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는 올 한해 ‘미디어 정책이슈’, ‘미디어 사건’, ‘나쁜 보도’ 등을 통해 2019년을 담아보려고 했다. 놓친 것도 있으며 다 담아낼 수 어렵다는 점 양해 바란다. 세밑 고위공직자수사처법, 공직자선거법 등 개혁 법안 처리는 올 한해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힐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 영역으로 좁혀보면 지형 자체가 변화하고 있고 여기에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사안, 사건은 여전했다는 판단이다.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 불거진 가장 큰 사건으로 조국 사태를 꼽은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미디어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를 ‘미디어 사건’에서만 정리했다.

◆ 관음증 부추긴 '정준영·승리 카톡방' 언론보도

올해 초 '클럽 버닝썬 사건' 관련 '정준영·승리 카톡방' 언론보도는 문제의 본질과 해결책을 드러내기보다는 불법 촬영 2차 피해를 부추기고, 선정적 내용 보도에 치중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SBS가 정준영의 카카오톡 대화를 공개한 다음날 채널A는 '단독'보도라며 '정준영 몰카 피해자에 걸그룹 1명 포함'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SBS가 동영상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정준영 카톡방 대화 내용을 추가 공개하자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은 관련 보도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지난 4월 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정준영·승리 카톡방' 언론보도에 대한 문제점 인식을 조사한 결과 '시민의 알권리 충족보단 사회적 관음증을 부추기는 보도가 문제'라는 응답이 81.8%로 집계됐다. 이밖에도 '문제에 대한 본질적 해결보다는 개인 차원의 비리 들추기에 국한된 보도' 85.8%, '불법 촬영물 속 등장인물에 대한 추측 보도로 인한 2차 피해' 83.6%, '피해자인 여성의 시각이 반영되지 않은 보도' 80.5%, '뉴스가치, 중요성 등과 상관없이 쏟아지는 지나친 보도량' 77.4%, '사건의 본질과 상관없이 연예인의 사생활을 들추기에 급급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 76.6% 등에 동의하는 응답이 나왔다.

가수 정준영, 승리 (사진=연합뉴스)

◆ 재난주관방송사 KBS, 강원산불보도 부실로 뭇매

4월 강원도 고성일대 산불 발생 당시 국가 재난주관방송사 KBS는 시점, 형식, 내용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재난보도에 실패했다는 사회적 비판에 직면했다. 특보 체제 전환은 뒤늦었고, 현지 피해자들을 위한 피해상황·대피요령 등의 정보없이 산불 '그림'만을 나열했고, 강릉에 있던 기자가 고성에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재난 취약계층을 위한 수어방송과 외국어방송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KBS 재난보도 시스템의 전반적인 개편을 주문했다.

이후 KBS는 재난방송 개선TF 구성, 관련 메뉴얼 전면 개편, 자체 훈련 실시, 행정안전부 상황실 간 핫라인 구축 등의 개선안을 내놨다. 태풍 '링링', 아프리카 돼지열병 등 이어진 자연·사회적 재난보도에 있어 개선안은 효과를 발휘했다. 행안부, 지자체, 제보 등을 통해 피해상황과 행동요령을 제공하고, 청각장애인·외국인을 위한 자막, 영어자막 등의 방송을 실시했다. 특보 편성 시간도 크게 늘었다.

(사진=KBS 강원산불 재난방송 화면 갈무리)

◆ 조선일보 '공정성 잃은 지상파' 기획 연재, 공정성 논란 일어

조선일보는 지난 2월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책임연구원 :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보고서를 기반으로 3일 간 '공정성 잃은 지상파' 시리즈를 내보냈다. 박근혜-문재인 정부 시기를 분석기간으로 두고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의 공정성 훼손 여부를 평가, 문재인 정부 이후 시사 프로그램의 정부 변호적 성격이 이전정부에 비해 커졌다는 결론을 내놨다.

