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가수 강다니엘 측은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인터넷 포털사이트 디시인사이드 ‘프로듀스 101 시즌 2 갤러리’의 폐쇄를 요구하는 신청을 했다. 해당 게시판에는 ‘수백만 개의 게시물이 공개적으로 게시돼 있는데 상당수 게시물이 강다니엘을 비방하고 사회적 평가를 심각하게 저해’한다는 것이다. 디시인사이드 측은 17일 입장문을 발표해 강경한 어조로 요청을 거절했다. 갤러리 폐쇄 요청은 법적 근거가 없고 문제가 있는 게시물은 모니터링을 통해 "24시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가수 강다니엘 [연합뉴스 자료사진]

디시 인사이드의 입장문은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헌법에 위배되는 요청을 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는 문장으로 본론을 시작한다. 일단 이 말은 틀렸다. 헌법에 위배되는 요청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규정된 헌법 21조 4항에는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단서 조항이 있다. 지금 말하려는 건 강다니엘 측의 폐쇄 신청을 지지한다 여부가 아니다. 비록 단서 조항이 헌법에 명문화돼 있지만 현행 명예훼손죄 같은 경우 표현을 형사처벌한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저해한다는 지적이 익히 존재한다. 요는 이 상황에서 헌법위배까지 들먹이는 건 부정확한 과장이며 디시인사이드 측이 책임감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표현의 자유가 가치 있는 표현을 따져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며, 원론적으로 그 하한선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악플'까지 포함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이런 맥락으로 단순하게 거론돼서도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디시인사이드는 월간 방문자 60만 명에 이르는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커뮤니티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틀어 가장 규제가 느슨하며 관리가 방임된 편이다. 가입을 하지 않고 아이피 주소만 걸고 글을 쓸 수 있어 작성자에게 책임감을 일으키기 힘들고 그러니 활동 규제를 가할 수도 없다. 디시인사이드에는 메이저 갤러리와 마이너 갤러리가 있는데, 커뮤니티 운영진이 직접 관리하는 건 메이저 갤러리고 마이너 갤러리는 유저들에게 관리를 일임하는 게시판이다. 이를테면 게시판 관리 책임을 유저들에게 상당 부분 하청 하는 것이다. 마이너 갤러리는 매니저들 성향에 따라 자의적으로 폐쇄적으로 운영되기 쉽고, 메이저 갤러리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저들이 쓰는 악성 게시물로 황폐화되기 쉬운 구조다.

디시인사이드 측이 입장문에서 밝혔듯 디시인사이드에는 무려 3만 개에 달하는 갤러리가 있다. 커뮤니티 관리를 위해 몇 명의 인력이 어떤 식으로 고용되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많은 게시판에서 쏟아지는 게시물이 과연 제대로 관리되고 있을까? 그렇다면 거기서 빚어지는 악성 게시물로 게시판 폐쇄까지 신청되는 상황이 나왔을까? 자신의 논리 속에 드러나는 모순을 진지하게 자문해 봤다면 “개탄스럽”다, “특정 갤러리를 막는다고 안티팬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요청은 오히려 안티팬을 더욱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투의 대응은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 법원에 게시판 폐쇄 신청이 들어간 것에 운영진 나름의 주견이 있을 수 있지만, 연예인 악성 게시물이 사회 문제임을 주지하고 있다면, 최소한 피해자의 심경에 공감하며 해결방안 모색을 열어두는 정도의 태도는 취할 수 있지 않았을까? “광화문에 시위가 많다고 광화문을 없애 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악플을 시위와 등치하는 대목에선 이 입장문의 논리체계가 미스터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디시인사이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악성 게시물은 질과 양상이 다를망정, 인터넷 사이트 대부분에서 번식한다. 디시보다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갖춘 곳이라도 마냥 다르진 않다. 인터넷 커뮤니티 전체를 아우르는 맹점이 있다면, 유저 간 분쟁이나 분란을 다스리며 게시판 자체를 유지하는 목적으로는 규제가 명문화돼있고 관리가 이루어지지만, 커뮤니티 외부의 특정인을 향한 악성 게시물, 사회적 편견을 재생산하는 게시물에 대해선 관리 지침이 없거나 간소화돼있다는 점이다. 특히 성별, 신체장애, 성적 지향, 피부색 등에 따른 사회적 소수자 혐오 표현이 분류되어 규제되는 경우는 정말로 드문 것 같다. 이건 포털사이트와 SNS를 합한 한국 인터넷 사회의 맹점이다.

표현의 자유와 그로 인해 침해될 수 있는 개인의 법익 및 공익을 동시에 확보하는 건 쉽지 않은 미션이다. 개략적 방향을 제안하자면 악성 게시물 규제를 국가가 아니라 사적 차원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명예훼손죄 등으로 처벌하는 대신, 각급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율적 규제를 지금보다 강화하고 정부가 관리 책임을 묻는다. 발언에 따르는 신변의 부담은 줄이고, 문제가 명백한 발언을 음소거하거나 해당 사이트에서 발언자의 발언권을 박탈하며 자성할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가령 디시인사이드 측은 “특정 갤러리를 막는다고 하여 안티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악성 게시물을 빚는 환경을 하나하나 자정하는 건 의미가 있고 실익도 있다.

온라인은 사회를 이루는 엄연한 토대가 되었다. 커뮤니티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싶다면 사회적 책임도 져야 한다. 온라인 문화를 실행하는 시민들도 각성할 필요가 있다. 각자의 입장과 성향, 소속된 아이돌 팬덤을 가로질러 악성 게시물의 보편성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남을 때릴 때는 신나게 스포츠로 즐기다가, 내가 혹은 '우리 편'이 악플에 맞으면 ‘야만의 폭력’으로 성토해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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