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지난 몇 주 사이에 방대한 취재와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쓰인 르포르타주 두 권을 읽었다. <관저의 100시간>(2015, 후마니타스)과 <제인스빌 이야기>(2019, 세종서적)가 그것인데, 앞의 책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 당시 일본 총리 관저의 대응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치열하게 취재했고, 뒤의 책은 GM의 공장 철수로 대량 실직이 발생한 도시 제인스빌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를 담담하게 취재한 책이다.

두 책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현직 저널리스트가 썼다는 점, 그리고 책 후기에서 그들이 속한 언론사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저의 100시간>을 쓴 기무라 히데아키는 몇 회짜리 연재로 그치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르포를 연재할 수 있도록 지면을 할애한 아사히신문사의 결정을 언급하면서, 다수의 정치인‧관료를 취재하는 작업이 “조직력과 자금력을 갖춘 ‘주요 언론’이기에 비로소 가능한 작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제인스빌 이야기>를 쓴 에이미 골드스타인도 마찬가지인데, “<워싱턴포스트>의 뒷받침이 없었더라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이 작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휴직기간을 늘려주고 안식년도 확보해주었다는 것.

이러한 대목을 읽다보면 자연히 한국 언론사에서도 이런 작업이 가능할 것인지를 묻게 된다. 한때 유행처럼 만들어졌던 언론사 내 ‘탐사보도팀’들이 하나둘 빠르게 소멸한 사실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쉽지 않아 보인다. 미디어오늘의 2013년 기사(<어느덧 전멸한 '탐사보도' 부활할 수 있을까>)에서 안수찬 기자(전 한겨레 탐사보도팀장)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는데, 시간에 쫓기는 일간지 특성상 개별 기자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주지 못한다는 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기사를 뽑아도 상업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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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르타주라고 상황이 다를까? <제인스빌 이야기>를 번역한 한겨레신문의 이세영 기자는 이미 역자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한 가지 사안에 깊이 천착하면서 사건의 전후와 맥락, 인과관계를 재구성해 장편소설 분량의 산문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건 호흡 짧은 기사문 작성에 특화된 일간지 기자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 축복이 분명했다.” 생산성과 상업성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르포르타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간과 비용이 만만찮게 투입되고, 르포르타주의 특성상 파격적인 특종 대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긴 글로 담담하게 담아내는데, 그런 기사는 오늘날 독자들에게 잘 팔리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 구독자 수가 눈에 보이게 줄어들고 있는 언론사들이 ‘팔리는 기사’가 아니라 ‘좋은 기사’를 쓰기로 결정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팔리는 기사’는 무엇인가. 국민감정에 호소하고(일제 불매운동),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누군가를 증오하도록 부추기고, 사회적 소수자를 무방비로 내던져 논쟁을 만들고, 주목을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맥락을 왜곡해 침소봉대하는 기사들이다. 여기에 나아가 정치적 성향에 호소하는 기사들도 있는데, 이런 기사들에 대해 언론학자인 강준만 교수는 ‘해장국 언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누가 나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주는가’, 이 여부에 따라 ‘기레기’와 ‘참언론’을 가른다. 그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논객과 선동가를 다루는 매체에 아낌없는 지지와 후원을 보낸다.”(미디어스, <강준만 "해장국 언론'을 갈망하는 게 당면한 현실">) ‘기레기’라고 욕먹어도 어쨌거나 그런 기사들은 잘 팔리고, 결국 언론사의 생존에 기여한다.

당연히 좋은 언론을 만들고 좋은 기사를 써야 할 일차적 책임은 언론매체와 일선 기자들에게 있겠지만, 좋은 기사가 상업성에 기여할 수 있음을 확인해주는 것은 독자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시민-독자로서의 책임감을 간과하고 오직 소비자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방식만으로는 좋은 언론을 만들 수 없다. 가짜뉴스를 바로잡고 ‘팔리는 기사’들을 거부하는 동시에, 좋은 기사를 열심히 읽고, 공유하고, 후원함으로써 언론사를 자극하고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하나의 흐름이 될 때라야 우리는 <관저의 100시간>이나 <제인스빌 이야기> 같이 수준 높은 르포르타주 기사들을 만날 수 있을 테고, 그런 기사들이 넘쳐날 때 우리 사회는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와 같은 기사들은 이미 우리에게 도착해 있다. 한겨레신문의 정은주 기자(당시는 한겨레21 소속)는 장장 10개월 동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막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급변침 직후부터 101분간을 생생하게 재현해 <세월호, 그날의 기록>(2016, 진실의힘)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관저의 100시간>과 견줄 만한 책이다. 탐사보도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편집장(안수찬 기자)이 있었고, 민간기관에서 후원금과 인력을 지원했기 때문에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제인스빌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기획도 있었다. 한국지엠이 떠난 도시 군산에서 6주간 머물며 실직자들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폭넓게 담아낸 <공장이 떠난 도시>(한겨레21, 방준호 기자) 기획이다. 4개월간 전국과 일본‧미국‧독일의 ‘빈 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취재한 <빈집의 경고>(시사인, 김동인‧김연희‧장일호 기자)도 탁월한 르포르타주 기획이다.

이외에도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인 좋은 기사들을, 찾고자 한다면 하루에도 십수 개는 찾아볼 수 있다. 그러고 싶지 않은 독자들이 있을 뿐이다. 좋은 독자 없이 좋은 언론은 존재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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