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세계 곡물가격이 급등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농축산물 수입액이 133억2433만 달러로 전년보다 22.6%나 증가했다. 물량 증가율 5.1%와 견줘보면 가격이 크게 뛰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무역적자가 109억2084만 달러로 크게 늘어났다. 무역적자는 2005년 76억8633만달러, 2006년 86억8538만 달러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다 작년에 급증한 것이다.

▲ 국민일보 1월 29일 사진기사
가격 급등은 일시적이 아닌 구조적 현상에 따른 것이다. 기상이변에 따라 가뭄과 홍수가 빈발하면서 흉작이 속출하고 있다. 환경오염, 사막화, 물 부족도 농업생산을 위협하고 있다. 개도국의 산업화·도시화에 따라 농지가 빠르게 잠식되고 있다. 세계인구의 40%를 차지한 중국, 인도에서 급속한 이농현상이 일어나 농업생산이 줄고 있다. 반면에 소득증가에 따라 육류소비가 증가하면서 곡물사료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다 유가 급등에 따라 곡물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바이오 연료의 생산이 급증하고 있다. 화석연료 배출가스를 억제하기 위한 대체에너지로서 바이오연료의 수요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미국에서만 2007∼2008년 바이오연료 생산에 투입되는 옥수수가 8000만톤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의 미곡생산량이 연간 500만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규모가 얼마나 막대한지 짐작된다.

이에 따라 식량수출국들이 물량확보와 물가안정을 위해 수출 억제에 나섰다. 중국은 작년말 84개 곡물에 대해 수출부가가치세 환급을 폐지했다. 금년 들어서는 농산물과 그 가공품에 대해 수출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지난해 베트남이 쌀 수출을 중단했고 인도가 쌀과 밀을 수출금지했다. 러시아도 이에 가세해 밀과 보리에 수출관세를 부과했다. 아르헨티나도 밀, 옥수수, 콩에 대한 수출관세를 인상했다. 수출 억제에 따라 올해는 작황과 상관없이 곡물가가 크게 오를 전망이다.

최근 몇 년 새 세계적 식량위기를 경고하는 소리가 부쩍 늘고 있다. 올해도 기상이변이 이어진다면 식량무기화는 현실의 문제로 떠오른다. 그 때는 돈이 있다고 마음대로 살 수 없다. 1980년 쌀 흉작으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수출중단, 수출관세는 그 전조로 볼 수 있다. 식량은 전략물자로서 가치를 지녔기에 이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 중앙일보 1월 22일자
한국은 식량자급률이 25%선에 불과하다. 해마다 1500톤에 가까운 곡물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식량수입국이다. 그런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농촌진흥청을 없애고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만든다고 한다. 공무원 조직으로는 시장수요를 따라 갈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런 단순논리로는 설득력이 없다. 농업·농촌이 지닌 소중한 가치와 세계시장의 변화를 모르니 이런 졸속조치가 나오는 것이다.

농업진흥청이 아닌 농촌진흥청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농민은 340만명에 불과하나 농촌지역에는 1000만명의 국민이 농업의 전후방 산업에 종사한다. 농업은 단순한 생산을 넘어 홍수를 조절하고 지하수를 보존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대기를 정화하고 토양유실을 방지하며 생태계를 보존한다. 전통문화 계승 또한 중요한 기능이다. 농업·농촌은 산업논리, 시장논리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농촌진흥청은 1962년에 설립되어 1970년대 쌀 자급을 이룩하는 녹색혁명을 달성했다. 1980년대에는 겨울식탁에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올리는 백색혁명도 이룩했다. 농촌진흥청은 기술개발에 그치지 않고 농민에게 지속적인 기술보급·지도를 맡고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연구기관은 수행할 수 없는 업무이다. 경작 위주의 농업(agriculture)에서 벗어나 생산·가공·저장·유통을 아우르는 농경영(agribusiness)로 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농촌진흥청을 강화해야 한다. 세계식량환경의 변화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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