이후 해당 보도와 연구 내용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일었다. '정부를 비판하지 않으면 정치권력에 의해 언론 공정성이 훼손된 것'이라는 식의 분석이 주를 이루면서 지상파는 물론 학계에서조차 연구방법과 결론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해당 연구의 발주처가 뒤늦게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라는 게 밝혀지면서 연구의 독립성도 크게 의심받았다. 조선일보와 윤석민 교수는 보고서의 발주처를 밝히지 않다가 '미디어오늘'이 발주처 취재에 들어가자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의 연구비 지원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 설리·구하라 자살 보도

여성 연예인의 죽음을 둘러싼 자극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설리(본명 최진리)씨와 구하라 씨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일부 언론들은 생전에 구설에 올랐던 사진들과 논란을 부각한 기사를 쏟아냈다. 기자들은 최 씨의 자택에 몰려가 시신 운구 모습을 보도했고, 빈소와 유서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최 씨 유족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도해 누리꾼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들의 죽음은 언론에 또 다른 메시지를 던졌다. 생전 고인이 휘말렸던 온라인상의 논란을 그대로 중계하는 보도와 악성 댓글을 모아 재가공한 보도 등이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설리 죽음을 조명하며 악성 댓글을 다는 악플러들과 이를 기사화해 클릭 장사하는 언론의 행태를 비판했다.

(사진=연합뉴스TV)

◆ TV조선·조선일보, "민주노총 때문에 국대떡볶이 폐업"

조선일보와 TV조선의 민주노총을 비난하는 기사는 올해에도 이어졌다. 특히 ‘국대떡볶이 폐점’기사는 한쪽의 일방적인 입장만 받아 쓴 기사였다. 조선일보는 지난 10월 서울대치과병원에 위치한 외식 프랜차이즈 국대떡볶이가 폐점 수순을 밟고 있다며 “폐점 배경에 민주노총의 압박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TV조선은 <보도본부 핫라인>에서 국대떡볶이 폐점 배경에는 김상현 국대떡볶이 대표의 문재인 대통령,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공개 비판이 있었다고 해설했다. 김 대표의 공개비판에 친여권 지지자들과 민주노총이 병원측에 항의했고, 결국 계약 해지 통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보도는 사실이 아니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병원과 노조가 국대떡볶이의 배달 활동으로 인해 감염을 우려해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 ‘기사 거래’로 삭제된 경향신문 기사

경향신문에서 협찬금을 대가로 기사를 삭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12월 13일 자 경향신문의 SPC 관련 기사다. 중국 법원의 ‘파리바게뜨’ 상표 등록 무효 판결과 관련된 기사 내용으로 보도 이후 파리바게뜨가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어 모그룹 SPC가 나선 것이다. SPC그룹은 경향신문에 해당 기사를 삭제하는 조건으로 5억 원의 금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2일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는 ‘협찬금 지급’ 약속을 받고 기사를 삭제한 사장과 편집국장, 광고국장이 사퇴하기로 했다고 독자에게 알렸다. 사과문도 온라인판 기사로 홈페이지에 올렸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사원주주회사인 경향신문마저 자본 권력 앞에 무너지고 있다며 ‘기사 거래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 사옥 (사진=연합뉴스)

◆ KNN, 인터뷰 조작으로 지상파 최초 ‘과징금 제재’

미디어오늘 보도로 김 모 KNN 기자가 수차례에 걸쳐 인터뷰 조작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기자는 리포트 작성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음성 변조해 관계자의 말로 처리했다. KNN은 인터뷰 조작을 인지한 후 김 기자에게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인터뷰 조작 사건 당시 데스크였던 박철훈 취재 부장은 이후 보도국장으로 영전했다. KNN은 관련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고, 미디어오늘이 취재를 시작하자 사과 방송을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7월 KNN에 법정제재 과징금 3000만 원 징계를 내렸다. 과징금 징계는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로, 지상파 방송사가 과징금 징계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허미숙 부위원장은 “인터뷰 조작 문제를 넘어선 시청자를 기만한 것이다. 보도의 신뢰성을 무너뜨린 사건이었다”고 지적했다. 김재영 위원은 “기자 개인의 일탈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방송사 전체 시스템 문제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 MBN·연합뉴스TV, 연이은 그래픽사고 일으켜

