 잇따라 미끄러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히자 대다수 언론이 블랙아이스로 제목을 뽑아 보도했다. “또 ‘블랙아이스’?…합천 국도 39대 추돌·단독사고 8명 부상”(뉴스1), “또 블랙아이스 사고…합천 국도 41대 추돌사고”(조선일보), “‘어,어’하는 순간…새벽비 블랙아이스에 41대 당했다”(SBS) 등이다.

네이버 뉴스면에 블랙아이스를 검색한 결과

외래어라는 주장도 있지만 2014년 5월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에서는 ‘노면살얼음’, ‘살얼음’으로 순화한 바 있다.

해당 용어는 도로가 얼어 교통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한 지난해 11월부터 방송 기사 제목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블랙 아이스’에 쾅!쾅!…빙판길 교통 사고 잇따라 (KBS, 2019.11.15.), 차량 20대가 ‘쿵쿵쿵’…도로 위 ‘블랙아이스’주의보 (채널A, 2019.11.15.), 사람 있어도 “멈출 수 없다”…공포의 ‘블랙아이스’ (MBC, 2019.11.29.), 충격의 사고 영상...‘블랙아이스’, 이렇게 위험합니다 (YTN, 2019.11.30.) 등이다.

강형철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는 자신의 SNS에 “최근 블랙아이스라는 괴래어(괴상한 외래어) 장사가 심하다”며 “시민의 언어를 언론이 수용하는 것은 좋으나, 언론이 ‘괴래어’를 먼저 만들어 언어를 끌고 가지는 말자는 것”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블랙아이스가 도로 위 살얼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데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도로위 살얼음’으로도 충분히 경고가 된다”며 “언어표현력이 좋은 우리말을 두고 제한적인 남의 말 쓰는 게, 그리고 언론이 이에 앞장서는 게 답답했다”고 밝혔다.

박건식 MBC PD는 7일 자신의 SNS에 “어제 오전 6시 반쯤 경남 합천에서 차량 40여대가 연쇄 추돌한 현상을 두고 대부분의 언론은 ‘블랙아이스’ 현상이라고 보도했다”며 “MBC와 KBS는 제목부터 ‘살얼음’이라고 쓰고 있고, ‘어는 비’란 용어를 사용했다”고 적었다.

방송뉴스의 불필요한 외국어 사용은 꾸준히 지적돼 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언어특별위원회는 지난해 7월 발표한 ‘재난 방송의 언어 사용 실태’에서 ‘리포트’, ‘매뉴얼’, ‘스팟’, ‘컨트롤’, ‘라이선스’, ‘베테랑’ 등 외국어 사용을 지적했다. 불필요한 외래어와 외국어 표현을 두고 “외래어·외국어의 잦은 사용은 시청자에게도 은연중에 해당 언어 사용을 부추길 수 있다”며 “국어 순화 표현을 쓰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했다.

블랙아이스 외에도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패스트트랙’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권고했다. 방통심의위는 지난해 5월 발표한 ‘방송언어의 보편성과 공공성’ 자료에서 “신속처리안건 대신, 정치권의 용어를 방송에서 그대로 받아 ‘패스트트랙’이라는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방송언어 가이드라인에는 보도·시사 장르를 두고 “사실관계와 의미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어휘와 표현을 사용해야” “시청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어려운 단어보다는 가급적 쉬운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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