2019년 4월 방송사의 그래픽사고가 다수 발생했다. MBN은 4월 11일 한미정상회담을 전망하는 방송을 하면서 김정숙 여사를 '김정은 여사'로 표기했다. MBN은 같은 달 21일 문재인 대통령 관련 소식을 하단 자막으로 전하면서 ‘북 대통령’이라 표기했다. ‘북 대통령’이라는 자막은 9차례 방송됐다. 사고 다음 날 MBN은 보도국장에게 정직 3개월, 담당 데스크와 기자에게 감봉 3개월 징계를 내렸다.

연합뉴스TV는 4월 3일 SK·현대가 등 재벌 3세들의 마약 실태를 보도하면서 남성 상반신 실루엣 사진을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연합뉴스TV는 일간베스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할 때 쓰는 사진을 사용했다. 4월 10일 연합뉴스TV는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소식을 보도했다. 연합뉴스TV는 앵커백 화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사진 앞에 북한 인공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배치했다. 연합뉴스TV는 보도국장과 뉴스총괄부장을 보직 해임했다.

문재인 대통령 앞에 북한 인공기를 삽입한 연합뉴스TV (사진=연합뉴스TV 방송화면 갈무리)

◆ 지역MBC의 라디오 뉴스 ‘재탕’

4월 6일 충북MBC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19시 뉴스’를 '재탕'했다. 이날 충북MBC가 보도한 7개 뉴스 중 날씨 정보를 제외한 6개 뉴스는 전날 방송된 내용이었다. 주말 라디오 당직이었던 이 모 부장이 저녁 방송을 ‘깜빡’ 잊어 방송 준비를 하지 않아 발생한 사건이었다. 충북MBC는 방통심의위가 문제 지적을 하기 전까지 방송사고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방통심의위는 “충북MBC가 전파를 낭비하고 있다”면서 법정제재 관계자 징계 결정을 내렸다.

춘천MBC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10월 17일 춘천MBC 라디오 정오 뉴스에서 이틀 연속 같은 내용이 방송됐다. 청취자가 방송사고 당일 시청자게시판에 이를 지적하는 글을 올렸지만 사과 방송은 없었다. 10월 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춘천MBC지부가 후속 대책이 없음을 지적하는 성명을 내자, 춘천MBC는 다음날인 24일 사과 방송을 진행했다.

노승찬 춘천MBC지부장은 “방송사고를 알았다면 정정 보도나 사과 방송을 빨리해야 하는데 일주일이 지나 문제가 불거지자 대처한 건 사장과 보도국장이 사고를 덮으려 했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춘천MBC 보도국장은 “앞서 이런 방송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어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다가 사과 방송이 늦어진 것으로 고의로 덮으려고 한 건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 중앙일보 뉴욕 특파원 칼럼 표절 논란

지난 4월 중앙일보 뉴욕특파원이 월스트리트 사설을 표절한 사실이 드러났다. 4월 12일 심재우 뉴욕특파원이 작성한 <뉴욕의 최저임금 인상 그 후> 칼럼 내용이 월스트리트저널 사설과 대동소이했다. 중앙일보 칼럼은 월스트리트저널 사설에 나온 사례와 통계가 같았다. 감동근 아주대 교수는 칼럼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중앙일보는 4월 16일 지면을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중앙일보는 “특파원 칼럼이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외신의 상당 부분을 인용해 표절이라는 지적이 SNS를 통해 제기됐다. 자체 조사 결과 이 같은 지적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심 특파원에 감봉 징계를 내렸다. 이후 심 특파원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중앙일보 '뉴욕의 최저임금 인상 그 후' 칼럼 (사진=중앙일보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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